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녀’ 이어 ‘놀아주는 여자’ ‘파일럿’서 코믹 연기 호평…“힘든 순간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 다 할 것”
“제 이전 작품을 보시면 굉장히 처연하거나, 짝사랑만 하거나, 많이 우는 역할이 많았어요(웃음). 그래서 언젠간 한 번쯤 나도 밝고 명랑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중에 만난 작품이 ‘술꾼도시여자들’(술도녀)이었던 거죠. 그 작품 덕에 마음껏 밝아져 보고, 이렇게 정말 훌륭한 선배님, 후배님들과 함께 코미디 영화에도 출연할 수 있게 됐어요(웃음). 한편으론 이런 밝은 모습도 보여드리면서 제 전작처럼 잔잔한 감성을 담은 작품으로도 또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앞으로 숙제가 아닐까 싶어요.”
한선화의 신작 영화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조정석 분)가 막다른 골목에서 여장이라는 파격 변신을 감행, 기적처럼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극 중 한선화는 한정우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갈고닦은 화장술부터 자신의 이름과 정체까지 빌려주는 뷰티 유튜버 여동생 한정미 역을 맡아 코믹 열연을 펼쳤다. 조정석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작품 중간중간의 웃음 포인트를 책임지며 시사회에서 큰 호평을 얻어내기도 했다.
“사실 저도 관객 입장에서 코미디 작품을 볼 때는 마냥 재밌다고 웃기만 했지 ‘어떻게 저렇게 웃길 수 있지’라는 생각은 잘 안 했거든요. 그런데 실제 작품을 촬영하면서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니 재미있는 장면을 찍기 위해 노고가 많으시더라고요. 특히 조정석 선배님은 이 극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요소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셨어요. 저도 선배님께 많이 여쭤 보고, 배우면서 만들어간 장면도 정말 많고요(웃음). 작품을 재미있게 봐주시면서 그 뒤에 숨은 저희들의 노고를 같이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한선화와 조정석의 만남은 ‘파일럿’이 처음이다. 조정석마저 “왜 우리가 이제야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너스레를 떨 만큼 좋은 호흡을 함께 이뤄낸 한선화도 이 모든 완성도의 공을 ‘선배님’께 돌리는 것으로 장단을 맞췄다.
“조정석 선배님과 호흡엔 부담감보단 설레고 감사한 마음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신기하기까지 했다니까요. ‘내가 조정석 선배님과 연기를? 그것도 동생 역할로?’(웃음). 너무 귀한 자리니까요, 아마 누구라도 다 하려고 했을 거예요. 사실 저도 원래 조정석 선배님 팬이거든요. 제가 ‘술도녀2’를 촬영할 때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선배님 연기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은 점도 많았어요. 이거 여기서 처음 말하는 거예요, 아직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거든요(웃음).”
첫 호흡만으로 합격점을 받아낸 ‘파일럿’ 속의 남매 케미스트리는 어떻게 완성될 수 있었을까. 조정석은 3남 1녀 가운데 막내, 한선화는 3남매의 맏이인데도 각각 장남과 여동생으로 연기했다. 한선화는 “제가 평소에 바라왔던 남매의 모습을 연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매 케미스트리는 처음부터 대본에 너무나도 잘 표현돼 있었어요. 거기에 조정석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저는 그 호흡에 맞춰서 연기하면 됐죠. 사실 제가 맏이다 보니 누군가에게 늘 응석 부리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해보지 못했거든요. 그걸 연기할 때 끌어와서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제 동생들은 딱히 제게 관심이 없는, 완전 현실 남매라서요(웃음). 개인적인 바람으로 정우와 정미 같은 남매 관계를 가지고 싶단 생각을 계속해 왔던 것 같아요.”
‘파일럿’의 코믹 연기와 더불어 한선화는 현재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에서 엄태구와 로맨틱 코미디 서사도 알차게 꾸려나가는 중이다. 모든 연예계 관계자가 입을 모아 “평생 가도 말 스무 마디는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수줍음 많고 말이 없기로 소문난 엄태구의 제대로 된 첫 로코 장르를 함께 한다는 점에서도 대중의 호기심 어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차였다. 엄태구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웃음을 터뜨린 한선화는 “진짜 말 없고, 진짜 수줍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엄태구 오빠는 정말 말도 없고 수줍음도 많이 타는데도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확 그 캐릭터로 변해버려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도 매번 ‘우와, 최고다’ 이러고 있었죠(웃음). 평상시엔 그렇게 수줍음 많은 사람이 슛만 들어가면 ‘엄태구 오빠 어디 갔지?’ 할 정도로 변신을 하거든요. 그때면 저도 오빠한테 말 붙이기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대답이 안 돌아오더라도 나는 나대로, 적극적으로 계속 말을 걸었죠. ‘답을 안 줘도 나는 너에게 질문을 한다!’ 이런 느낌으로(웃음). 하지만 그래도 대답이 안 돌아올 때가 있어서 그럴 때면 좀(웃음).”
2009년 걸그룹 시크릿으로 데뷔 후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걸은 한선화는 올해로 연기자로서 데뷔 11년이 됐다. 3세대 ‘연기돌’(연기자+아이돌) 가운데서도 꽤 성공한 배우로 꼽히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지나야 했던 진흙탕도, 헤쳐 나가야 했던 거센 물살도 온전하게 잊어버릴 순 없었다. “힘든 순간, 왜 없었겠어요.” 담담하게 대답하면서도 한선화는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이 단단한 디딤돌이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느새 제가 연기한 시간이 10년이 넘어가요. 당연히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때를 하나씩 떠올리라면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는 그런 힘듦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제 앞에 놓인 기회들,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잘하려고만 노력해 왔거든요. 저는 기회가 기회를 낳는다는 주의라서 ‘내가 잘하면, 내가 노력하는 게 고스란히 담기면 또 어느샌가 나를 찾아주시지 않을까’라는 신념 같은 걸 갖고 있어요. 힘든 순간은 앞으로도 당연히 있겠죠, 고민도 많을 거고요. 그래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