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 설립 학생수 138명 소규모 학교…한국어 교가 울려퍼지자 일부 네티즌 ‘혐한’ 발언
#교토국제고는 어떤 학교?
일본의 여름을 상징하는 고시엔, 그 축제의 피날레를 한국계인 교토국제고가 장식했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은 일본에 사는 교포 사회에도 큰 감동을 줬다. 경기가 끝난 뒤 구장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지자 응원을 위해 모인 재일교포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재일교포 2세 여성(75)은 “75년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라며 웃었다. 60년 전 교토국제중·고교를 졸업한 이 여성은 “교토에서 1등만 해도 경이로운 작은 학교인데 고시엔 우승이라니…. 뭉클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감격했다.
교토 히가시야마구에 위치한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교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58년 한국 정부 인가를 받았고, 1963년 고등부를 개교했다. 2003년에는 일본 정부 인가를 거쳐 교토국제고로 이름을 바꿨다. 졸업하면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학생 수는 현재 중학생 22명, 고등학생 138명으로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공부하고 있다. 재적 학생의 65%가 일본인이고, 한국계는 30% 정도다. 국적으로만 보면 전체 학생의 80%가 일본 국적이다. 최근에는 “K팝 등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 학생들의 입학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재학 중에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봐야 하며 수학여행은 한국으로 가는 등 학교 측은 한국에 대한 이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교가도 한국어로 부른다.
#폐교 직전 꺼낸 비장의 카드
시련의 순간도 많았다. 1990년대 후반 전교생 수가 70명으로 줄어들어 폐교 직전까지 몰렸다. 야구부는 학교가 꺼낸 고육지책이었다. 학생 모집을 위해 1999년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야구부를 창단했다. 전략적으로 야구부를 키운 셈이다.
초창기엔 야구 미경험자가 대부분이어서 경기에서 한 점도 못 내고 수십 점 차로 대패하는 등 고시엔 진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실력을 키워 2003년 교토 지역 대회에서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9년에는 춘계 지역대회에서 우승하며 명실상부한 교토의 야구 명문고로 부상했다. 지금까지 고시엔 대회는 봄에 2회, 여름에 3회 출전한 바 있다. 일본 프로야구 현역 선수 중에서는 나카가와 하야토(한신 타이거스), 모리시타 류다이(요코하마 DeNA)가 이 학교 졸업생으로 알려졌다.
야구부가 명문으로 발돋움하자 전국 각지의 유망주들이 교토국제고로 모여들었다. 현재 고교생 138명 중 야구부 소속은 61명에 달한다. 대부분이 일본인으로 이번 우승 라인업 중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는 1번 좌익수 가네모토 유고 한 명뿐이다.
백승환 교토국제고 교장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연습했다”며 “아이들의 작은 힘으로 야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야구부 주장 후지모토 하루키는 “다른 고등학교와 달리 우리는 일본인, 한국인 모두 응원해줘서 정말 기쁘다. 한국분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며 소회를 밝혔다.
#고마키 감독과 신성현의 인연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기적에는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41)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우승 후 고마키 감독은 “대회 전 선수들에게 하루라도 더 오래 너희와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솔직히 여기까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라고 대견함을 드러냈다. 이어 “이런 아저씨에게 멋진 여름방학을 선물해줘서 고맙다”라며 기뻐했다.
아사히신문은 고마키 감독과 교토국제고와의 인연을 두고 “한 편의 야구만화 같다”고 평했다. 고마키는 교토 야구 명문인 세이쇼고교 출신으로, 1999년 이제 막 야구부를 창단한 교토국제고와 지역 예선 경기에서 처음 만났다. 경기 결과는 34 대 0. 당시 교토국제고에 참담한 패배를 안긴 에이스 선수가 바로 고마키였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고마키는 은행원이 됐는데, 지인 소개로 교토국제고 야구팀 연습을 틈틈이 도와주다 2007년 정식 코치를 맡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주말에만 타격과 수비를 지도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아예 은행까지 그만두고 2008년엔 감독으로 부임해 지금까지 팀을 책임지고 있다.
고마키 감독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교토국제고를 본격적으로 지도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 한국인 유학생 선수와의 만남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전직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 선수이자 현 두산 전력분석원인 신성현이다. 고마키 감독은 “신성현은 일본어를 한두 마디밖에 할 줄 몰라 지도가 어려웠지만, 힘든 훈련도 마다하지 않고 헝그리 정신으로 열심히 했던 선수”라며 “신성현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강점에 대해서도 고마키 감독은 헝그리 정신을 들었다. 야구부 기숙사에는 에어컨도 안 나오고, 라커룸이나 샤워시설도 부족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학교 야구장 길이는 70m도 되지 않아 평소엔 수비 위주로 훈련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타격도 높고 멀리 치기보다 낮고 강한 타구를 만드는 쪽으로 집중했다. 연습 경기라도 하려면 주변 야구장을 빌려야 했다.
고마키 감독은 “학교에 돈이 없기 때문에 낡은 야구공에 비닐 테이프를 감으면서 재사용하던 시절도 있었다. 독특한 뿌리를 가진 학교이고 운동장도 좁지만 그럼에도 야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해 준다. 그래서 야구로 밥 먹고 살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가 놓고 ‘장외 설전’
일본 인터넷상에서는 교토국제고의 기적을 축하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야구평론가 고지키는 “교토국제고의 첫 우승을 축하한다. 지역 예선부터 고시엔 8강전까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다. 준결승, 결승은 접전 끝에 승리했지만, 가히 우승 학교에 걸맞는 팀력이었다”고 칭찬했다. 저널리스트 나카지마 케이는 “이번 고시엔을 통해 한국어 교가를 들으면서 ‘시대의 변화’를 절실히 느꼈다. 앞으로도 새로운 유형의 고교야구 강호가 속속 등장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통에 따라 고시엔에서는 출전 학교의 교가를 부른다. 경기에서 승리하면 한 번 더 교가를 틀어준다.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는 2021년에도 한 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백승환 교토국제고 교장은 “2021년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4강에 진출했을 땐 심각했다”고 전했다. “한국어 교가가 처음으로 고시엔에 울려 퍼졌는데, 당시 냉골이던 한일관계의 영향으로 혐한 전화가 학교로 쏟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도 ‘학생들의 스포츠다. 정치적으로 이념화시키면 안 된다’라며 자정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도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승리 직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혐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고시엔 개장 100주년 대회에서 한국어 교가를 들어야 하냐” “교토의 수치다” “동해로 표기한 가사가 교가에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 네티즌은 “고시엔 구장에 가서 직접 결승전을 보고 왔다. 한국어 교가가 흘러나와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워낙 주목도가 높은 대회라 냉철하지 못한 게시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편향된 시각으로 스포츠 경기를 봐서는 안 된다”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교토국제고 주장 후지모토는 일본 스포츠 전문지 데일리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있다.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한 뒤 “우리는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들어왔다. 감독님과 응원해주신 분들을 위해 꼭 이겨야겠다고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교토부 지사 혐한글 자제 촉구
교토국제고가 소재한 교토부의 니시와키 다카토시 지사는 8월 23일 정례기자 회견에서 “교토국제고를 둘러싸고 민족 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글 4건을 삭제하도록 요청했다”며 “차별적인 투고가 있어서는 안 된다. 삼가 달라”고 촉구했다.
니시카와 지사는 “3년 전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4강에 진출했을 때 ‘한국계 민족학교가 전신이다’ ‘교가가 한국어’라는 이유 등을 들어 인터넷상에서 차별적인 게시물과 욕설이 잇따랐다”면서 “이번에도 같은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담당 부서가 게시물을 모니터링해왔다”라고 밝혔다. 조사에 의하면 “혐한이나 재일한국인에 대한 증오를 보이는 일본 극우층의 대부분은 50~70대 중장년 남성들”이라고 한다.
관련 뉴스가 보도되자 시사평론가 후루야 쓰네히라는 “교토부의 대응이 바람직하다”라고 동조했다. 후루야 평론가는 “일본에는 기독교대학 부속 고교들도 많이 있으며 이들 교가에는 기독교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누군가 이에 대해 항의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이기 때문에 민족학교라는 이유만으로 공격하는 것은 추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차별적 행동이 고교야구 세계로 뻗어가는 것은 엄중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오타니도 통한의 눈물…일본인들 왜 ‘고시엔’에 열광하나
고시엔은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야구 구장 이름이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홈구장으로 갑자년(甲子年)인 1924년에 완공돼 갑자원(甲子園), 일본어 발음으로는 고시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올해로 개장 100주년이 됐다.
한편으로는 일본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매년 3월 구장에서 열리는 ‘선발고교야구대회’를 봄 고시엔, 8월에 열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를 여름 고시엔이라고 부른다. 여름 고시엔은 1915년 시작돼 올해로 106회를 맞았으며, 봄 고시엔도 1924년부터 개최됐다. 둘 다 역사와 전통이 깊지만, 인기나 위상 면에서 볼 때 여름 대회 쪽이 좀 더 높다.
고교 야구선수들에게는 평생 한 번 밟아볼까 말까 한 꿈의 무대다. 예선부터 한 번이라도 지면 그대로 탈락하기 때문.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야구스타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도 하나마키히가시고교 시절 두 차례 고시엔 본선에 나섰으나, 모두 1차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특히 오타니가 2012년 고교 3학년 때 고시엔 참가를 결정짓는 지역 결승에서 패한 뒤 “분하다”며 눈물을 펑펑 흘린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일본 유소년 야구선수들의 대다수는 프로 진출이 목적이 아니다. 오직 고시엔을 위해 야구를 한다. 뜨거운 여름, 고시엔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모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본선 탈락 시 통한의 눈물을 쏟으며 고시엔 구장의 흙을 담아가는 게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어떤 선수라도 전력을 다하며 그 열정은 예상치 못한 놀라움과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많은 일본인이 고시엔에 매료되고 ‘낭만’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야구 성지에 울려퍼진 교토국제고 교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서해를 울리도다 자유의 종은
자주의 정신으로 손을 잡고서
자치의 깃발 밑에 모인 우리들
씩씩하고 명랑하다 우리의 학원
해바라기 우리의 정신을 삼고
문명계의 새 지식 탐구하면서
쉬지 않고 험한 길 가시밭 넘어
오는 날 마련하다 쌓은 이 금당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
새로운 희망길을 나아갈 때에
불꽃같이 타는 맘 이국 땅에서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