낮엔 학교 저녁엔 학원 ‘양다리’ 수업 중
▲ 현직 교사들이 법을 어기고 강남 학원가를 중심으로 은밀한 ‘양다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
외부인이 이 학원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학원을 실제로 다니고 있는 수강생의 이름과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신분증을 제시해야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또한 한 반 학생 수 20명 남짓, 총 10여 개 교실을 갖춘 동네학원이지만 서울권 유명 고등학교 교사를 상대로 배짱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규모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결국 ‘아는 사람만 안다’는 VIP 입시학원으로 유명해진 이 학원은 4~5년 전부터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수강생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 학원은 그 일환으로 지난해 수능 언어영역이 어렵게 나올 것 같다는 교육계 전망에 따라 새로운 국어 강사를 물색하던 차에 경기 소재 고등학교에서 말 그대로 ‘날리고 있던’ 국어교사 A 씨의 소문을 듣게 됐다.
강남 소재 사립고 혹은 특목고 교사도 아닌 A 씨가 경기 소재 ‘평범한’ 일반고에서 학생들의 언어 점수를 대폭 올려놓기 시작하며 ‘언어 신(神)’으로 등극하고 있다는 소식에 B 학원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이 학원은 곧장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돈은 넉넉히 줄 테니 강의 1개만 맡아 달라”고 제의했다. 소문에 따르면 ‘액수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원하는 연봉에 맞춰보겠다’는 학원 측의 파격적인 제안에 평소 자신의 유명세에 비해 연봉 액수가 불만이었던 A 씨는 고민 끝에 ‘위험한’ 양다리 알바를 시작하게 됐다.
B 학원 측은 A 씨를 보호하기 위해 007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학원이나 기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실정이다. 만약 발각될 경우 직위 해제는 물론 구금형에도 처해질 수 있다. 존경받는 선생님에서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귀하신’ 선생님을 보호하기 위한 학원가의 조치는 고위직의 경호 업무와 그 수준이 비슷했다.
우선 보안을 철저히 하기 위해 기존의 수강생들만을 상대로 홍보를 시작했다. 이를테면 수강생 학부모들한테만 ‘고교 교사 출신 국어 선생님이 새로 오셨습니다’라는 문자를 발송하는 식이다. 여기서 강사의 성명 등 구체적인 정보는 제외된다. 또한 현직 고교 교사인 점을 대놓고 드러낼 경우 여차하면 교육청 단속에 의해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에 ‘고교 교사’ 출신이라는 문구로 이를 대신했다고 한다.
현직 교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B 학원을 찾아가봤다. 그러나 이 학원에 접근하기 위해선 학원에서 수강 중인 학생의 이름을 대야 함은 물론 이 학생과 지인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했다. 국회에 출입하는 것보다 접근하기 어려웠다.
B 학원 상담실장은 10월 29일 면담에서 “현직 교사는 없고 고등학교 교사 출신 선생님들은 있다”면서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감 있는 정보를 받고 싶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현직 교사에게 과외를 받고 싶다”며 매달리자 이 상담실장은 “사실 A 선생님이 최근에 고등학교에서 사임하셔서 아주 신선하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A 씨는 최근 고등학교 교사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스타강사 김 씨는 “A 씨의 경우 양다리를 걸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아마도 B 학원 측에선 A 씨를 보호하려고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A 씨의 경우 좀 억울할 수도 있는 게 학원가에서 비단 A 씨 말고도 꽤 많은 수의 강사들이 고등학교 교사직과 학원 강사를 겸하다 결국엔 학원으로 넘어오는 일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교사들의 일부가 명백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교사들이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한 ‘투잡’에 나서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여자고등학교 수학교사 이 아무개 씨(여·35)는 “다 돈 때문인 것 같다”며 “5년차 고등학교 교사 월수입이 370만 원 선인데 비해 학원가에선 1년 차도 월 500만 원 이상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용고시에 탈락했을 때 학원가 강사 자리를 알아본 적이 있다. 초짜라도 입시팀이나 수능연합팀에 들어가면 월 700만 원대도 바라볼 수 있어 잠시 혹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누리고 싶어 유혹을 뿌리치고 학교로 왔다”라고 말했다.
학원가도 강사에 따라 연봉이 천차만별이지만 학교 정교사 출신의 경우 예비 ‘스타강사’ 취급을 해준다고 한다. 한마디로 A 씨의 경우는 ‘초특급’ 수준의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편 수차례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임을 밝히고 통화를 시도했으나 A 씨는 그때마다 “수업 중이라 바쁘다”는 말로 통화를 거절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