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녹지 훼손, 접근성도 떨어져” 구청 “주차 대란, 시민 불편 최소화”…구청 “서명운동은 반대 주민들이 먼저 해”
#울창한 나무숲에 '지하주차장'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이 빼곡한 서울 구로구 구로동 중심부에는 지역 유일의 쉼터 한 군데가 있다. '구로거리공원'이다. 산책로 길이 1.24km, 면적 3만 5920㎡(약 1만 880평) 크기인 구로판 '센트럴파크'다. 옛 광화문광장처럼 왕복 7차선 도로 중앙에 자리했지만,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어 비교적 한적한 주민 안식처로 쓰이고 있다.
이곳이 현재는 구로구와 주민들 사이 갈등 중심에 놓였다. 구로구가 차량 20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지하 공영주차장을 만든다고 밝히면서다. 공원 기능은 유지한 채 보수공사 등을 거쳐 주차장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환경 파괴와 안전사고 등을 우려하며 거세게 반대한다.
구체적으로, 구로구는 이 지역 일대에서 주차 대란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며 주차장 건립 필요성을 강조한다. 구에 따르면 거리공원 주변 불법 주정차 민원은 △2019년 723건 △2020년 798건 △2021년 637건 △2022년 476건 △2023년 511건씩 접수됐다. 감소 추세라지만 같은 민원이 수백여 건에 달하는 현실은 문제란 인식이다.
반면 주민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정책 문제를 꼬집는다. 우선 30∼40년 된 나무 약 250그루 가운데 상당수를 벌목해야 해 녹지 훼손은 불가피하다. 우범지대 우려에 교통사고 위험성이 증가한다고도 지적한다. 이 밖에 거리공원 명소로서 위상을 떨어뜨려 지역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주민들로선 주차장 대체부지도 여러 차례 제안해온 까닭에 심기가 더욱 불편하다. 공원 인근 모 연립의 재건축 사업에서 기부채납 형태로 주차장을 확대하고, 그 맞은편 구로구민생활체육관도 현대화(신축) 계획이 수립된 만큼 주차장을 만들 수 있다고 외쳐 왔다. 주민 반발이 적어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란 의미다.
하지만 구로구는 "시유지인 구로거리공원에 주차장을 만드는 게 비용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이라며 "연립주택 재건축 부지의 경우 해당 사업 조합에서 '주차장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조합원 분담금이 증가하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등 반대가 워낙 심하다"는 입장이다.
#"찬성파 만들자" 관제 서명운동 논란
구로구의 이 같은 입장에도 주민 불만은 이어진다. 거리공원은 도로 중앙에 있어 주택 밀집 지역과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이용할 주차장으로서 '편의성' 측면에서도 실효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는 뜻이다. 특히 구로구가 차분한 설득 대신 주민들에 '강대강'으로 맞서는 등 여느 때보다도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한다는 인상이 짙다.
구로구가 전개한 '거리공원 주차장 찬성 서명운동'이 한 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구로 거리공원 지하 공영주차장 조성·구로 을구 서명운동 추진회의' 문서를 보면, 2023년 12월 구청에서는 구로구 안전교통국장과 주차관리과장 및 동장 등이 모여 거리공원 주차장 찬성 서명운동을 논의했다. 사실상 '관제 서명운동'을 계획한 셈이다.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졌다. 지역 통·반장 등을 중심으로 한 거리공원 찬성 서명운동이 전개됐다. 행정관청이 주도한 집단행동이란 문제도 큰데, 절차적 정당성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시민들에 찬성을 호소하는 방식은 물론 서명운동의 대상을 놓고도 문제가 발견돼서다.
예컨대 서명운동에 돌입한 이들은 구청 당부에 따라 주차장 조성 목적을 '주민 편의'가 아닌 '각 직능단체 회의 시 주차장 조성' 등으로 홍보했다. 또 각 통·반장끼리 공유한 메시지 등에는 "구로구민이 아니더라도 외지인 등 모두를 대상으로 진행한다"며 최대한 많은 서명 인원 결집을 당부했다.
구로구는 이를 토대로 정책 홍보에 나섰다. 올 4월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거리공원 주차장 조성 사업에 3만 4889명의 서명이 모였다"며 "이로써 불법 주정차 문제를 완화하고, 상부의 녹지공간은 주민들이 쾌적하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구로구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시의회에 안건을 빨리 상정해야 하는데, 반대 서명이 시의회에 먼저 제출됐다. 저희도 찬성 서명을 모은 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이 아닌 관청 주도 서명운동'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서명운동은 반대 주민들이 먼저 했다"고 항변했다.
이 관계자는 '대체부지가 확보되면 추가로 논의할 여지가 있는지' 등의 질문에는 "이미 대안 부지로 거론된 곳은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저희는 거리공원으로 낙점한 상태"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거리공원 주차장 조성에 반대하는 시민만 있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도안위 "간담회 등 더 논의해야"
한편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도안위)는 6월 27일 해당 정책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았다. '여론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다. 도안위에서는 "향후 간담회 등을 통해 더 논의하는 게 나아 보인다"며 "구청이 일방 추진하는 정책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이보다 앞서 서호연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올 6월 24∼25일 시청 앞 거리공원 주차장 찬성 집회에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서 의원은 구로구가 지역구로 이곳에서 조경기업을 운영해왔다. 2023년 12월 15일 시의회 본회의 당시 인사청탁 문자 메시지를 받은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돼 이름이 오르내린 적 있다.
서 의원은 "주민들을 위해 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변함이 없다"며 "반대하는 이들이 좀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아 시위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반대 주민들의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공원에 심어진 벚꽃나무 등은 수명이 짧아 어차피 다시 심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문헌일 구로구청장의 경우 2023년 9월 주민설명회에서 "사실 거리공원에는 지하주차장을 만들 수는 없다"면서도 "제가 오세훈 서울시장님과 단독으로 면담을 진행해 조성 당위성을 설명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 구청장은 "이를 통해 거리공원은 더욱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천구로 본사 옮겨" 문헌일 구로구청장 주식 백지신탁 거부 이유
서울 구로 거리공원 지하주차장 조성사업은 문헌일 구로구청장이 직접 챙기는 사안이다. 이를 계기로 문 구청장을 향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구청장 취임 전까지 대표로서 이끌었던 '문엔지니어링' 주식 백지신탁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문 구청장은 약 170억 원 규모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구청장 취임에 따라 백지신탁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 구로구에 두었던 본사를 서울 금천구로 옮겼으므로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소송에 돌입했다.
서울행정법원은 5월 10일 문 구청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은 "구청장으로서 회사의 경영 또는 재산상 권리에 관한 상당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관의 변경과 본점 소재지 이전만으로는 원고가 구청장으로서 회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차단될 수 없다"며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문 구청장에 회사 주식 백지신탁을 명령함에 있어 절차적 하자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문 구청장이 1990년 설립한 문엔지니어링은 국내외에서 각종 시공·설계 및 감리 등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23년 기준 매출액 약 350억 원, 영업이익 39억 원을 기록했다. 주요 사업에는 '주차관리시스템 구축'도 포함돼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