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케부쿠로 폭주 사고 겪은 후 대거 반납…면허 갱신 제도 보완하고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탑재
#경각심 일깨운 폭주 사고
‘노인대국’ 일본은 고령 운전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 사망사고는 384건으로 3년 전보다 50건 이상 증가했다.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해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고 한다.
2019년 4월 19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벌어진 일이다. 87세 운전자가 정지 신호를 무시한 채 횡단보도로 질주해 31세 여성과 3세 딸이 차에 치여 숨졌다. 이후에도 운전자는 계속 폭주하더니 쓰레기 회수 차량을 들이받고서야 겨우 멈춰 섰다. 모녀 외에도 10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이케부쿠로 폭주 사고’라 불리는 이 사고는 당시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고령 운전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켜 그해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고령자 수는 역대 최다가 됐다.
비극적인 사고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본격적인 제도 보완에 나섰다. 먼저 71세 이상은 3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해야 하고, 70세가 넘으면 고령자 강습을, 75세 이상은 인지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고령자 강습이란 야간시력과 동체시력 등 시력 측정과 반응 속도, 판단력 등을 평가해 개인에 맞는 조언을 실시한다. 이러한 강습을 통해 자신의 신체 능력 저하를 깨닫고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지기능 검사에서는 ‘치매 우려 있음’으로 판정될 경우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진단 결과에 따라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다. 또한, 2022년부터 운전기능 검사도 의무화됐다. 75세 이상이면서 이전 3년 동안 신호를 무시하거나 과속 등 교통법규 위반 경력이 있는 운전자라면 실차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데, 합격하지 못하면 면허 갱신이 불가능하다.
#면허 반납은 감소세로 돌아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사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면허 반납을 고민하게 된다. 다만 “생활 유지를 위해 좀처럼 면허를 반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고령자들의 속사정이다. 실제로 일본 통계를 보면, 75세 이상 운전면허 반납 건수는 2019년 35만여 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는 추세다. 간사이TV는 “특히 대중교통이 취약한 지방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보도했다.
자진 반납제는 고령 운전사고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긴 하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우선 “면허 반납 이후 외출이 줄었다”라는 고령자가 도심지역은 26.3%로 나타났다. 반면, 인구과소지역은 55.8%나 된다. “쇼핑이나 병원에 가기 어려워졌으며 생활 범위가 좁아져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더욱이 “운전을 그만두면 돌봄 혹은 간병이 필요한 ‘요개호(要介護) 상태’가 되기 쉽다”라는 조사도 있다. 간사이TV에 따르면 “연구 결과, 운전을 중지한 고령자는 운전을 계속하는 고령자에 비해 요개호 상태가 될 위험도가 대략 8배 높았다”고 한다. 집 안에만 머물러 근력 저하나 치매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운전할 권리’를 박탈한다면, 당연히 그 대체 수단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에서는 전기자동차 모비토요를 운영 중이다. 일주일에 2번, 하루 4차례씩 거리를 주행하며 무료로 슈퍼나 역, 공원, 초등학교, 병원 등에 태워다준다. 또한, 지역주민의 이동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커뮤니티 버스’를 운영하는 지자체도 많다. 반대로 점포가 인구과소지역의 고령자들을 찾아가 쇼핑을 돕는 ‘이동식 점포’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차량에 안전장치 의무화
고령자들의 운전을 무조건 제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기술의 진보로 곧 자율주행차가 운행되면 고령 운전사고도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고는 일어난다. 이에 일본 정부는 페달 오조작에 따른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안전장치 의무화에 나섰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난 6월 28일 일본 국토교통성은 “자동차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헷갈려 밟을 경우 사고를 막아주는 안전장치 장착을 자동 변속기 차량에 한해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안전장치는 정지 시에 차량 전방과 후방에 있는 장애물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1∼1.5m 앞에 둔 상태에서는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거나 시속 8km 미만 속도로 부딪히도록 가속을 억제한다. 아울러 차내에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 주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표시된다. 교도통신은 “의무화 시기는 일본 정부가 향후 검토할 것”이라며 “일본 국내 신차 대부분에 이미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가 탑재돼 있다”고 덧붙였다.
면허 반납 후 이거 모세요…고령자 위한 ‘시니어카’ 보급 확산
고령자의 외출을 돕는 시니어카 보급이 일본에서 확대되고 있다. 흡사 핸들이 달린 전동휠체어와 비슷한 형태로 최고 속도는 시속 6km다. 가정용 콘센트로 쉽게 충전할 수 있으며, 1회 충전으로 약 33km를 주행할 수 있다. 시니어카는 도로교통법상은 ‘보행자’ 취급을 받기 때문에 운전면허증이나 헬멧이 필요 없다. 앱과 연동해 위치 정보를 가족과 공유할 수도 있고, 만일 넘어졌을 경우 연락이 닿는다.
속도가 더 빠른 전동 스쿠터도 도입되는 추세다. 최고 속도는 시속 15km. 다만, 보통 운전면허가 있어야 탑승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가나가와현 아쓰기시에서는 고령자를 위한 4륜 전동 스쿠터 시승회가 열렸다. 시승에 참여한 고령자는 “조작이 쉬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면서 “쇼핑이나 게이트볼 등 마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NHK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고령 운전자를 위한 모빌리티 개발·판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마네 닛산의 사쿠라이 마코토미 사장은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판매에 힘을 쏟겠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