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시달렸으면…“그래, 나 불륜 했다”
지난 4월 A 씨(여·22)가 B 씨(33)를 만난 것은 1km 반경 내에 있는 사람들과 채팅이 가능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였다. B 씨는 자신을 새누리당 모 국회의원의 7급 정책비서관이라고 소개했다. A 씨는 특별한 직장이 없었다. 가까운 데 살면서 서로 공통점을 발견해가면서 호감을 느낀 둘은 몇 차례 채팅을 통해 금세 친해졌다. 채팅에서 실제 만남으로 이어졌고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약 2개월간 B 씨와 사귀며 성관계까지 가진 A 씨는 얼마 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B 씨가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는데 그 사실을 숨기고 자신을 만나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B 씨는 A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유부남이라고 밝혔지만 A 씨가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진술했다.
B 씨가 유부남이라는 게 들통 나면서 둘은 헤어졌다. 실망감에 빠진 A 씨는 서울 강서구의 한 모텔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만취한 그는 모텔 방에서 담배를 피우다 잠이 들었고 결국엔 그 방에 불을 내고 만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조사를 받은 그는 방화혐의로 형사처분을 받았다.
딸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달려온 딸의 아버지 C 씨(55)는 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술을 먹고 모텔에 불까지 냈느냐”고 추궁했다. 처음엔 입을 열지 않던 딸은 결국 아버지에게 유부남 B 씨와의 교제사실을 털어놓았다.
C 씨는 딸을 속이고 내연관계를 맺어온 B 씨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지난 6월 11일 C 씨는 B 씨에게 연락을 해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공원으로 불러냈다. C 씨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딸이 정신적 충격으로 자해를 하고 모텔에 불을 냈으니 보상하라”며 “2억 원을 안 주면 가족과 처가, 직장에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B 씨는 불륜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은 물론 국회의원 사무실에도 큰 타격을 입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는 “돈이 없으니 한번만 봐 달라”고 C 씨에게 사정했다. 그러나 C 씨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든지 사채를 빌리거나 장기를 팔아서라도 피해를 보상하라”며 끊임없이 돈을 요구했다.
C 씨는 실제 B 씨의 부모와 동생에게까지 찾아가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괴롭힘을 못 이겨 B 씨는 C 씨에게 5억 9700만 원 상당의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각서를 3차례에 걸쳐 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800만 원을 C 씨에게 계좌이체를 통해 건네기도 했다.
각서까지 쓰고 일부 돈을 줬지만 C 씨의 협박은 끝날 줄 몰랐다. 나머지 돈을 마저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급기야 자신이 일하던 새누리당 모 국회의원의 사무실에까지 전화가 왔다. 집요한 괴롭힘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 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결국 B 씨는 지난 9월 일하던 국회의원의 사무실도 그만두고 만다.
경찰 조사에서 C 씨는 “B 씨에게 속은 딸이 배신감으로 괴로워 해 정신적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그랬다”며 혐의 대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A 씨는 아버지의 협박과정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따로 조사를 받지 않았다. C 씨는 지난 2일 검찰로 불구속 송치됐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남을 가지면서 시작됐다”며 “스마트폰을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함부로 만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