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문기·김강국·김이석·이상헌 앞세워 1년 전 강등권 팀이 선두 싸움 가세…윤정환 감독 전술도 ‘고평가’
#강등 위기에서 대형 돌풍으로
강원은 2023시즌 대부분을 하위권에서 보냈다. 개막전부터 패배를 안으며 시즌을 최하위인 12위로 시작했다. 어렵사리 승점을 쌓더라도 가장 높이 올라간 순위가 10위였고 이내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일찌감치 사령탑 교체를 선택했으나 큰 폭의 반등은 없었다.
시즌 말미까지 11위에 머물던 순위는 마지막 2경기에서 1승 1무를 거두며 10위로 올랐다. 최종전에서 패배했다면 최하위로 떨어지며 2부리그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최종 10위에 오른 강원은 승강 플레이오프 2경기를 치른 끝에 1부리그에 어렵사리 살아남았다. 일부 선수와 팬들은 안도감에 눈물을 쏟았다.
다시 한 번 최상위 리그에서 기회를 받았지만 이들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았다. 팀 내 비중이 큰 자원인 김대원·서민우가 군에 입대하며 전력에 공백이 생겼다. 적지 않은 숫자의 영입생들이 팀에 합류했으나 기대감이 높지 않았다. 다수가 2부리그에서 활약하던 이들이었다.
불과 수개월 전 강등을 걱정해야 했던 강원은 현재 리그 우승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 15일 수원 FC전 승리로 잠시 리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튿날 울산 현대가 승점을 추가, 1위 등극은 '하루 천하'로 그쳤으나 여전히 승점 1점 차이로 선두를 위협하고 있다.
강원의 최근 기세는 가장 무서운 팀이다. 5월 1일 이후 패배를 잊었다. 7경기에서 6승 1무를 기록했고 최근 5연승을 달리고 있다. 이 기간 동안 15골을 기록, 경기당 평균 2골 이상을 넣었다. 상위권에 함께 오른 경쟁팀들이 최근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있다.
#'괴물 고교생' 양민혁
돌풍의 중심에는 2006년생, 만 18세 양민혁이 자리한다. 2023년 연말 준프로 계약으로 1군에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어린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던 양민혁은 이번 시즌 팀이 치른 리그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서며 5골 3도움을 기록 중이다. 준프로 신분으로, 월급 100만 원 내외를 받으며 만든 기록이다. '효율' 면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양민혁은 동계 전지훈련 당시부터 심상치 않은 활약을 보였다. 러시아 명문 디나모 모스크바와 연습경기에서 1골 1도움을 올린 그는 리그 개막전에서 선발 측면 공격수로 낙점받았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이후 1분도 되지 않은 시점, 도움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매일 등교했다 수업을 듣고 훈련에 참여하는 고교생 양민혁의 놀라운 활약은 지속됐다. 데뷔 이후 두 번째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예외 없이 선발 자원으로 감독의 선택을 받았고 리그 10라운드부터는 매 경기 풀타임에 가까운 출전 시간을 소화하고 있다.
5연승을 달성한 이후로는 특별한 선물을 받기도 했다. 김병지 구단 대표이사의 깜짝 라이브 방송에 게스트로 초대돼 정식 프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간 숱한 고교생 선수들이 준프로 신분으로 리그에서 뛰었으나 졸업 이전 프로 계약을 체결한 사례는 처음이다.
데뷔 이후 6개월도 안된 10대 선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더 큰 곳으로 활약 무대를 옮길 것으로 보인다. 프로 계약 생중계 방송에서 양민혁이 "강원에서 계속 좋은 활약 펼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하자 김병지 대표가 "'계속'이라는 말은 뺐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기회가 되면 더 큰 무대에서 뛰는 것이 강원 구단과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일"이라며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앞서 김 대표는 양민혁의 유럽 이적 조건으로 이적료 400만 유로(약 59억 원)를 내건 바 있다.
고등학생이라는 보기 드문 신분에 많은 눈길이 쏠리지만 강원 돌풍에는 양민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간 미드필더로 활약하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측면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꾼 황문기, 2부리그에서 이적한 김강국·김이석·이상헌 모두 팀의 선전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 부산 아이파크에서 5경기 1도움으로 부진했던 이상헌은 8골 3도움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선입견 떨쳐낸 윤정환 감독
1년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 상황에 윤정환 감독의 지도력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윤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 지휘봉을 잡은 이후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나 겨우내 준비시간을 가진 이후에는 팀을 선두권으로 이끌고 있다.
윤정환 감독은 일본 J리그에서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선수생활을 일본에서 마무리한 그는 곧장 지도자 커리어를 이어갔다. 감독으로서 첫 팀이었던 사간 도스를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올려놨고 승격 직후에도 리그 1위를 달렸다. 갑작스레 시즌 중 팀을 떠났으나 지도력만큼은 찬사가 쏟아졌다.
기대를 받고 부임한 울산에서는 '실패'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강팀 울산을 이끌고 상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비교적 화려한 선수단을 보유했음에도 단조로운 공격이 지적을 받았다.
일본, 태국 등을 거쳐 다시 돌아온 국내 무대에서 윤정환 감독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 진영에서 부드럽게 공을 전개하고 공격으로 빠르게 전환한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윤 감독에 대해 "울산 시절에는 '왜 자신이 선수시절 했던 기술적인 축구를 구사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천재 미드필더 아니었나"라면서 "지금 강원은 결과도 그렇지만 재미있고 공격적인 축구를 한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지난 시즌 말미부터 변화의 조짐이 있었는데 그땐 상황이 불안했다. 새로 시작하는 시즌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찬사를 보내주고 싶다"고 평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