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월즈 ‘친근한 아저씨’ 부각, 빈민가 출신 밴스 ‘아메리칸드림’ 강조…군복무 경력 두고 설전
하지만 17분간의 기조연설을 마친 후의 오바마는 더 이상 무명이 아니었다. 수려한 언변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던 오바마는 정치 스타이자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사실 대통령 후보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부통령 후보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지명 당시에도 인지도가 낮은 상태일 뿐만 아니라 지명 후에도 대선 후보에 가려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팀 월즈 후보(60)와 공화당의 JD 밴스 후보(40)가 초반부터 각을 세우면서 대선 후보들 못지않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다소 급진적인 진보이고 다른 한쪽은 강경 보수이긴 하지만, 사실 월즈와 밴스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다. 중산층 서민 가정 출신, 즉 ‘흙수저’란 점도 그렇거니와 군복무 경력이 있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꼽힌다. 또한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존재감조차 없었던 무명이었지만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면서 갑자기 벼락 스타가 됐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아직 두 후보 모두 갈 길은 멀다. 자신이 어떤 정치인인지 아직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각인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인지도 조사에서 미국인 10명 가운데 4명은 월즈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10명 가운데 3명은 밴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인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이 그렇듯 부통령 후보인 두 인물의 호감도 조사 역시 널뛰고 있다. 8월 9일부터 13일까지 실시된 워싱턴포스트-ABC-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월즈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9%, 밴스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32%였다. 비호감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월즈 30%, 밴스 42%였다.
8월 21일 발표된 AP통신-시카고대여론연구센터(NORC)의 여론조사에서도 역시 월즈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감도 조사에서는 각각 36%와 27%로 월즈가 밴스보다 9%포인트 앞섰으며, 비호감도 조사에서는 월즈와 밴스가 각각 25%와 44%를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무당파의 경우, 밴스보다 월즈에게 약간 더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어느 한쪽에 표를 던질 만큼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는 점에서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두 후보가 중점을 두고 내세우는 이미지는 ‘흙수저’다. 월즈의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아저씨’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헐렁한 티셔츠에 사냥 모자를 쓰고 유세 현장에 나타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브래드 피트와 동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안 축에 속하는 꾸미지 않은 외모 역시 그가 얼마나 소박한지를 나타낸다.
이런 소박함은 그가 보유한 순자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월즈 부부의 순자산은 100만 달러(약 14억 원)가 조금 안 된다. 이는 360만~736만 달러(약 50억~101억 원)를 보유하고 있는 해리스나 57억 달러(약 8조 원)의 부를 거느린 조만장자인 트럼프에 비하면 그야말로 서민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밴스의 경우에는 430만~1070만 달러(약 60억~147억 원)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현재 월즈가 무주택자라는 사실이다. 2019년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된 후 관저로 이사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멘케이토 집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매각 가격은 30만 4000달러(약 4억 원) 정도였다. 그렇다고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월즈는 주식이나 채권, 펀드를 보유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현재 미네소타 주지사 연봉은 12만 7629달러(약 1억 7000만 원)다.
이에 반해 밴스는 자신이 집필한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비록 마약중독자였던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결국 예일대 로스쿨까지 진학한 밴스는 실리콘밸리에서 벤처투자가로 성공하면서 아메리칸드림의 표상이 됐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후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티엘의 ‘미스릴 캐피털’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실리콘밸리의 거물들과도 친분을 쌓아나갔다. ‘레볼루션 LLC’ 벤처 캐피털을 거쳐서 결국 ‘나르야 캐피털’을 설립해 독립한 밴스는 그 후 티엘을 비롯해 구글의 에릭 슈미트 등으로부터 수천만 달러를 유치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사정이 이러니 밴스를 더 이상 흙수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금수저가 된 밴스는 현재 100여 개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 가치는 79만~340만 달러(약 10억~4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10만~25만 달러(약 1억~3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석유와 금에도 투자하고 있다. 부동산은 워싱턴 D.C, 신시내티,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에 각각 한 채씩 총 세 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가치는 360만 달러(약 5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른바 ‘흙수저 배틀’에서 월즈가 밴스를 맹공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월즈는 “밴스는 예일대에서 공부했고,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의 투자를 받으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면서 베스트셀러에서는 그 커뮤니티를 공격했다”라고 비꼬았다. 또한 디트로이트 연설에서는 “트럼프는 중산층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밴스도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밴스는 유세장에서 “나는 가족들 가운데 그 누구도 로스쿨에 진학한 적이 없는 빈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는 가난했다”면서 “나는 대학과 로스쿨을 거치는 과정을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했다. 나에겐 그것이 아메리칸드림이었다. 월즈가 이런 나의 노력을 모욕하는 건 솔직히 꽤 기괴하다”라고 반박했다.
둘은 군복무 경력을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월즈는 미 육군 주방위군에 입대해 복무한 경력이 있으며, 밴스는 미 해병대 출신이다. 먼저 선방을 날린 건 밴스 측이었다. 밴스는 월즈가 이라크 파병을 불과 두 달 앞두고 회피하듯 부대를 떠났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월즈는 자신이 소속돼 있던 부대가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자 황급히 부대를 떠났다”라고 비난한 밴스는 “그는 가짜 무용담을 지껄이는 쓰레기”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유세에서는 자신의 군경력에 빗대어 이렇게도 말했다. “제복을 입고 조국을 위해 봉사한 해병대로서 나는 이라크로 가 달라는 조국의 요청을 받고 그렇게 했다. 조국이 나에게 요청한 일을 나는 명예롭게 수행했다. 그런데 월즈는 이라크에 가라는 조국의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그는 군대를 떠났다.” 그러면서 밴스는 “꼭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직전에 그만두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밴스 측의 주장에 월즈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고교 졸업 후 주방위군에 입대한 월즈는 2005년까지 24년 동안 비상근으로 복무했다. 월즈가 마지막으로 복무했던 부대는 제125 야전포병 1대대로, 2005년 5월 실제 월즈가 군을 떠나고 두 달 후인 7월에 공식적인 동원 명령을 받았으며, 이듬해 이라크에 배치됐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에 대해 월즈는 “내가 군 복무를 그만둔 건 하원의원 출마를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출마를 결심했던 2월에는 부대가 이라크에 파병되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월즈는 LA에서 가진 첫 단독 유세에서 “다른 사람의 군 복무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조국을 위해 제복을 입은 용감한 모든 군인들에게 간단하게 몇 마디만 하겠다. ‘여러분의 봉사와 희생에 감사드립니다’”라고 항변했다.
월즈가 이런 의심을 받는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서도 이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은 바 있었다. 이에 민주당 진영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지사에 당선됐다는 의미는 이미 정치적 검증을 마친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다른 한편에서는 월즈를 저격한 밴스가 괜히 군복무 문제를 꺼냈다가 역공을 당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밴스가 이라크 파병 당시 맡았던 보직이 전투병이 아닌 공보 업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편하게 군복무를 한 입장에서 월즈를 깎아내리는 건 오히려 무리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 후보 못지않게 치열한 두 부통령 후보들 간의 대결이 과연 앞으로 대선 판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미국인들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월즈-밴스는 어떨까…영향력 미미한 역대 부통령 TV 토론
중앙정치 무대에서 신인이다시피 한 두 부통령 후보 간의 팽팽한 신경전은 오는 10월 1일로 예정된 TV 토론회에서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물론 지금까지 부통령 토론회의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둘의 대결이 11월 선거 결과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통령 후보들이 전반적인 대선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976년부터 열렸던 부통령 후보 토론은 일반적으로 대통령 후보 토론에 비해 시청률도 크게 낮다. 가령 2000년, 양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조 리버만과 딕 체니 간의 토론회 시청자 수는 앨 고어와 조지 부시 후보 토론회 시청자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2008년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맞붙었던 조 바이든과 세라 페일린의 토론회가 그랬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대선 후보 간의 세 차례에 걸친 토론회보다 훨씬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당시 부통령 토론회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화젯거리였다.
부통령 후보들이 유례없는 관심을 받았던 이유는 페일린 때문이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부통령 후보가 된 페일린의 참신함이 흥행에 한몫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스 알래스카 선발대회에 나갔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는 점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통령 대결이 당시 대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다. 결국 오바마-바이든 캠프가 승리하면서 페일린의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과연 월즈와 밴스 역시 토론회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을 만들어낼지, 아니면 지금까지 쉽게 잊혔던 숱한 토론회처럼 희미하게 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