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삼성 관련 검찰수사가 마무리 과정에 접어든 상황에서 삼성 내부에선 이재용 상무 승진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더 이상 미룰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무의 전무 승진은 이 상무 개인의 직함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이는 곧 경영권 승계과정의 가속화를 의미하며 임원진 세대교체를 불러올 것이란 관측이 뒤따른다. 부담스러운 노신들보다는 이재용 상무 시대에 맞는 ‘친 이재용 사단’이 필요한 까닭에서다.
우선 이학수 윤종용 두 부회장의 거취 문제가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돼 온 두 인사의 그룹 내 영향력이 자칫 이재용 상무의 앞길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화제가 되는 것. 두 부회장의 향후 거취에 대한 전망은 2006년 말 주요 재벌그룹 정보팀 인사들의 최대 현안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다수 재계인사들은 검찰 수사와 재판과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학수 윤종용 두 부회장의 거취 변동이 시기상조일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용 상무 시대를 대비한 ‘새판짜기’는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재계 인사들 사이에선 그룹 홍보 담당 라인의 핵심 인사가 계열사 임원으로 승진해 나가고 그 자리를 이재용 상무 라인의 다른 인사가 맡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돈다.
이재용 상무 시대를 대비한 새판짜기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바로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 전 장관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신임이 두텁고 이재용 상무와 관계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용 상무 시대에 적합한 인물로 진 전 장관만한 사람도 없다는 논리가 재계인사들 사이에 부각되는 것이다. 진 전 장관은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 패배 이후 정중동 행보를 보이다가 지난 11월 일명 ‘진대제 펀드’라 불리는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사모펀드(PEF) 1호를 통해 공식활동을 재개했다.
정치권 인사들은 진 전 장관이 여권의 잠룡으로 부각될 것이라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계인사들은 “진 전 장관이 미국 HP·IBM 등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고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삼성으로 온 것은 일본을 이기는 첨병이 되기 위해서였다”며 진 전 장관의 향후 행보가 정치권이 아닌 기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사자인 진 전 장관은 자신의 향후 행보와 관련한 공식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정치권과 재계 양측에서 그의 몸값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