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새 두 차례 회동했지만 진정성 의문…한동훈, 차별화 나설 경우 갈등 재연 가능성
#만나기는 자주 만나는데…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7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공개로 만났다. 앞서 둘은 7·23 전당대회 다음날 열린 만찬에서 회동한 바 있다. 엿새 만에 또다시 만난 셈으로, 정가에선 수많은 해석이 분출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 일정은 분초를 다툴 만큼 촘촘하게 짜인다. 외부 행사도 많지만 문서 결재와 업무 보고, 외교 사절 접견 등 매일 산더미처럼 일정이 쌓여있다. 대통령 마음대로 이를 조정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일주일 새 두 번이나 여당 대표를 만나기 위해 낮 일정 한 번, 저녁 일정 한 번을 뺐다. 7월 30일 면담은 이날 국무회의 종료 후 오전 11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이뤄졌다.
7월 24일 만찬을 두고는 여권에서조차 쓴소리들이 나왔다. 한 대표와의 독대 형식이 아니라 전당대회 낙선자들까지 초청한 터라 ‘한동훈 패싱’ 논란이 불거지면서였다. 하지만 7월 30일 만남은 한 대표만 여의도에서 용산으로 건너왔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하긴 했지만 사실상 독대 형태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검찰 직속 후배 한 대표를 두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라고 얘기해왔던 윤 대통령은 이날 한 대표에게 사무적인 말을 뛰어넘어 애정 어린 충고를 연이어 내놓으면서 옛정을 소환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정치는 결국 자기 사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했다고 대통령실이 7월 31일 밝혔다.
윤 대통령은 7월 30일 한 대표 면담 자리에서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두 분은 과거 법조 생활에 대해 말씀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면담을 진행했다”며 “윤 대통령께서 한 대표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많이 했다”고 회동 풍경을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둘의 만남이 계속될 것이라도 했다. 윤 대통령은 “당직 인선이 마무리돼 당 지도부가 정리되면 관저로 초청해서 만찬 하자”며 다음 모임을 기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정 간 만남이 정례화되는 것인지를 묻는 질의에 “정례화까지는 상세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자주 만날 것”이라며 “비공개로 진행한 이유도 실질적 대화를 하기 위함도 있지만,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 자주 만날 것이라 굳이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대표 당선 직후 속도감 있게, 그것도 잦은 빈도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관계 복원에 대한 희망적 전망이 일단 나온다. 7월 30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비공개 회동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지도부 극소수만 알 정도로 비밀리에 이뤄졌는데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직접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는 근거로 정치권은 받아들인다.
둘의 관계는 최근까지도 악화일로였다. 4·10 총선 직후 윤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한 한 대표를 초청했으나, 한 대표가 건강상 이유로 거절한 바 있고 한 대표가 7·23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나오는 게 기정사실화됐는데도 친윤 후보로 통했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한 후보는 ‘배신자’ 프레임으로 곤욕을 치렀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채 상병 특검법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등을 놓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상황에서 야당에 맞설 여당의 진용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나 지금은 서로의 힘이 필요할 때”라며 “이런 입장이 합치하면서 잦은 만남, 그리고 장시간 회동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고 여당이 원팀으로 가고 있는 장면”이라고 풀이했다.
#쏟아지는 꺼림칙한 장면
여권에선 윤-한 회동 직후에도 계속되는 당직 인선 갈등 사례를 거론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류도 감지된다. 한 대표는 취임 후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 교체 방침을 정하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정 의원은 즉각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을 노출한 뒤 결국 ‘끌려 내려가는’ 형식이 취해졌다. 이를 두고 윤-한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윤 대통령은 7월 30일 한 대표와의 만남에서 당직 개편과 관련 “당대표가 알아서 잘 해 달라”고 말했다. 이는 정점식 정책위의장의 유임 여부에 당내 관심이 쏠린 가운데 나와 주목됐다. 윤 대통령 발언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보면 “인사권은 당대표에게 있으니 당대표가 주도적으로 인사를 하면 된다”로 풀이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만남에서 “폭넓게 듣고 포용하라”는 메시지도 동시에 발신함으로써 한 대표와 대척점에 섰던 친윤계와의 결합을 주문한 것이라는 정반대 해석이 나왔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의 임기 1년을 보장해 함께 가라는 의미로 풀이됐던 것이다. 때문에 정 의원이 즉시 물러나지 않은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받아들인다.
정책위의장 자리를 놓고 시끄러웠던 것은 단순히 당직 자리 하나의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의 유임 또는 교체 여부에 따라 최고위 구성은 달라진다. 당초 최고위원회는 친윤계 5명(추경호 김재원 인요한 김민전 정점식)과 친한계 4명(한동훈 장동혁 진종오, 대표 지명직)이었다. 하지만 정 의원이 물러나면서 일단 4 대 4 균형을 이뤘고, 새로운 정책위의장 임명(김상훈)으로 친한계가 우위를 점하게 됐다.
한 대표는 정책위의장을 둘러싼 소란에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8월 1일 정점식 정책위의장 유임 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선은 당대표의 권한”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 대표는 “저는 우리 당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신속히 보여 달라는 전당대회에서의 당심과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화를 위해 정 정책위의장을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 말이 나온 직후 정 의원은 사의를 표명했다. 결국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정책위의장 문제’가 마무리된 셈이다. 정 의원은 사의 표명 직후 가진 긴급 기자 간담회에서 “당대표가 (정책위의장) 면직권을 행사할 수 없다. 대표가 임면권을 가진 당직자가 아니다”라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정 의원 자리는 4선의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정책위의장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이어진 가운데 윤-한 회동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당대표가 만난 직후에도 공개적으로 당직을 두고 “나가라, 못나간다”로 보이는 갈등이 빚어진 것 자체가 만남의 진정성에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가깝게 지낸 대통령과 여당 대표 사이이고, 잠시 갈등했다가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면 이 정도 결론을 사전에 명쾌하게 못 내렸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번져가고 있다.
#수술성공인가, 임시봉합인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자주 만나면서 화합을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거세게 여권을 몰아붙이고 있는 야당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과 대통령실이 똘똘 뭉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이가 벌어진 용산과 한 대표의 관계가 복원으로 가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게 놓여 있다. 무엇보다 압도적 지지를 통해 당대표로 선출된 한 대표는 시차를 두고 행동에 옮기겠지만 용산과의 차별화를 최우선 목표로 둘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입장에서 용산과 충돌이 빚어졌던 과거 기억이 소환된다. 최근의 화해 국면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강하게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7월 30일 회동 때 나타난 양측의 태도를 볼 때 서로를 여전히 경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흘러나온다. 이날 둘은 각각 오찬 약속이 있었지만, 이를 미루면서 면담을 이어갔다고 한다. 연기가 아닌, 사전에 취소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한 대표가 미리 잡아놓은 점심 식사 약속을 취소하고 용산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라며 “대통령이나 한 대표 사이에 여전히 큰 바윗돌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헌정사에서 정권 교체는 물론, 정권 재창출을 이룬 사례에서도 모든 정권이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친구이자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전 대통령의 후계자가 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 청산을 통해 전두환 정권과 절연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뒤를 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군사정권 청산 구호를 통해 노태우 정부와 차별화했다. 이명박 정부 내내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처했고 정권 재창출 이후에도 해외자원 개발,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 치적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와 수사를 벌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도 마찬가지다.
오랜 경력을 가진 국민의힘 한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한 대표는 급작스럽게 자기 정치에 나서면서 단시일 내에 용산과의 차별화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자신의 세력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판단하면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당내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어 결국 자신의 길을 가려 할 것인데 아직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은 용산이 이에 협조적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전망이어서 윤-한 갈등이 언젠가는 재부상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