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디즈니+ 최장 시청시간 기록…이정재 “동양인 제다이도 자연스러워”
이정재가 6월 5일(이하 한국시간)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한 ‘애콜라이트’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으로 동양인 배우 최초로 미국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대기록을 수립한 이정재가 그 성공에 힘입어 미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작품인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리즈의 주연을 맡아 전무후무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서사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로 출발해 드라마 시리즈, 애니메이션, 소설 등으로 무한 확장하면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때문에 이정재의 첫 미국 드라마 출연작이 ‘스타워즈’ 시리즈를 잇는 새로운 이야기인 ‘애콜라이트’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정재의 도전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애콜라이트’는 1편 공개 직후 올해 디즈니+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시청시간 기록을 달성했다. 작품을 향한 높은 관심이 초반부터 집중된 결과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과 별개로 ‘애콜라이트’는 공개 전부터 ‘인종차별’ 이슈에 부딪혀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들이 가장 추앙하는 평화의 수호자인 제다이 역할을 동양인 배우인 이정재가 맡았다는 이유에서다.
제다이는 우주 전쟁의 대서사를 다룬 ‘스타워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 캐릭터 집단이다. 이번 ‘애콜라이트’에서 이정재는 제다이 기사단의 리더인 마스터 솔 역할을 소화했다. 일부에선 ‘동양인 제다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애콜라이트’는 어떤 작품?
‘애콜라이트’는 ‘스타워즈’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접목한 작품이다. 극의 배경은 평화를 수호하는 제다이 기사단의 황금기로 불리던 시대. 전대미문의 제다이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정재의 마스터 솔을 중심으로 주인공들이 사건의 비밀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제작 기간 4년, 총 8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에 투입된 제작비가 1억 8000만 달러(약 2470억 원)에 달한다.
6월 5일 공개를 시작해 매주 수요일마다 한 편씩 이야기를 공개하는 ‘애콜라이트’는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 가장 어두운 사건을 다루는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스타워즈 팬덤은 초반부터 집결했다. 11일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트 등에 따르면 ‘애콜라이트’는 공개 이후 5일 동안(6월 5일부터 10일까지) 전 세계에서 총 1100만 회의 시청 횟수를 기록했다. 디즈니가 집계하는 시청 횟수는 콘텐츠의 전체 시청시간 합계를 편당 상영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애콜라이트’의 기록은 올해 디즈니+가 공개한 작품 가운데 최고 수치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배우로 우뚝 선 직후 ‘애콜라이트’의 출연 제안을 받았다. 다만 이정재는 출연 제안을 받을 당시 ‘애콜라이트’에서 자신이 맡을 역할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이정재는 6월 5일 ‘애콜라이트’ 시사회 직후 참여한 간담회에서 “역할도 모른 채 일단 영국(오디션 장소)으로 가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며 “당시만 해도 카메라 테스트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스태프들로부터 저 말고 다른 배우들도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돌이켰다. 그제야 이정재는 자신이 참여한 과정이 일종의 오디션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영국에서 이정재와 시간 차이를 두고 카메라 테스트에 임한 배우들 가운데는 글로벌 스타 배우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정재는 열흘 정도 지난 뒤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 맡을 역할이 주인공인 제다이 마스터 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정재는 영국 런던 인근의 스튜디오에 1년 동안 머물면서 ‘애콜라이트’ 촬영에 임했다.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리즈를 이끄는 주인공이자, 미국 드라마 주연은 처음이라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정재가 연기한 마스터 솔은 제다이 기사단을 이끄는 리더이자, 자애로운 인품과 지혜 그리고 굳건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설정인 만큼 시청자에게도 믿음을 줘야 했고, 그 출발은 영어 대사를 얼마나 능숙하게 소화하느냐에 달렸다. 이에 이정재는 “촬영 전 4개월 동안 4명의 영어 코치로부터 매일 훈련을 받았다”며 “발음 교정을 계속 받고 끊어 읽기 같은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혀의 양쪽이 다 닳아서 음식을 먹기조차 힘들 정도였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인종차별’과 ‘PC주의’ 향한 지적
‘애콜라이트’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고유한 정통성을 지키면서도 제다이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미스터리 액션 장르의 쾌감도 강조한다. 화려한 광선검 액션도 녹여내 볼거리를 선사한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작품을 기획한 제작진, 특히 할리우드 대표 스튜디오 디즈니의 선택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실 ‘애콜라이트’는 공개 전부터 ‘스타워즈’ 시리즈 처음으로 동양인 제다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부분에서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다. 이런 공격의 근간은 단순히 인종차별의 시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디즈니가 최근 몇 년 동안 영화나 시리즈에서 꾸준히 시도하는 ‘다인종 포용’ 방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도 확장하고 있다. 즉, ‘PC주의’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는 인종이나 성별, 종교 등에 관한 편견, 차별을 지양하는 운동을 일컫는다. 그 자체로는 긍정적인 움직이지만, 디즈니는 최근 이에 맞추려는 듯 실사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흑인 배우로 캐스팅해 ‘원작을 훼손했다’는 혹평에 직면했다. 또한 관객이 작품을 평가하기에 앞서,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주입한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2025년 개봉을 준비 중인 디즈니의 또 다른 영화 ‘백설공주’ 역시 주인공을 라틴계 배우로 캐스팅하면서 ‘과도한 PC주의’라는 비판에 놓인 상황이다. ‘애콜라이트’에서 제다이를 동양인 배우 이정재로 캐스팅한 것을 두고도 같은 선상에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스타워즈’ 공식 유튜브에 공개된 ‘애콜라이트’ 예고편에는 부정적인 댓글이 줄을 잇는다. ‘(디즈니가) 제다이를 죽이고 있다’는 날 선 댓글도 눈에 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애콜라이트’를 연출한 레슬리 해드랜드 감독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편견과 인종주의, 혐오 발언을 하는 누구라도 나는 ‘스타워즈’의 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정재 역시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다만 논란을 의식하기보다 다양한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정재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각자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스타워즈’ 영화들에 나오는 제다이의 복장이나 무술, 사고방식, 철학에서도 동양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런 모습이 어디서 왔을지 떠올려보면 이전 시대엔 동양인의 모습을 가진 제다이가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래서 제가 캐스팅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도 설명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