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스 통해 지배회사 가치 높일지 주목…상장사와 이해관계 충돌 방지는 숙제
퍼시스그룹의 계열사별 실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퍼시스그룹은 최근 몇 년간 지배구조의 변화를 두면서 두 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손동창 명예회장-퍼시스홀딩스-퍼시스로 이어지는 계열사와 손 명예회장의 아들 손태희 사장-일룸-시디즈로 이어지는 계열사다.
시장에서는 손태희 사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계열사의 가치를 끌어올린 뒤 두 축 간 합병을 통해 손 사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승계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최근 손 명예회장의 영향력 아래 놓인 회사는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손 사장의 영향 아래 있는 회사들은 부진한 성적표를 기록하면서 차질이 생겼다.
손태희 사장의 지배력 아래 있는 시디즈의 실적은 2020년 정점을 찍은 뒤 정체기에 들어섰다. 2021년 매출 2519억 원으로 전년 대비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126억 원으로 전년 197억 원보다 35.6% 감소했다. 2022년에는 매출액 2417억 원에 영업이익 4억 원으로 각각 4%, 96%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200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7.7%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19억 원의 영업손실로 전환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019년 수준이다.
향후 시장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다. 시디즈의 주력 사업 가운데 하나인 교육용 가구는 저출산 여파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시디즈가 공들이고 있는 게이밍의자 부문은 PC방 수 감소로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 상장사인 시디즈의 주가도 지지부진하다. 2021년 8만 8000원대까지 올랐던 주가가 현재는 2만 원대 중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정용 가구 판매업을 하는 일룸의 실적도 나빠졌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5703억 원으로 전년 6370억 원 대비 10.4%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90억 원으로 전년 152억 원 대비 40% 감소했다.
반면 손동창 명예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퍼시스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퍼시스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018년 3156억 원과 277억 원에서 2023년 3629억 원과 352억 원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장사인 퍼시스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더 크다. 퍼시스 주가는 지배구조 재편 이후 2만~3만 원대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다 꾸준한 실적 성장에 힘입어 주가가 4만~5만 원대로 올라섰다.
이 때문에 현재 손동창 명예회장 측 계열사와 손태희 사장 측 계열사가 합병하면 손 사장이 원하는 만큼 지배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퍼시스의 시가총액은 5300억 원대인데 시디즈는 530억 원에 수준에 불과하다. 일룸은 수익성이 퍼시스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가치가 퍼시스(5976억 원)의 절반(2431억 원)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태희 사장의 개인회사로 볼 수 있는 바로스가 해결사로 나설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바로스는 일룸(55%)과 손 사장(45%)이 지분 100% 가지고 있는 회사다. 일룸은 손 사장과 손 명예회장의 장녀 손희령 씨가 각각 지분 29.11%,, 9.60%를 가지고 있는데 그 외 나머지 지분은 모두 일룸이 가지고 있다.
최근 퍼시스그룹은 바로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4월 바로스는 물류 전문 브랜드 레터스를 론칭했다. 레터스를 통해 △가구 시공·설치·보관 △기업 이사 △오피스클리닝 △3PL(제3자 대행) 설치물류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바로스가 계열사의 일감을 통해 올리는 매출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바로스의 높은 내부거래 비중은 풀어야 할 숙제다. 바로스는 상당 부분의 일감을 상장사인 퍼시스와 시디즈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바로스는 851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830억 원이 내부거래다. 특히 퍼시스와 시디즈를 통해 올린 매출만 401억 원 수준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물류회사를 차려놓고 계열사의 일감을 독식하는 구조는 다른 투자자의 이익을 빼가는 터널링이 발생하기 쉽다”며 “이런 우려스러운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물류사업과 같이 안정적인 사업은 수직 계열화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퍼시스그룹 관계자는 “그룹사 내 각 계열사의 성장과 승계 이슈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로스는 최근 3PL 물류사업 등에 진출해 외부 매출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퍼시스그룹의 승계 행보 비판받는 까닭
지금의 지배구조를 갖추기까지 퍼시스그룹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퍼시스홀딩스(당시 사명 시디즈)는 2007년 분할을 통해 일룸을 설립했다. 이후 몇 차례 지분 변동 후 2015년 일룸 지분 18.9%를 확보한 손동창 명예회장은 해당 지분을 손 사장과 손희령 씨에게 각각 13.7%, 5.2%씩 양도했다. 당시 일룸의 최대주주는 지분 45.84%를 가지고 있던 퍼시스홀딩스였다.
이듬해 11월 일룸은 이익잉여금을 활용해 퍼시스홀딩스가 가지고 있던 자사주를 모두 매입했다. 그런데 해당 지분의 가치를 75억 원으로 책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최대주주가 바뀌는 거래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서 꼼수 승계 아니냐는 것이다.
이 거래로 실제 일룸의 최대주주는 퍼시스홀딩스에서 손태희 사장으로 바뀌었다. 자사주 매입으로 손 사장의 지분은 29.11%까지 늘어나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손희령 씨 지분도 9.6%로 확대됐다. 나머지 주식은 모두 일룸이 가지고 있어 의결권이 사라지면서 일룸은 손 사장과 손 씨의 개인회사나 다름없이 됐다.
퍼시스홀딩스는 2017년 팀스(현재 시디즈)를 일룸에 양도했다. 이듬해에는 의자 제조 및 유통에 관한 영업 부문을 팀스에 넘겼다. 아울러 당시 시디즈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퍼시스홀딩스는 지금의 사명을 바꾸고 시디즈라는 이름을 팀스에 넘기면서 현재의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