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고령 리스크, 토론회 후 지지율 트럼프에 오차 밖 밀려…당 내서도 사퇴 요구 커져, 가족들은 “전폭 지지”
6월 27일(현지시각) 치러진 TV 대선 토론은 그야말로 민주당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다. 그간 바이든의 최대 약점으로 꼽혀왔던 고령 리스크(81세)와 인지력 저하 논란이 한꺼번에 재점화됐기 때문이다. 한 문장을 제대로 끝내지도 못할 뿐더러 오락가락하는 바이든의 모습은 생방송으로 전 미국에 중계됐고, 이 모습을 본 유권자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설령 재선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4년을 바이든에게 맡기는 게 옳은가 하는 불안감도 팽배해졌다. 이런 민심은 뒤이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8)과 줄곧 박빙을 이뤘던 지지율이 처음으로 오차범위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곧 파열음이 일어났다. 오는 8월 전당대회 전까지 후보를 전격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어떻게든 바이든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코로나 사태…잠시만요…그러니까…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보세요…만일…그래서 결국 메디케어는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횡설수설한 바이든의 TV 대선 토론 성적표는 그야말로 낙제 수준이었다. 바이든은 90분 내내 쉰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으며,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때로는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대참사와도 같았던 토론회가 끝나자 미국 전역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진영에서는 불안감과 배신감이, 그리고 공화당 진영에서는 야유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CNN의 정치평론가인 밴 존스는 눈에 띄게 쇠약해진 바이든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대통령이 다른 길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미국을 사랑한다.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미국과 미국인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시험에서 패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분위기 변화는 토론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토론을 주최한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7%의 시청자들이 트럼프가 토론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후보의 지지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CNN이 여론조사기관 SSRS에 의뢰해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여전히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43%였던 반면, 트럼프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말한 응답자는 49%였다. CBS 뉴스와 유고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2%가 바이든이 대선에 출마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이는 앞서 6월 9일 실시된 여론조사보다 7%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니 민주당에 거액의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거물급 후원자들의 태도 변화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주당의 한 고위 의원은 ‘악시오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후원자들이 분노하고 있다. 바이든이 물러나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몇 년 간 30만 달러(약 4억 원) 이상을 기부한 전 헤지펀드 매니저인 휘트니 틸슨은 “바이든 자신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그는 즉시 물러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좀 더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지지자들도 있다. 링크드인 최고경영자(CEO)인 리드 호프만과 같은 거물급 지지자들을 관리하는 드미트리 멜혼은 CNN 인터뷰에서 “바이든 본인이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면 어떤 종류의 압박도 낭비일 뿐”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분열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선을 4개월여 남겨둔 현재 불안감은 공포로 변했다. 토론 후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은 “민주당 하원의원 25명이 사퇴 요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로이드 더깃 텍사스주 하원의원은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그는 2020년 우리를 트럼프에게서 구하고 민주주의를 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2024년 다시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어선 안된다”면서 “그가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사퇴하기를 바란다”라고 촉구했다.
전 민주당 상원의원인 톰 하킨은 “모든 현직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바이든에게 서한을 보내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물러날 것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지금은 위험한 시기다. 바이든의 자존심이나 대통령직을 유지하려는 열망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새로운 티켓이 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바이든은 완주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토론회 다음 날인 금요일에는 경합주 가운데 하나인 노스캐롤라이나 롤리의 유세장에서 강한 어조로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나는 예전만큼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매끄럽게 못하고, 토론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말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알고, 이 일을 할 줄도 안다”라고 강조했다.
당초 대선 출마 결정을 민주당 고위 지도부가 아닌 가족들과 상의해서 결정한 만큼 어쩌면 사퇴 결정 역시 바이든 본인보다는 가족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실제 지난 일요일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던 가족 사진 촬영을 위해 캠프 데이비드에 모인 바이든 가족들은 이 자리에서 대선 레이스 완주 여부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회의에서 영부인인 질 바이든(73)을 비롯한 차남 헌터와 손자들은 바이든에게 재선을 위해 계속 싸우도록 간청했다. 가장 강력하게 완주를 주장한 사람은 헌터였으며, 손자들 가운데 몇몇은 친분이 있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에게 연락해 바이든의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한 내부 인사는 “온 가족이 하나로 뭉쳤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인사는 “가족들은 일어나서 계속 싸우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바이든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은 단연코 질이다. 바이든의 은밀한 모습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인 만큼 어쩌면 이는 당연할지 모른다. 바이든의 건강 상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질이며, 바이든이 가장 의지하고 있는 사람 역시 질이다. 다수의 보좌관들에 따르면 바이든은 종종 참모 회의에서 안경을 쓰고 메모를 하는 아내를 보고는 “이봐, 질,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기도 했다.
공개석상에서 질이 남편을 챙기는 모습 역시 여러 차례 목격되곤 했다. 이번 토론회 역시 그랬다. 바이든은 질의 팔을 잡고 무대에 등장했으며, 토론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지아 유세 현장에서도 질은 마이크를 잡고 “조, 당신은 모든 질문에 대답을 정말 잘했어요. 당신은 모든 사안을 알고 있었어요”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질이 연설하는 동안 바이든은 그 옆에서 착한 아이처럼 꼼짝하지 않고 서있었다. 이 모습을 본 일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마치 아들에게 아이스크림 한 스쿱 대신 두 스쿱을 주는 엄마 같았다”고 비꼬거나 “엄마가 처음으로 변기를 사용한 어린 아들을 칭찬하는 듯 보였다”라고 코웃음 쳤다.
사정이 이러니 바이든을 후보에서 밀어내기 위해서는 질을 설득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사람들도 많다. 결정적인 열쇠는 바이든이 아니라 질이 쥐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한 내부 인사는 NBC 뉴스에 “바이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영부인밖에 없다”면서 “영부인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압박에도 불구하고 현재 질에게 ‘사퇴 카드’란 없다. 이미 공개적으로 재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질은 토론 후 가진 ‘보그’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90분이 그가 대통령이 된 4년을 규정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싸움을 계속할 생각이다”라고 다짐했다.
이런 질을 비난하는 인사들도 있다. 고령인 남편에게 재선 운동을 계속하라고 강요하는 질을 가리켜 공화당 하원의원 해리엇 헤이그먼은 ‘노인 학대’라고 비난했다. 또한 ‘끝나지 않은 대통령’의 저자인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CBS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질이 과거 다른 영부인들과 정반대의 결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편에게 연임을 포기하도록 설득한 베스 트루먼과 레이디 버드 존슨을 예로 들은 그는 “해리 트루먼은 출마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베스가 미주리로 돌아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워싱턴을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린든 존슨이 재임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아내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텍사스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존슨을 설득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브링클리는 “하지만 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는 권력을 좋아한다. 계속 머물고 싶어 한다. 그는 복수를 원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이오와주립대 교수이자 퍼스트레이디 관련 전문가인 스테이시 코더리 역시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질이 그를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도 나는 질이 그 힘을 이용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질은 그를 너무 사랑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강철 같은 의지와 48년간 남편 곁을 지킨 충정심이 오히려 바이든 부부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1984년부터 9번의 대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아메리칸대 앨런 리히트먼 박사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여론조사와 정치 평론가들이 모두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예측했던 2016년 대선에서도 트럼프가 우세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한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아직 이번 대선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예측을 내놓지 않은 리히트먼은 다만 바이든 사퇴를 종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의사가 아니다. 바이든이 신체적으로 연임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아닌지 그들은 알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서 “2016년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평론가들이 민주당에 끔찍한 조언을 하고 있다”고 말한 리히트먼은 “73세의 나이로 연임에 도전한 로널드 레이건에 대해서도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같은 말을 했었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49개 주에서 승리했다”라고 일축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만일 바이든이 후보로 남아 있다고 가정할 경우, 다음 토론은 ABC 방송이 진행하는 9월 10일로 예정돼 있다.
바이든 건강 둘러싼 논란 '직원들 퇴근 일찍 시킨 이유가…'
이번 TV 토론을 통해 재점화된 건 그간 바이든의 가장 심각한 아킬레스건이었던 나이 문제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특종 기자인 칼 번스타인은 CNN에 출연해서 바이든과 가까운 익명의 측근들의 말을 인용해 “토론 때와 비슷한 상황이 지난 1년 반 동안 백악관 관계자들에 의해 15~20차례 목격됐다. 토론에서 벌어진 일이 일회성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시 바이든의 건강 상태를 일부러 쉬쉬하면서 숨긴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영부인을 중심으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바이든에게 보호막을 치고 있다는 추측도 불거졌다. 전직 백악관 관계자는 영부인이 “대통령을 너무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또 다른 관계자는 “바이든 가족과 백악관 직원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분열됐다”면서 “이런 경우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지도 않았다. 트럼프 시절에도 없었다”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 ‘악시오스’는 백악관 관저의 직원들은 저녁 무렵이면 일찍 퇴근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저녁에 가능한 대통령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서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취임 초기 몇 달 동안에는 백악관 직원들이 바이든의 건강 상태에 관해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고도 했다. 예를 들어, 2021년 7월 4일 무더위 속에서 치러진 독립기념일 행사가 그랬다. 행사 도중 무슨 까닭에서인지 바이든은 백악관으로 다시 들어갔고, 바이든이 들어간 직후 문이 닫혔기 때문에 집사를 비롯한 다른 백악관 직원들은 안에 들어가서 대통령을 도울 수 없었다. 당시 참모들은 바이든이 더위에 지쳤다고 설명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건강 관련 문제를 둘러싸고 보호막을 치고 있다는 의혹과 공감대가 형성됐다.
전·현직 보좌관들도 막후에서 바이든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한 폭로를 이어나가고 있다. 전 백악관 사진 담당 부국장인 챈들러 웨스트는 “토론이 처음으로 나쁜 날은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서 “조가 물러날 때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웨스트는 “나는 이 사람들과 백악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그가 감기에 걸렸거나 그저 나쁜 밤을 보냈다고 말할 테지만, 지난 몇 주 몇 달 동안 사적인 자리에서 그들은 이미 우리 모두가 어젯밤에 본 모습, 즉 바이든이 몇 년 전만큼 강인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