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토지주 한보에서 중원으로, 2014년엔 포스코건설 승부수…오세훈 ‘공공’ 박원순 ‘환지’ 개발방식 오락가락
5월 31일 서울시는 “5월 29일 제7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개포동 구룡마을에 최고층수 25층 공동주택 3520세대가 조성된다는 내용이 담긴 ‘개포(구룡마을) 도시개발구역 개발계획 변경 및 경관심의안’을 수정가결했다”고 밝혔다. 30년 넘게 미뤄진 구룡마을 개발사업이 본격화될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는 2025년 착공을 목표로 보상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 인프라 준비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들이 구룡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구룡마을 역사는 대한민국 현대사 굵직한 사건들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한 명의 ‘대토지주’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구룡마을 역사 중심축을 이룬다. 시행사 중원을 이끌었던 정 아무개 씨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방아쇠를 당긴 사건으로 잘 알려진 ‘한보사태’ 중심에 있는 한보철강은 구룡마을 대토지주였다. 한보그룹 계열사들이 줄부도 난 한보 사태 이후인 2000년대 초반 한보철강이 보유하고 있던 토지가 경매 물건으로 나왔다.
정 아무개 씨가 정태수 회장이 보유하던 토지를 경매로 매입했다. 정 씨는 공시지가보다 비싼 금액에 구룡마을 토지를 사들이는 행보를 보여 언론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선 한보 측 비자금 조성 일환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정 씨가 당시 매입한 구룡마을 일대 토지는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명의였던 논밭 7270평(223억 원), ‘광화문 곰’이라고 알려진 증권업계 큰손 고 아무개 씨가 보유하고 있던 임야 25만 4400평(144억 원)이다. 정 씨는 군인공제회와 손잡고 구룡마을 토지 매입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쳤다.
정 씨는 2008년 중원이라는 시행사를 설립하고 구룡마을 개발 의지를 불태웠다. 중원이라는 시행사가 설립된 뒤 정 씨는 포스코건설 보증으로 1400억 원대 대출을 받아 토지를 지속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다 정 씨는 구룡마을 재개발지구 지정을 위해 전방위적 로비전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토지주였던 정 씨 입장에서 구룡마을 개발이 민간자본 개발방식으로 재개발될 경우 그야말로 ‘잭팟’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정 씨는 개발제한구역인 대모산과 구룡산 일대로 개발사업 범위를 넓히려는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두고 서울시는 ‘오락가락’ 행보를 이어왔다. 구룡마을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배경이었다.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강남 노른자’라 불릴 정도로 수익성이 있는 개발지역인 까닭에 구룡마을 개발 이슈는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시장은 2011년 4월 구룡마을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개발 방식은 ‘공공개발’이었다. 정 씨를 비롯한 토지주들 입장에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2011년 10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오 시장이 전격적으로 서울시장직을 내려놨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 선거를 통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취임했다.
2012년 8월 서울시는 구룡마을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확정했다. 그런데 개발 방식이 바뀌었다. 공공개발에서 환지보상 방식으로 개발 콘셉트가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시장의 포스코 사외이사 재직 이력과 함께 구룡마을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감사원은 구룡마을 개발사업 관련 내용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박원순 서울시’와 강남구청 사이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구룡마을 개발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그 사이 구룡마을 내부 커뮤니티는 구룡마을자치회와 구룡마을주민자치회로 갈라졌다. 구룡마을자치회는 공공개발을, 구룡마을주민자치회는 환지개발을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룡마을주민자치회는 중원을 이끌던 정 씨, 구룡마을토지주협의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포스코건설이 구룡마을 개발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포스코건설은 민간시행사 중원 채무 1690억 원을 대위변제하고, 부동산수탁인수권을 인수했다. 중원이 진 빚을 대신 갚아주는 대신 토지 보상금을 받을 권한을 인수받았다. 포스코건설은 서울 마지막 금싸라기 땅인 구룡마을 개발이 본격화할 경우, 보상금을 통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4월 불거진 이른바 ‘이정근 게이트’에도 구룡마을이 거론됐다. 검찰이 확보한 ‘이정근 노트’엔 구룡마을과 관련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이정근 게이트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박 아무개 씨는 2020년 상반기 포스코건설의 구룡마을 우선수익권(부동산수탁인수권으로 추정)을 사들여 구룡마을주민자치회에 팔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씨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에게 청와대 고위 인사 도움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노트에 적혀 있었다.
구룡마을 개발사업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제보자는 “사실상 중원을 설립한 정 아무개 씨가 포스코건설에 내준 부동산수탁인수권을 되찾아오려는 목적으로 정치권에 줄을 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정 씨가 새로운 ‘자금줄’을 찾으면서 구룡마을 부동산수탁인수권을 되찾아오려 했다”면서 “홍콩 기업으로부터 1000억 원 가까운 투자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정근 노트에 나오는 구룡마을 관련 내용은 정 씨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정 씨 측이 구룡마을 개발사업 일환으로 투자받은 자금은 다른 사업으로 흘러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정 씨는 홍콩 투자사와 분쟁에 휩싸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 씨가 이끌던 중원은 사명을 바꾼 상태다.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세상을 떠난 뒤 2021년 4월 7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보궐 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이 됐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오 시장은 다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시장이 바뀌면서 구룡마을 개발방식은 다시 공공개발 방식으로 유턴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서울시가 2025년 착공을 목표로 구룡마을 개발사업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개발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강남 마지막 노른자로 불리는 부지인 만큼 개발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속사정들이 구룡마을에 내재돼 있다”면서 “복마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서울시가 이런 부분들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