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숙청’ 선포했지만 통일엔 선 그어…김주애 사촌 김한솔 정치적 상징으로 내세울 듯
새조선 모태가 된 조직은 자유조선인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조선은 2019년 북한 망명정부를 표방하며 설립됐다. 망명정부를 표방했던 조직이 이젠 북한 내 건국 준비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자유조선은 천리마민방위라는 사설 정치조직에서 비롯된 바 있다. 새조선이 활동을 개시하면서 북한 내 민주화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레지스탕스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5월 5일 새조선은 웹페이지를 통해 성명서를 발표하며 로드맵을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새조선은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국호를 영원히 지워버리고, 새 국호 ‘조선’ 건국을 자신 있게 준비하는 평양의 비밀 자유민주정부”라고 밝혔다.
새조선은 “유엔 가입국인 지금 DPRK(북한)는 정상적 국가가 아니”라면서 “자유, 민주, 인권을 지향하는 정상적인 정부나 인민의 자유의사로 선출된 지도자도 없다”고 지적했다.
새조선은 북한을 “수령 중심 극소수 범죄집단이 국토를 점령하고 전체 인민을 노예화한 수령 식민지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수령 독재에 불법적으로 빼앗긴 나라와 인민을 해방하고자 평양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비밀전사들로 조직된 결사항전의 저항정부”라고 강조했다. 그 다음은 새조선의 목적과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 최우선 목표는 김가 세습 종식이다. 수령은 3대째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민은 대대손손 불행의 노예이며 인질이었다. 이제는 철부지 딸(김주애)까지 내세우는 김정은의 수령 광대 짓을 보며 인민은 경멸과 분노로 치떨고 있다. 응천순인(천명에 순히 따르고 인심에 호응한다는 뜻)의 부름으로 진정한 인민 정부를 결성한 우리는 김가 세습 명을 끊기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했다. 새 나라의 국호는 조선이다.”
새조선은 자신들의 새로운 정부 결성 목적이 통일이 아니라는 뜻도 분명히 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새조선은 “우리가 독재와의 목숨 건 전쟁을 하는 것은 조선인민 자유와 번영을 위해서지 대한민국 귀속목적이 아니다”라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김가 세습의 고리를 끊고 인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상적인 나라로 조선이 홀로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통일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도 않았다. 새조선은 “통일에 대한 논의는 그 뒤의 일”이라면서 “진정한 통일은 균형적 만남과 평등의 약속이다. 우리는 지금 유엔 평화유지군이 관리하는 휴전선을 국경으로 독립적인 조선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새로운 정부를 이끌 정당에 대한 설명도 담겼다. ‘조선’을 이끌 새 정부 첫 정당 이름을 자유민주당이라고 소개했다. 새조선은 “김정은 정권은 우리 당을 축소 왜곡하고 조작 말살하기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소탕을 운운하지만 이것은 기겁한 자의 허풍에 불과하다”면서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자유민주당 당명은 많은 조선 인민들의 동경과 지지로 서약한 희망정당, 소원정당”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 정권을 이끌고 있는 조선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을 비교하는 내용도 있다. 새조선은 “노동당은 인민의 육체와 정신까지 결박하는 유일영도체계이지만, 자유민주당은 인민의 심장에 뿌리내리는 유일영도반대체계”라면서 “그 신념을 모아 자유민주당은 이민위천(백성을 하늘로 여긴다는 뜻)의 정치로 보국안민의 조선을 우뚝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다음으론 새조선의 정치개혁 플랜을 암시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새조선에서 정치개혁 유일한 숙청대상은 오로지 독재자 김정은뿐이다. 3대 세습을 이어온 극악한 수령독재 치하에선 간부들도 인민과 똑같은 희생양일 뿐이다. 국가 위에 개인을 올려놓은 비정상, 비이성적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논리주의자들이 간부들이다. 청탁병탄(도량이 커서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널리 포용한다는 뜻) 의지 없이 어떻게 세계를 향해 개혁개방 문을 활짝 열 수 있겠는가.”
새조선은 “우리는 김정은 제거 뒤 노동당 탈당과 자유민주당으로의 전향적 입당을 전제로 지금의 국가 관리제도와 간부들의 직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면서 “오직 이 방법만이 안정적 관리에서 단계적인 제도 수정과 변화로 가기 위한 가장 질서 있는 정치개혁”이라고 했다.
‘개혁개방’에 대한 의지도 피력했다. 새조선은 “조선을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번영국가로 만들 것”이라면서 “조선이 약소국의 숙명에서 벗어나 세계 정상급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혁개방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언급 이후 새조선 성명서 다음 내용은 이렇다.
“해방된 새 조선은 개혁개방에도 과감하고 거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새조선은 현재 개인들의 거주지만 소유자산으로 인정하고 그 외 국토는 세계기업과 외국투자 이민자들에게 전면 개방할 것이다. 세상에서 세금이 가장 싸고, 투자 우대조건이 최고인 나라, 개인의 자유도 최대한 합법화하여 누구도 오고 싶어하는 세계인의 조선으로 만들 것이다.”
새조선은 “세계인이여 새조선 명예시민이 돼 달라”면서 “세계는 지금 김정은의 허장성세에 속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반 김정은 활동’ 관련 지침을 제시하기도 했다. 새조선은 “국내외 모든 반 김정은 활동에 N을 새기라”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각고의 노력 끝에 국제조직과 연대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이어지는 글이다.
“국제조직은 우리가 요청했던 해외 북한 인사들 탈출을 도왔고, 조선 내부 소식을 밖으로 전달해줄 연락 체계를 구축해줬다. 우리 정부 활동 마크는 전 세계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영어 N자이다. 이는 새조선(New Joseon)을 의미함과 동시에 ‘김가세습 종식(No 3Kims&No 김정은)’을 상징한다. 장담컨대 조선 안팎에서 김정은 세 글자보다 더 강력한 상징이 될 것이다.”
성명서는 ‘2024년 5월 5일 평양’이라는 문구로 끝난다. 대북 소식통은 “레지스탕스 조직 활동 기반이 해외에 있더라도 거점은 평양이라는 점을 명확히 언급한 것”이라면서 “과거 해외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이 조직 활동 범위가 북한 내부로 침투할 것을 강력히 예고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소식통은 “새조선 전신인 자유조선은 김정일 장손 김한솔 신변을 확보한 조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면서 “김한솔을 정치적 심벌로 내세우며 북한 내부 정치적 명분을 확보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바라봤다.
김한솔 부친인 김정남은 김정은과 이복형제다. 김정남은 2017년 3월 말레이시아에서 화학액체 공격을 받아 피살됐다. 김정남은 해외에서 거주하는 과정에서 자유조선으로부터 망명정부 지도자가 돼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조선이 망명정부 지도자로 낙점했던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이 새조선 상징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관련기사 반 김정은 쪽에선 ‘찐 백두혈통’…김한솔 주목받는 까닭).
김한솔은 최근 북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김정은 딸 김주애와 사촌 관계다. 향후 새조선 활동 범위에 따라 김한솔이 김주애의 직접적인 비교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복수 대북 소식통 이야기다.
새조선은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현지 김일성 비석에 먹물로 N자를 새기는 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이 같은 행위는 북한에서 사실상 반역 행위로 치부되는 일”이라면서 “이런 활동을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으로 게재할 수 있을 정도 조직력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북한 내 레지스탕스 활동 개시는 가볍게만 볼 부분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