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국내에서 친일을 하지 않고 어떻게 생명을 부지해 왔겠어?”
한민당 출신들에 대해 던지는 프레임이었다.
“그러면 나는 숙청이 되겠군.”
한민당 측의 장덕수가 신익희의 말을 되받았다.
“그게 어디 장덕수뿐일까?”
묵묵히 듣고 있던 한민당 원로 송진우가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국내에 발붙일 곳도 없게 된 임정을 누가 오게 했는데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거요? 국민들이 떠받드는 건 삼일운동 이후 임정의 법통 때문이지 당신들 개개인이 잘나서가 아니오. 중국에서 당신들이 어땠는지 우리가 모르는지 아시오? 국외에서 당신들은 배가 고팠겠지만 국내의 우리들은 마음이 아팠소. 당신들만 애국자라는 망상은 하지 마시오.”
그 후 장덕수와 송진우는 암살됐다. 김구도 암살됐다. 한민당과 임정의 다른 생각은 지금까지도 평행선을 그리며 이 사회에 그림자를 던지는 것 같다.
임정 출신 이종찬 광복회장이 광복회는 광복절 행사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1948년을 건국한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그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보는 것 같다.
친일 관계 소송을 맡게 되어 일제강점기 재판자료를 본 적이 있다. 삼일운동의 법정 기록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일본제국에 대한 불만이 뭔가?”
다찌가와 재판장이 민족 대표인 최린에게 물었다.
“차별 때문이오. 조선인은 역사와 독립된 언어와 글이 있는 문화인이요. 뒤떨어진 민족이 아니란 말이오.”
같이 재판을 받는 손병희는 이런 말을 했다.
“한일병합을 하면 조선인이 일등 국민의 혜택을 누릴 줄 알았소. 그러나 돌아온 건 차별이오. 차별을 할 바에야 나라를 돌려줬으면 좋겠소.”
나는 이봉창의사의 재판기록도 읽었다. 아키야마 판사가 이봉창에게 물었다.
“왜 조선이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차별 때문이오.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싫어하고 고용해 주지 않았소. 조선인들이 그런 차별 대접을 받을 바에야 독립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오.”
공판 검사는 법정에서 이봉창 의사의 배경에 있는 상해임시정부를 이렇게 공격했다.
“저는 조선인들의 상해임시정부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 몇 부류의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큰일을 하는 듯 자신의 이름을 팔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 독립운동을 한다는 구실로 동포에게 돈을 뜯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존재들은 가짜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진심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정말 시대를 읽는 것인지 말입니다. 세계의 군사 대국 경제 대국인 대일본제국에 대해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학정에 신음하던 구 한국시대 노비나 백정에게 나라가 있었던 것입니까? 그들이 양반과 같은 민족이었습니까?”
일본 검사의 장황한 문어체를 나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노예의 안락함보다는 광야에서 살더라도 나라를 만들어 살자는 게 임시정부의 고결한 정신이 아니었을까. 나는 상해 임시정부는 우리의 정신적 조국이었다는 생각이다.
우리 민족에게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이 패전이 그것이다. 그러나 장애가 있었다. 세계의 모든 약소국이 소련이나 미국의 어느 한쪽에 줄을 서야만 하는 냉전시대였다. 이승만은 반쪽이라도 나라를 세우자는 현실론을 택했다.
그렇게 세워진 이 나라는 산업화 민주화가 달성됐고 세계에서 1등급 경제 대국이 됐다. 건국일이 왜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1919년에 정신적인 국가가 세워졌고 1948년에 현실적인 국가가 세워졌다고 하면 안 되는 걸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