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기망 행위 해당하는 영업 방식”…환불 요구엔 ‘업셀링’ 유도, 불만 고객은 ‘방어팀’ 대응
물론 모든 리딩방이 불법 운영되는 건 아니다. 금융당국에 유사투자자문업 등록을 한 업체는 다수에게 투자 조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 리딩방도 암암리에 기승을 부린다. 이로 인한 사기 피해 신고도 적지 않다.
경찰은 유사투자자문 업체인 D 컴퍼니와 이 회사 A 대표 등 관계자 12명에 대한 사기 피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D 컴퍼니에서 영업활동을 했던 30대 남성 B 씨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진술한 조서를 입수했다. A4 용지로 18장 분량이다. 이 조서를 통해 D 컴퍼니가 어떤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B 씨는 2021년 하반기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D 컴퍼니에 면접을 거쳐 입사했다. 그는 고객들에게 주식 종목을 추천했고 비상장 코인을 판매했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D 컴퍼니는 2020년 9월 설립됐다. 증권정보 제공과 홍보마케팅업, 매니저업, 데이터베이스 처리업 등을 사업 목적으로 명시했다.
B 씨가 D 컴퍼니를 출입할 때 사용했던 신분카드(ID카드)엔 ‘L 투자그룹 상호와 L 투자그룹의 서울 여의도동 주소 및 전화번호’가 기재돼 있었다. L 투자그룹 역시 유사투자자문 업체다. L 투자그룹 이 아무개 대표는 지난 6월 암호화폐(가상화폐) ‘RNDX 코인’ 사기 사건 주범으로 구속 기소됐다.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L 투자그룹 이 대표 등은 2022년 3월 16일부터 2022년 5월 26일까지 70여 일 동안 투자자(피해자) 377명으로부터 RNDX 코인 구입 대금 명목으로 1102회에 걸쳐 총 104억 2760만 4453원을 송금 받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D 컴퍼니 A 대표는 L 투자그룹 본부장을 역임했다. A 씨는 L 투자그룹이 설립한 판매 법인을 운영하기도 했다. D 컴퍼니엔 팀장과 팀원 등 15명 정도가 영업 활동을 했다. 이 가운데 6명 정도가 L 투자그룹 출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유사투자자문 업계에선 “L 투자그룹과 D 컴퍼니는 사실상 같은 회사”로 소문나 있다. D 컴퍼니 내부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인사는 “D 컴퍼니는 L 투자그룹 자회사였다”며 “D 컴퍼니 사무실엔 L 투자그룹 이름이 기재된 상장과 트로피 등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영업맨 B 씨는 애널리스트가 추천하는 주식종목을 문자서비스 등을 통해 판매하는 영업팀에서 일했다. 그의 경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D 컴퍼니는 매일 아침 1차 상담직원에게 20명 정도의 데이터베이스(DB)를 전달한다. 1차 상담직원은 DB에 있는 사람들 이름, 휴대전화 번호, 투자금액, 투자여부 등을 우선 파악한다. 그런 다음 B 씨 등 영업자들에게 1차 상담 결과를 넘긴다. 영업자들은 1차 상담한 사람들에게 다시 전화해 회원 가입을 유도하고 상품을 구매하도록 했다.
#‘영업-업셀링-방어’ 팀으로 나눠 활동
조서에 따르면 영업자들이 고객에게 주식 종목을 추천할 때 썼던 영업 방식은 크게 ‘영업-업셀링(Upselling)-방어’로 구분됐다.
‘영업’은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유사투자자문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다. 이때 전화를 한 번 걸어 상품을 판매하면 ‘원콜’이라 불렀다. 보통 고객들은 한 번에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러면 ‘관리’에 들어간다. 고객들이 전화를 차단할 때까지 계속 전화를 건다. D 컴퍼니 내부 사정을 아는 인사는 “D 컴퍼니는 아웃바운드(텔레마케팅) 전화가 1차 회원 대부분의 모집 수단이었다”고 전했다.
영업자가 상품을 판매하면 구매자의 신용카드 종류와 번호, 유효기간, 비밀번호 앞 두 자리, 생년월일 등 정보를 팀장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구매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계약서를 보냈다.
문제는 상품 가격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영업자들이) 회원들(구매자들)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금액도 마음대로 정했다. 상품에 정해진 금액이 없어 회원에 따라 상품 가격을 임의대로 정했다”고 털어놨다. 한마디로 상품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아 영업자가 부르는 게 값이었다는 얘기다.
‘업셀링’은 한 고객이 이전에 구매했던 상품보다 더 비싼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영업자의 판매 방식이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영업자들이 추천해준 종목이 수익이 나지 않으면 회원들로부터 환불전화가 온다. 이때 방어를 하면서 돈이 많은 사람들에겐 ‘본부장급이 추천해주는 상품’이라며 ‘해당 상품을 구매하면 1000% 이상 수익이 날 수 있다’고 소개한다. 그렇게 구매를 유도한다. 이때 영업자는 처음 영업자보다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이 회원과 통화를 한다.
‘방어’는 고객 불만을 담당하는 행위다. B 씨가 근무한 D 컴퍼니엔 방어팀이 별도로 있었다. D 컴퍼니 전 직원은 “방어팀 전화번호는 L 투자그룹 관련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RNDX 코인’ 사기 사건으로 경영진이 구속된 L 투자그룹과 D 컴퍼니가 사실상 ‘한몸’이라는 정황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목이다.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에게 영업자는 그 방어팀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러면 방어팀이 불만 고객과 통화한다. 결제 금액에 대한 불만과 항의가 가장 많았다.
예를 들어 영업자가 유료 리딩 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에게 결제 금액을 42만 원이라고만 설명한다. 실제론 500만 원을 결제한다. 당연히 해당 고객은 항의 전화를 한다. 그러면 방어팀에선 “한 달에 42만 원이고 12개월로 계산하면 500만 원이다”라고 설명하며 불만을 누그러뜨린다. B 씨는 “처음부터 500만 원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유료 리딩 상품은 정해진 시간에 주식 종목 이름, 매수 비중, 첫 매입 혹은 추가 물타기 여부 등을 문자로 알려주는 서비스다. 이와 관련해 D 컴퍼니 전 직원은 “A 대표가 처음 입사한 직원들에게 직접 영업 방식을 교육했다. 그러면서 ‘이건 사기가 아니다’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유사투자자문 업체 사기 사건을 수임했던 변호사는 “이 같은 영업방식은 고객에게 진실을 은폐해 착오에 빠지게 하는 전형적인 기망 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D 컴퍼니 A 대표는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일요신문은 이 사건과 관련해 A 대표 입장을 듣고자 전화를 걸었다. 그는 8월 7일 이 사건에 대한 질문에 “내 변호사와 상의해라. (기자에게) 연락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이후 A 대표 측 변호인 연락은 없었다. A 대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