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체류인구 확대나 관광 활성화 편중”…외국인 유치 전 지방 여건부터 개선돼야
정부는 2023년 7월 대통령 소속 기구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지난 7월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인구감소지역 규제특례 확대 방안’을 내놨다. 같은 달 내놓은 ‘지역경제 활성화 전략’에서는 지방소멸대응기금 1000억 원 출자로 3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지역 활성화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향올래(GO鄕ALL來) 사업 대상 지자체 12곳을 선정해 총 200억 원을 지원하는 등 해당 지역의 생활인구를 확대하기로 했다. 자치행정비서관실 간판을 ‘지방시대비서관실’로 교체하기도 했다. 정부는 저출생‧고령화 대책에 더해 이민까지 포괄하는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추진 중이다. 지방 산업 현장과 농어촌의 극심한 구인난을 해결하고 학령인구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과 인력 등을 유치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고령화, 청년들의 지방 이탈 문제 등을 해결하기엔 이 정책들은 역부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자체를 위해 조성된 ‘지방소멸대응기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2021년 신설 후 202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총 10년간 1년에 1조 원 규모의 재정이 지원된다. 25%는 광역시(서울 및 세종시 제외)로, 나머지 75%는 인구감소지역 89곳과 관심지역 18곳 등 기초자치단체로 배분된다. 지자체가 투자계획을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배분액을 결정한다. 그러나 기금이 한시적으로 공급된다는 점과 지역별 특색 없이 획일적으로 추진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3년 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과 2023년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의 분야별 현황의 경우 총 8개 분야 1065개 사업 가운데 문화‧관광 269개(25.3%), 산업‧일자리 262개(24.6%), 주거 231개(21.7%) 등 3개 분야가 전체의 71.6%를 차지했다. 대부분 생활인구 확대를 위한 문화‧관광 사업, 청년 창업특구 조성 및 귀농희망 청년층 대상 일자리 사업 등이 주를 이룬다.
예산정책처는 “기금 사업들이 인구 유출의 핵심 요건인 정주 여건 개선보다 관광객 등 단기 체류인구 확대나 관광 활성화를 위한 사업에 편중되는 것은 기금의 취지를 감안할 때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앞서 국회도 2022년 결산 심사 과정에서 “기금의 사업이 정부의 보조 사업과 유사해 지방 소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는 취지가 충분히 달성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 지방의 노동력 수급을 위해 외국인 정착을 추진하려는 정부 정책에도 물음표가 찍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충청남도청에서 열린 전국 광역단체장들이 참석한 제7차 중앙지방협력회의 자리에서 “‘코리안드림’을 품고 대한민국을 찾은 외국인과 유학생들이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지역사회에 정착해 건강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 초기부터 윤 대통령은 저출생 극복 방안 중 하나로 이민 확대 정책을 추진해 왔다.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는 ‘일요신문i’에 “지방 대학에서 유학생들이 공부를 하더라도 일자리를 찾아 서울‧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우리 청년들과 같은 (수도권 쏠림)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며 “광역 차원의 인구, 도시 인프라 등을 아우른 총괄적인 정책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도록 일자리와 주거 여건, 문화 인프라 개선이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의 핵심 키워드인 것이다. 국민들도 지방 도시들에서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 확대와 주택 및 교통 등 정주요건 인프라 구축이 재정적 지원보다 더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염지선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인구감소 시대의 국민이 바라보는 지방소멸과 대응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전국 거주 만 19~69세 남녀 3000명에게 조사한 결과 국민들은 지난 30년간 균형발전 및 지역경제개발 활성화를 위한 재정적 지원에 대해 낮은 선호도를 보였다. 반대로 인프라 구축에는 긍정적 평가를 나타냈는데 이 또한 경제 및 교육적 여건 개선보다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인프라 개선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근무 여건이 다양화되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지역상생분과 위원장)는 “서울‧수도권 중심의 대기업 등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지방으로 유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다만 대기업들의 근무 여건이 다양해지면서 워케이션이나 유연근무, 재택근무 등이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에 주 거주지를 지방에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지방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고 우리 사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염지선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앞의 보고서에서 “소비 및 문화 인프라는 경제활동 인구 유입과 직접적으로 연계되기 때문에 지역의 인구를 지역 내 소비 및 생산인구로 정의하고 소비 및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복수주소제를 도입해 한 인구당 복수의 주소를 허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주민세 및 재산세 등의 재배분을 위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