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사단 감찰부 가혹행위 보고서 ‘얼차려’ 내용 삭제…훈련병 작성 설문조사 원본은 파기
25일 천하람 원내대표는 육군 제12보병사단 감찰부가 ‘얼차려’ 등 가혹행위에 대한 훈련병들의 답변 내용을 삭제한 보고서를 사단장에게 보고했고, 설문조사 원본은 파기됐다고 폭로했다. 가혹행위로 훈련병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강 아무개 대위가 담당했던 기수에 대한 설문조사 답변 자료도 파기됐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5월 25일 12사단 신병교육대 소속 훈련병 박 아무개 씨가 군기훈련을 받던 중 쓰러져 사망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박 씨 등 훈련병 6명은 약 32kg 무게의 완전 군장을 메고 연병장 구보와 팔굽혀펴기 등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박 씨는 만 21세였다.
춘천지검은 지난 7월 15일 군기훈련을 지시한 중대장 강 대위와 부중대장 남 아무개 중위를 ‘학대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규정을 위반한 군기 훈련을 하고 실신한 박 씨에게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6일 춘천지법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공판에서 두 사람은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천 원내대표가 국방부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5월 28일 12사단 감찰부는 사망한 훈련병이 소속된 기수인 24-9기 훈련병들에게 인권침해 및 가혹행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훈련병 사망사건이 발생한 지 3일 만이다. ‘신병 교육 및 훈육을 빙자한 얼차려가 있었는지’를 묻는 말에 훈련병 234명 가운데 76명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12사단 감찰부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에 얼차려 등 가혹행위와 관련한 훈련병들의 답변 내용을 모두 제외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군은 “얼차려와 관련한 사항은 이미 수사기관이 조사 중인 사안으로 본 설문결과에 반영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에 얼차려 관련 내용을 제외했다”고 해명했지만, 훈련병들이 작성한 설문조사 원본은 전량 파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피의자인 강 대위가 담당했던 23-18기, 24-1기, 24-5기 등에 대한 설문조사 자료도 모두 파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천 원내대표는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동기 훈련병들의 구체적인 진술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졌다”며 “이는 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스스로 산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천 원내대표는 “유가족들도 피의자 강 대위가 담당하였던 이전 신병 교육 기수에서도 반인권적 얼차려가 있었는지에 대한 자료를 요구해 왔는데, 이 자료 또한 군의 고의적 폐기로 확인하기 어려워졌다”며 “향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인권위원회가 12사단 사망사건과 관련된 조사 절차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