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게시판에 전라 포스터·업소 홍보물 덕지덕지…정견 발표 방송에서 “나 귀엽고 섹시해요” 셔츠 탈의도
#무소속 이시마루 신지 2위 파란
7월 7일 열린 도쿄도지사 선거는 고이케 유리코 현 지사(71)의 압승으로 끝났다. 고이케 지사는 3선에 성공함에 따라 앞으로 4년 더 도쿄도를 이끌게 됐다. 임기를 마치면 재임 기간은 12년이나 된다.
선거 결과에 대해 도쿄신문은 “고이케 지사가 여당 자민당의 물밑 지원을 받으면서도 겉으로는 정당 색을 최대한 희석시키는 교묘한 선거전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덕분에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 유권자에게 침투해 승리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투표율은 60.62%로 4년 전의 55.00%보다 5.62%포인트 상승했다. 이 가운데 고이케 지사는 291만 8000여 표를 얻어 여유 있게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전체 투표수 대비 약 43%에 달하는 득표율이다.
깜짝 반전도 눈에 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시마루 신지 전 히로시마현 아키타카타시장(41)이 득표율 2위에 오른 것이다. 이시마루 후보자는 금융사에서 일하다가 4년 전 아키타카타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비교적 짧은 정치 경력의 소유자다. 기존 정당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얻어 선거운동을 펼쳤으며, 청년층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이시마루의 득표율 2위 달성은 기성 정당에 대한 높은 불신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표가 마감되고 “고이케 지사의 3선 당선이 확실시 된다”라는 속보가 뜨자 일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자조 섞인 글이 잇따랐다. “이 나라의 미래는 절망밖에 없다” “또다시 고이케에게 도쿄를 맡기다니…, 왜 학습하지 못하는 걸까” “열심히 투표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등의 한탄이었다. 일본 X(옛 트위터)에서는 한때 ‘도쿄는 끝났다’ ‘일본은 끝났다’라는 검색어가 동시에 트렌드 상위권에 오르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선거 결과와 인터넷 여론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모양새다.
#선거 포스터 게시판에 유흥업소 광고가…
이번 도지사 선거는 황당한 촌극도 자주 빚어졌다. 일례로 정치단체인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NHK당)’은 24명의 후보를 출마시켰는데, 후보를 알리는 포스터 대신 지지자들이 원하는 포스터를 만들어주고 일정 금액을 기부금으로 받았다. 요컨대, 선거 게시판 공간을 광고판으로 판매한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게시판 한 곳당 2만 5000엔(약 21만 원)씩 받았다”고 한다.
지난 6월 말 도쿄 시부야구에 마련된 선거 포스터 게시판에는 유흥업소 점포명 등을 기재한 포스터 24장이 도배됐다. 이외에도 개와 고양이 사진, 심지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적힌 홍보물이 대량 부착돼 물의를 일으켰다. 한 후보는 이목을 끌기 위해 전라에 가까운 여성 포스터를 붙였다가 경찰로부터 조례 위반으로 경고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를 막을 명확한 금지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 공직선거법에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포스터 내용은 허위 사실이나 다른 후보를 비난·비방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국회가 공직선거법 개정을 포함해 대책을 마련하는 논의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다만 규제에 대한 신중론도 감지된다. 입헌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은 법 개정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선거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게 공권력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지사 선거는 아니지만, 일부러 선거 유세 방해 영상을 찍어 올린 단체도 있었다. 정치단체 ‘쓰바사의 당’은 4월 말 도쿄 중의원 보궐선거 기간 중 다른 후보의 유세 현장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는 등 과격 행동으로 유세를 방해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은 이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를 두고 “유튜브 조회 수를 올리려고 방해 공작을 펼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치분석가인 시라토시 히로시 호세이대 대학원 교수는 “법의 허점을 노린 판매 행위 이른바 ‘선거 비즈니스’다. 선거를 수단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견발표 시간에 왜 유튜브 홍보를?
급기야 정책 방송에서 옷을 벗는 후보까지 나타났다. NHK는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사람 모두에게 정책을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6월 27일 자정 우치노 아이리 후보(31)가 출연했다. 그는 “드디어 여러분과 만났다. 제가 귀엽고 유명한 우치노 아이리다”라고 운을 뗀 후 혈액형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등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긴장해서 덥다면서 흰색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셔츠 안에는 피부와 비슷한 색상의 속옷만 입고 있어 언뜻 상의를 탈의한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이어서 그는 “나는 귀여울 뿐 아니라 섹시하다. 이름을 외워달라”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홍보했다. 정책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황당한 돌발 행동은 공영방송을 통해 6분 동안 고스란히 방영됐다. 방송이 끝나자 시청자들의 항의와 비난이 빗발쳤다. “일본은 끝났다” “저런 말을 수화로 해야 하는 수화 통역사가 극한 직업이다” “전파 낭비다. NHK 수신료를 돌려받고 싶다” 등 일본 정치를 개탄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한 네티즌은 “정치를 장난감처럼 수단으로 삼아 돈벌이하지 마라.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종합연구소의 수석연구원 모타니 고스케는 “도쿄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홍보 목적이나 판매 행위, 혹은 개인의 울분을 푸는 장소로 전락했다”면서 “선거에 대한 경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선거 제도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허점을 메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