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발언 후 80% 비중 당심 요동…결선 투표 가능성 속 반한동훈 후보들 단일화 여부 주목
#‘패스트트랙 발언’ 한동훈 사과
한동훈 후보 팬덤의 상당수는 보수진영 정치인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달변’을 지지 이유로 꼽는다. 그렇지만 한 후보는 결국 큰 설화를 입었다. 나경원 후보와 토론을 벌이던 중 장기이자 특기인 ‘즉각 반격’ 실력을 보여주려다가 실수를 저질렀다.
한 후보는 7월 17일 CBS 주관 4차 방송토론회에서 나경원 후보에게 “저한테 본인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으시죠”라고 말했다. 나 후보가 자신을 겨냥해 “법무부 장관으로서 기본적인 책무를 못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도 졌다”고 한 공격에 대해 반박하는 과정에서였다.
패스트트랙 사건은 2019년 4월, 나 후보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를 할 때 벌어진 일이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려고 국회 안에서 몸싸움을 벌여 국회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자유한국당 의원 22명, 민주당 의원 5명과 함께 이듬해 1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 재판은 4년 넘게 진행 중이다.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나 후보로부터 이 사건 공소를 취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이는 부당한 요구였고 공직자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나 후보는 한 후보 발언을 중대한 사안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합동토론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패스트트랙 사건 기소 자체가 반헌법적이었기 때문에 여당 법무 장관이라면 당연히 (공소 취소)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본인의 유불리에 따라서 책임·연대의식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해 대표로서 기본적 자질이 없다”고 때렸다.
나 후보는 같은 날 오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서울·인천·경기·강원 지역 합동연설회에서도 “(나는) 빠루(쇠 지렛대)를 들고 문을 뜯으며 달려드는 민주당에 맨몸으로 맞섰다. 여당 법무부 장관이라면 당연히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수처의 무력화를 이유로 공소를 취소했어야 할 사안”이라며 “보수 가치에 대한 책임감도, 보수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도 없는 당대표에게 당을 맡길 수 없다. 한 후보는 이마저도 자기 정치 욕심을 위해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후보는 공세가 쏟아지자 “철저히 팩트에 기반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게 말하는 건 검증이고, 내가 하면 내부총질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의 업무 범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한 후보의 ‘버티기’는 하루도 가지 못했다.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당대표 후보의 집중타가 날아온 것은 물론, 여당 의원들 대화방과 여러 당원들 개별 대화방에서도 “저 사람 우리 당대표 후보 맞나”라는 요지의 글이 쏟아졌다. 당 사무실, 친한계 의원들에게도 비판 전화가 쇄도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안 한 후보는 결국 7월 18일 공개 사과문을 내놨다. 한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한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자신의 언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관 재직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
그는 사과문에서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공수처법 등 악법을 막는 과정에서 우리 당을 위해 나서다가 생긴 일”이라며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폄훼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서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는 “대표가 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강화하고, 여야의 대승적 재발 방지 약속 및 상호 처벌불원 방안도 검토, 추진하겠다”며 “당을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용기 내어 싸웠던 분들의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어제 ‘공소 취소 부탁 거절 발언’은 ‘왜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대표를 구속 못 했느냐’는 반복된 질문에 아무리 장관이지만 개별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예시로서 나온,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의도된 발언이 아니라 말실수였으니 너그럽게 봐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후보는 서울시의회 행사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조건 없이 사과한 것”이라며 “저도 말하고 ‘아차’ 했다. 이 얘기를 괜히 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한 초선 의원은 “한 후보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빨리 사과하는 건 처음 봤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흔들리는 당심, 대세론 유지될까
한 후보가 사과를 했지만 진화가 될진 의문이다. 무엇보다 한 후보에게 늘 따라다녔던 ‘정치 초보’ ‘정체성 부재’ ‘배신자’ 등의 프레임이 투표를 코앞에 두고 재소환됐다. 보수정당의 패스트트랙 저항 정치 역사도 모르는 무지한 후보, 그리고 4명의 당대표 후보 중 유일하게 사과까지 한 후보로 각인되는 수모를 겪으면서 이미지 손상이 컸다는 분석이다.
한 후보가 대형 사고를 치자 기다렸다는 듯 당내에서는 한 후보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한 후보에 대해 맹공을 폈던 홍준표 대구시장과는 달리 점잖게 있던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국민의힘 소속 지방정부 수장들도 일제히 이에 가세했다. 당무 고관여층인 당원들은 언론을 유심히 보면서 찍을 사람을 결정하는데 여권 리더들이 한 후보에 대한 혹평을 쏟아내면서 당심은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7월 18일 서울 공군호텔에서 열린 ‘포럼 새미준(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정기세미나’에 주제강연자로 나서 한 후보를 직격했다. 그는 “까발린 게 참 기가 막힐 일”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나왔으면 당원들이 ‘당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나와야 하는데 임영웅(가수) 보듯이 해서 되겠느냐”고 했다.
이 지사는 “당에서 당원을 교육하고, 활동하도록 해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당에서 키운 인재가 당을 다스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또 이 지사는 “(당이 키운) 인재가 당 대표도 하고 최고위원도 해야지, (당원 원서에) 잉크도 안 마른 사람이 당 대표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한 후보를 직격한 발언이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도 같은 날 가세했다. 그는 이날 ‘한 후보는 보수정당 후보 맞느냐’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올려 “보수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보수가치에 대한 공감에 의심이 든다. 경망스러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당신이 문재인 정권하에서 화양연화의 검사 시절을 보낼 때 우리는 좌파와 국회에서 처절하게 싸웠다”고 했다. 한 후보의 정체성에 의문을 나타낸 내용이다.
권성동 의원도 “한 후보가 형사 사건 청탁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이것은 청탁이 아니다. 당 의원 개개인의 아픔이자 당 전체의 아픔을 당내 선거에서 후벼 파서야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의원은 “폭주하는 민주당의 악법을 막는 정의로운 일에 온몸을 던졌다가 억울한 피해자가 된 우리 동지들의 고통에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한 후보를 질타했다.
윤한홍 의원은 여당 의원들 단체 대화방에 “우리 당 대표가 되시겠다고 하는 분이 하신 말씀이 맞는지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했고, 일부 의원들도 “우리 당의 투쟁을 희화화시키는 것”이라며 공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그동안 대세론 눈치를 보고 있던 여권 인사들이 ‘패스트트랙 발언’을 계기로 일제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판세를 뒤엎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도 있지만 당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한 후보가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며 수습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결선·단일화 변수 아닌 상수?
그동안 한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밖 1위를 달렸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발언 후 당원들의 요동에 한 후보 측도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한 후보가 사과를 한 것 자체가 이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과 자체가 또 다른 공격의 위험을 부르는 것이지만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처지에 놓였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2021년 6월 전당대회를 호명하는 당 관계자들이 많다. 당시 이준석 바람이 강하게 불어 대세론을 형성한 가운데 결국 그가 당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준석 후보도 한동훈 후보처럼 토론회 때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면서 점수를 적잖게 잃었다. 그때는 당심 70%, 일반 여론조사가 30%였는데 이준석 후보는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차점자인 나경원 후보를 이겼지만, 당원투표에서는 나경원 후보에게 뒤졌다. 토론회 등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당심 투표 성향은 대세론과는 달랐던 셈이다.
1차 투표에서 한 후보가 과반을 얻을 것이라는 ‘압도론’엔 이제 의문부호가 따라 붙는 분위기다. 이렇게 되면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주호영 후보와의 단일화를 하지 못해 패배했던 나경원 후보가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최종 결선투표에서 나경원 원희룡 단일화 또는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3자 단일화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훈 독주 구도가 흔들리면서 나 후보, 원 후보 모두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절대 안 한다”는 말은 이제 거둬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결선 투표가 실시돼 2위 후보가 정해질 경우 자연스러운 ‘비한(비한동훈) 연대’가 결성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7월 23일 당대표 경선에서 과반 1위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결선 투표는 28일 실시된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패스트트랙 발언으로 인해 한 후보를 향한 불안감이 커졌고 초보 운전에 대한 우려가 크게 만들어졌다”며 “결선투표는 상수가 됐고 단일화 후보의 위력이 커질 것이다. 패스트트랙 발언 논란으로 한결 유리한 위치를 점한 나경원 후보가 단일화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