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문서 하루 119번 수정 등 소리 없는 전쟁터…오정보 서술 부작용 반면 제재 시 표현 자유 위축될 수도
#나무위키에서 벌어지는 ‘편집 전쟁’
MZ세대는 유명인들의 별명, 에피소드를 날 것 그대로 풍자하는 나무위키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나무위키 이용자들에 의해 유머와 밈이 생성되고 전파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7월 29일 파리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전훈영이 활약하자 그녀의 이름을 잠깐 ‘주몽(Jumong)’이라고 바꾸는 식이다. 지난 6월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데뷔골을 터뜨린 주민규(34·울산HD)에게 팬들이 붙인 ‘주리 케인’이라는 별명을 널리 퍼뜨린 곳도 나무위키다.
2015년부터 운영된 나무위키는 전 세계에서 이용되는 위키백과와 흡사하지만 주관적인 정보도 취급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나무위키는 인터넷 용어사전이면서 각종 문화 담론과 관련된 지식 정보 제공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식의 편향구조와 혐오(2019)’ 논문을 통해 “나무위키 편집에서 ‘드립’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유머와 밈으로 통한다”며 “이는 한국 온라인 문화에서 중요한 가치기준”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나무위키는 이용자들의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추천순 혹은 최신순으로 정렬되는 댓글과 달리 나무위키는 이용자들이 편집하는 그대로 담론이 결정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수정이 이뤄질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4월 2일 벌어진 ‘김활란’ 편집 전쟁이다. 당시 수원시정 국회의원 후보자로 나섰던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이 학생들을 미군에 위안부로 팔아넘겼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김활란’은 해당 발언 이후 나무위키 인기 검색어 10위권 안에 진입했는데, 이를 통해 김활란의 일생과 친일 행적 등이 상세히 기록된 문서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공유됐다. 이를 지켜본 일부 나무위키 이용자들은 김활란의 친일 행위 등을 서술한 내용을 삭제했고, 다른 이용자들이 복구하면서 '전쟁'을 이어갔다. 4월 2일 하루에만 나무위키 내 ‘김활란’ 문서는 119회 수정됐다.
2019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문서 편집 전쟁도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조 대표를 반대하는 이용자들은 ‘조국’ 문서에 그를 ‘범죄자’라고 설명했는데, 조 대표 지지자들은 다시 이 문서를 편집해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이런 방식으로 조 대표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나서 약 20일 동안 ‘조국’ 문서가 100번 이상 수정됐다. 이전에도 나무위키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2016년), 제주 난민 사태(2018년) 등으로 ‘정보 편집 전쟁’을 치른 바 있다.
이처럼 나무위키는 누구나 내용을 추가하고 수정할 수 있어 객관성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무위키는 ‘우만레(Umanle S.R.L)’라는 유한회사가 소유·운영하고 있지만, 남미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이 회사 본거지라는 사실 외에 경영진이나 회사 현황 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관리도 익명의 민간 운영자가 도맡아 왔다.
나무위키가 제공하는 정보의 불확실성은 항상 논란이 있어 왔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잘못된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질 수 있다는 우려와 각종 차별·혐오 표현에 대한 적절한 제재가 없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일반인에 가까운 개인에 대해서도 각종 정보들이 올라오다보니 사생활 침해 논란도 심각하다.
방심위는 나무위키에 유해 게시물 삭제 혹은 통신사(ISP, 인터넷서비스사업자)에 URL 차단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지만 이를 적용한 사례는 드물다. 그동안 나무위키 속 자신의 사생활 정보 등을 삭제해 달라는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대부분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려왔다. 대통령 및 국회가 위원 추천권을 가진 방심위가 온라인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플랫폼의 자율규제를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방심위 칼 빼들까
하지만 나무위키가 만들어 내는 문서에서 불법 유해 정보로 인한 부작용이 커지자 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나무위키에는 공인에 해당하지 않는 인플루언서나 일반인에 가까운 개인과 관련한 사생활 침해 정보를 담은 문서가 공유돼 논란이 지속 중이다. 결국 방심위는 이에 대한 제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8월 14일 열린 통신소위에서는 방송 또는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통해 인지도는 있지만 사실상 일반인에 가까운 개인 2명이 나무위키 내 노출 정도가 높은 전 연인과 사진, 가족·학력 등과 관련한 잘못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며 삭제를 요청했다. 방심위는 법조인 등이 포함된 통신자문특별위원회(통신자문특위)에 해당 사례들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다만 이메일 외에 나무위키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상황이라 삭제·차단 결정이 나더라도 어떻게 강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심위는 문제 현황과 대응의 한계점 등을 포함해 통신자문특위에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면 나무위키에 자율규제를 강력히 권고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도 강구할 방침이다.
방심위가 나무위키의 사생활 침해 정보에 대해 제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자 이용자들이 자체적으로 개인정보 관련 편집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8월 19일 나무위키 ‘편집지침’ 공간에 ‘개인정보 관련 서술의 입증책임 강화를 위한 특정인 관련 문서 문단 개정’이라는 토론 글이 공유됐다. 나무위키에서는 이용자들이 독자적으로 ‘토론’을 열어 운영 방침을 논의한다. 해당 토론을 게시한 이용자는 개인정보 관련 입증 책임을 서술 존치 측에 있도록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 사항을 제안했다.
해당 이용자는 “최근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나무위키의 서술에 대한 나무위키 외부에서의 지적이 있으며,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개인정보 관련 서술에 대해 편집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서술 존치 측의 입증책임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적으로 방심위의 행정 지도나 요구를 받고 토론을 발제한 게 아니다”라고 첨언했다.
해당 개정안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이용자도 많았지만, 방심위의 나무위키 제재 의사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이용자들은 “개정안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방심위의 요구로 토론이 진행되는 것으로 비칠까 우려된다” “외압에 굴복할 경우 정치인 관련 문서 등재 원천 금지 등 추가적인 검열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방심위는 인터넷상에 유통되는 불법 유해 정보에 대해 심의하고 시정 요구를 하는 기관이다. 나무위키 외에도 포털이나 해외 사이트 역시 같은 잣대로 심의를 하고 있다. 특정인의 사생활 정보를 포함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위법하고 이용자들에게 유해하다면 심의 대상에 해당한다”면서 “제재 방식을 어떻게 할지는 곧 열릴 (통신)자문특위를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