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장인 5년 만에 ‘여자’로 돌아와…“흥행 스코어 400만까지 갔으면”
“저는 시사회 전날 잠도 못 잤어요(웃음). 좋은 반응이 나올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고, 그저 많이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있었죠. 그날 언론배급시사회 뒤에 일반 시사회가 있었는데 저희 제작진 분들이 관객석에서 같이 보셨거든요. 그런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전해주시는 거예요. 그제야 긴장이 좀 덜해졌죠. 흥행이 잘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크게 잡아서 400만까지 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웃음).”
7월 3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조정석 분)가 막다른 골목에서 여장이라는 파격 변신을 감행, 기적처럼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뷰티 유튜버인 여동생 한정미(한선화 분)의 화장술과 이름을 빌려 여성의 모습으로 생계 전선에 다시 뛰어들게 된 한정우를 그려내며 조정석은 “그 안에 저를 이입하기 수월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정말 재미있었어요. 한정우라는 캐릭터에 조정석이란 제 자신이 잘 대입되더라고요(웃음). 생계를 위해 여장을 감행해야 한다는 상황에 놓인다면 실제 저라도 그렇게 할 거거든요. 가족을 위해 열심히 해야죠. 저는 어떤 캐릭터에게 갈등이 주어지고 그 갈등을 헤쳐 나가면서 성장하는 지점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편인데, 그렇다 보니 여장 같은 ‘변신’에 있어서도 부담이나 어렵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아마 앞서 뮤지컬 ‘헤드윅’을 오래 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웃음).”
무대를 위한 과한 분장과 달리 ‘파일럿’에서는 어디에서나 한 번쯤 봤을 법한 보통의 여성을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둬야 했다. 관객들이 다 알면서도 속아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변신’을 추구해야 했던 만큼 지금의 영화 속 한정미가 있기까지 시행착오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된 한정미의 최종 모습을 보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배우 박보영과 최강희가 얼핏 떠오른다는 놀라운 호평(?)도 나왔다. 그런 반응에 마냥 영광이라며 감사해하면서도 조정석은 “정말 스쳐 지나가면서 순식간에, 얼핏 봐야 그렇게 보일 것”이라며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 촬영 들어가기 전에 사흘 정도, 하루에 5~6시간을 할애하면서 완성된 게 지금 영화 속의 한정미예요. 사실 시도했다가 탈락한 버전들도 진짜 많았거든요. 대표적으로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그건 제가 봐도 탈락감이더라고요(웃음). 또 제가 쌍꺼풀이 없는데 테이프를 붙여서 좀 굵은 쌍꺼풀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그것도 보니까 도저히 안 되겠어서 탈락했죠. 많은 분들이 예고편을 보시고 제게 박보영 씨나 최강희 선배님을 닮았단 말씀을 해주셨던데 진짜 ‘약간’, ‘조금’ 닮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기사에는 그냥 닮았다고만 나갔더라고요. 좀 죄송했어요(웃음).”
한정우의 ‘여성화’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여동생 한정미 역의 배우 한선화와의 남매 케미스트리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였다. 실제 남매보다 더 남매 같은 티키타카를 보여주면서 조정석의 숨겨둔 친여동생이 아니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파일럿’ 전부터 한선화를 눈여겨봤다는 조정석은 이런 호평을 전부 한선화의 공으로 돌리며 그에 대한 칭찬을 이어나갔다.
“한선화 씨와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왜 이제야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텐션도 좋고, 에너지도 좋은 배우예요. 저는 ‘술꾼도시여자들’에서도 정말 너무 재미있게 봐서 이번 작품에 한선화 씨가 캐스팅 됐단 소릴 듣고 엄청 좋아했거든요. 사실 정우와 정미의 오빠-동생 케미스트리가 초반부터 재미있게 나와 줘야 앞으로 이어질 ‘파일럿’ 이야기의 길잡이가 돼 줄 수 있잖아요? 그게 이렇게 잘 나와줬으니 더 기쁠 수밖에요. 선화 씨랑 같이 연기해보면서 내내 한 생각이 ‘진짜 왜 이제야 만난 거지?’ 였어요. 함께하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웃음).”
영화 ‘엑시트’(2019)의 성공 이후 ‘파일럿’으로 스크린에 복귀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정석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생겼다. 올해 다섯 살인 딸에게도 자신의 개그가 잘 먹힌다며 ‘코미디 달인’의 면모를 한껏 뽐낸 조정석은 언젠가 딸이 아빠의 일을 이해하고, 또 같은 직업을 갖고 싶어 할 수도 있는 미래를 그려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아빠의 입장으로서는 반대지만 10년 뒤, 20년 뒤라면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저는 어릴 때부터 화목한 가정을 꾸려서 아침에 ‘아빠 다녀올게’하고 아이를 안아주고 출근했다가, 퇴근할 땐 통닭이나 바게트 빵 같은 걸 한 꾸러미 팔에 끼고 들어오면 아내가 ‘여보, 왔어’하며 받아주는 평범한 삶을 늘 꿈꿔왔거든요. 아마 제가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의 느낌으로 자유로운 일상을 누렸을 거예요. 제 딸도 나중에 커서 연예인을 정말 하고 싶다고 말하면 또 모르겠지만, 아빠 마음으론 일단 반대(웃음). 그것보단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죠.”
그렇다고 배우 조정석의 삶이 개인 조정석의 자유로운 일상을 마냥 침범하거나 훼방해온 것은 아니었다. 24세에 무대에서 연기자로 첫 발을 뗐던 그는 삶을 다시 되돌아 보더라도 배우 조정석으로 살아온 20년 세월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려웠던 시절을 긍정의 힘 하나만으로 이겨내고, 지금의 자신을 든든하게 받쳐줄 자양분이 되어준 20대의 조정석을 떠올리면 “다시 만나서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임마. 고맙다, 잘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저는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슬럼프나 트라우마, 징크스 이런 것들은 아예 제 머릿속에 심어놓을 생각조차 안 하죠(웃음). 워낙 어릴 때 자라면서 힘든 환경들을 거쳤기 때문에 그런 걸 잘 극복하고 이겨내려고 해요. 저는 제가 살아온 인생에 후회가 전혀 없는데, 아마 무대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인생에 대해서도 이런 시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제가 주저하지 말고, 도전을 두려하지 말고, 실패와 성공을 규정짓지 말고 ‘성공이 아니라면 배우는 것’이란 생각으로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열심히 정진하면 지금보다도 더 나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