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상징적 장소에 불교 억압했던 이승만 기념관 반대”…재단 “기초 설계 끝났고 다른 대안 없어”
#오세훈 ,불교계 역린 건드렸나
불교계는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진행된 ‘불교자정운동’을 계기로 이 전 대통령과 적대적인 관계가 됐다. 1954년 5월 20일 이 전 대통령은 ‘대처승은 물러가라’는 요지의 유시를 내렸다. 대처승은 한국불교의 독신 전통을 깨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일본식 불교문화에 따라 승려들을 강제로 결혼시키면서 생긴 승려들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한국불교 법통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시가 내려진 다음 비구승(독신 전통을 고수하는 승려)들은 대처승들이 있던 태고사를 점거했다. 조계사 간판을 걸고 조계종 중앙총무원을 설치했다. 정부는 독신 조항이 있는 ‘승려 8대 원칙’을 고수하며 비구승에 힘을 실어줬다. 사찰 48개를 비구승에 넘겨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비구승 측은 대처승 퇴출운동을 시작했다. 대처승들은 이에 반발해 조계사에 난입했다. 양측의 충돌로 3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갈등은 지난한 법정 다툼 끝에 1970년 태고종이 창립돼 비구승과 대처승의 분리가 선언되면서 일단락됐다. 조계종과 태고종 등 불교계는 이 전 대통령이 불교계 분열을 조장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계 평가는 엇갈린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은 2008년 법보신문 칼럼 ‘[근현대 불교사] ‘정화운동’의 원인과 배경’에서 “정화운동은 평화적이고 점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음에도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전에 대통령의 담화를 계기로 비종교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승단의 정화는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듯이 보이나 내면으로는 많은 상처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반면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이 운동이 불교계의 일제 잔재를 청산했고, 승단의 위상을 높였다고 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월 23일 불교계의 아픈 곳을 자극하는 발언을 내놨다. 오 시장은 “건립 장소로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데가 송현광장”이라며 “지난번에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서울시를 방문해 논의할 때 시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전제로 송현동으로 검토하겠다고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 측도 출범 초기부터 송현광장을 유일한 후보지로 낙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월 28일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종평위)는 성명을 내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적 합의도 생략하고 마치 송현광장이 자신의 사유물인 양 기념관 부지로 내놓겠다는 발상을 당장 거둬들여야 한다”며 “기념관 건립에 대한 일체의 지원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종평위는 국민 화합을 저해하고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는 기념관 건립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송현 녹지 광장을 시민을 위한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관련기사 처음부터 송현광장 낙점? 이승만기념관 부지 선정 시끄러운 까닭).
6월 11일 오 시장은 서울시의회 제324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 시정질문에서 “불교계에서 많은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추진위 쪽을 뵐 기회가 있어서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이 계시니 그분들과 직접적인 협의를 해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12일 본회의에서는 “조계종, 태고종과 접촉한 결과 생각했던 것만큼 반대가 거세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종교편향특위)는 6월 27일 성명에서 “이승만은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불교계에 상처를 남긴 장본인이기도 하다”며 “편향된 정치의식과 종교관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부정부패 원흉으로 국외 망명하여 국가와 국민을 배신한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오 시장 또한 갈등 및 분열을 조장하며 불교계를 기망하는 언행을 즉각 중단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조계종 관계자는 이 성명은 조계종 전체 입장은 아니며, 공식 입장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김황식 위원장 등 재단 관계자들은 6월 19일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에서 태고종 총무원장 상진스님을 만나 설득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상진스님은 이 자리에서 기념관 건립은 불교계 전체가 허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12일 상진스님은 “과거 이승만 대통령은 정교분리라는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7차에 걸친 유시 발표를 통해 불교계에 법난을 촉발했다”며 “이로 인해 한국불교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으로 내몰려 오랜 내홍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과 특정 종교의 교세 확장을 이해 국가권력을 동원해 불교를 억압함으로써 친일불교 청산과 근대 불교의 새로운 태동을 위한 한국불교의 자정 노력을 무산시켰다”고 주장했다.
불교계 분열에 책임이 있는 이 전 대통령의 기념관이 송현광장에 들어서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송현광장 인근엔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와 태고종 법륜사가 자리잡고 있다. 법륜사는 1970년 한국불교태고종이 창립될 때 종단 본거지가 된 사찰이다. 법륜사 안에는 태고종총무원도 있다.
상진스님은 “(6월 19일) 이승만기념관 추진위원회 회장이 찾아와서 직접 만났다. 이야기 도중에 황망한 말을 들었다. 자기들은 협의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라 통보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더라”며 “그 말을 듣고 ‘이승만기념관 건립 반대’를 종단의 공식 입장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보수 기독교계가 기념관 건립 배후에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송현광장 기초 설계 끝났다
태고종 입장에 대해 재단의 한 핵심 관계자는 “(불교계에서) 기독교계가 기념관을 만든다는 식으로 반발한다는 말을 들었다. 재단은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며 “이승만 박사가 직접 근무했던 경무대가 보이고, 정부 수립을 했던 광화문이 보이는 장소(송현광장)가 적지여서 불교도들이 양해해 달라고 (김황식) 이사장이 태고종을 방문해서 협력을 구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통보는 서울시가 하는 것이지 우리가 통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복수의 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념관 부지는 재단, 서울시 등이 주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논의하고 있다. 주무 기관은 송현광장 부지를 가지고 있는 서울시다. 재단은 송현광장 외 다른 부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송현광장에 기념관을 어떻게 지을지 기초 설계도 끝냈다는 전언도 나왔다. 송현광장에는 이건희기증관과 대규모 지하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두 시설의 공사 일정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기초 설계 작업을 끝냈다는 것이다.
앞서의 핵심 관계자는 관계 기관 사이의 준비는 마무리됐는지 묻자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고 답했다. 반발을 설득하는 과정만 남았냐는 질문에는 “그것이 남았다. 다른 것은 다 끝났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부지를 놓고 몇 달을 검토해서 (송현공원으로) 결정했다”며 “광화문에 나가보면 조선시대 위인 두 분만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도 25년 후면 건국 100년이다. 100년이 되면 초대 대통령 기념관도 시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 여론에 밀려서 (상암동으로 간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재단 내부에서는 불교계 등의 반대 여론을 설득하지 못하면 박정희기념관 때처럼 10년 넘게 완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도 흐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희기념관은 2002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2012년 개관할 수 있었다.
기념관 설립에 우호적인 윤석열 대통령 임기 전에 착공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1월 1일 기념관 건립비용으로 500만 원을 기부했다. 다른 재단 핵심 관계자는 “추진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몇 년 안에 끝내자, 특히 윤석열 정부 안에 끝내자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7월 17일 재단, 서울시, 관계기관 등에 관련 사실을 요청하기 위해 문의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