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건국절 법제화 주장’ 전희경 주최 토론회 교수 신분 참석…권익위 국장 사망하자 사의, 민주당에 피고발
#정승윤의 건국절 발언
“1948년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나서 처음 헌법이 생겼는데, 이 이전에 대한민국은 공화주의도 없었고, 법치주의도 없었다. 그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인정해야 한다.”
2018년 12월 17일 열린 것으로 추정되는 한 토론회에서 정승윤 부위원장이 한 말이다. 당시 정 부위원장은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분으로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전희경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했다. 전 전 의원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규정하는 건국절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2023년 11월까지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무1비서관으로 일했다.
정 부위원장은 “1948년 이후 대한민국은 꾸준히 공화주의와 법치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세월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법치주의가 발전했다. 그런데 최근 1~2년 법치가 완전히 무너진 것 아닌가, 과거에 부침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몰락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은 이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법치주의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이념이 공화주의다.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 제도다. 이 자유주의 이념이 몰락했다. 현 정부 들어오면서 어떤 이념이 등장했나. 사회민주주의 이념이 등장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는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는, 사회의 모든 것에 국가가 개입하고 예외적으로 국민이 자유를 누리는 형태로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이 시기 문재인 정부는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포용국가)’를 주요 국정전략으로 내세웠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서는 포용국가를 ‘국민 누구나 성별, 지역, 계층, 연령에 상관없이 차별이나 배제를 받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으며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국가가 국민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삶을 책임지며,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미래를 위해 혁신하는 나라’라고 규정한다. 정 부위원장은 이 국정전략을 비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장관 인선, 탈원전 정책, 법관탄핵 등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정 부위원장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 때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라며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이 훨씬 더 심하다”며 “현재 인사청문회 대 채택 안 된 장관들이 얼마나 많이 임명됐나. 인사청문회를 안 거쳐도 되는 자리(비서실장과 민정수석)가 권력의 실세가 됐다. 권력의 우회상장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한수원은) 하는 업무가 원자력 발전인데, 원자력 발전을 스스로 폐지하는 게 이 기업 이사회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자기부정하는 이사들”이라며 “도덕적으로 문제 있지 않은가. 우리 자유한국당이 정말 정신 차리셔야 된다”고 했다.
법관탄핵에 대해 말할 때는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정 부위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지키라고 해놨더니 사법부 안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소위 적폐 청산 인민위원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법률과 헌법에 없다. 규칙 하나 만들어서 동료 법관들을 탄핵하라고 했다”고 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 시기 전국 법관들로 이뤄진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에 대해 탄핵 소추 절차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을 미루거나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요구를 전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이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상고법원 설치 등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26일 1심 판결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47개 혐의에 대해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에 대한 수사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휘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수사팀장을 맡았다.
#정승윤의 뉴라이트 이력
정승윤 부위원장은 뉴라이트 출범 초기부터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 부위원장은 2008~2009년 사이 뉴라이트 재단이 발간하는 계간지인 ‘시대정신’ 임원으로 참여했다. 시대정신은 1998년 창간된 잡지다. 1980년대 주체사상 노선을 걷던 인사들이 전향한 다음 이 잡지를 창간했다. 2006년 뉴라이트 재단이 인수해 계간지로 재창간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기업 후원이 끊기면서 2017년 발행이 중지됐다.
시대정신은 2006년 ‘뉴라이트를 설립하며’라는 글 서두에서 “(2004년 말 시작된 뉴라이트 운동이) 집권 민주화 세력에 의해 그 정당성이 부정된 대한민국의 건국과 60대 이후의 경제발전이 정상적이고 필수적인 역사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임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최근 문제 되는 건국절 주장이 나온 대목이다. 이어 이 글에서는 △햇볕정책 반대 △작은 정부와 큰 시장에 기초한 경제 △한·미·일 연합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부위원장은 2011년 10월 13일 ‘국가배상법상 위법과 고의·과실 개념에 관한 소고’ 머리말에 현재 국가배상소송 실무는 대한민국 ‘건국 헌법’ 이래에 논의된 이론과 판례를 기초로 이루어진 성과물’이라고 썼다. 표준으로 굳어진 ‘제헌헌법’이라는 용어가 아닌 ‘건국헌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부분이 눈에 띈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2011년 11월 15일 작성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상 인권침해사건에서 나타난 주요 법적 쟁점’ 본문에서는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단기간 산업화에 성공하고 민주화를 달성’이라고 서술했는데, 그 각주엔 ‘1948년 8월 건국헌법 제101조에 의거하여’라고 언급돼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드러내 왔던 정 부위원장은 지난 1월 27일 권익위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정 부위원장은 검사 출신과 뉴라이트 출신을 중용한 윤 정부 인사 기조에 부합하는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남부지검, 광주지검 순천지청, 부산지검 등에서 검사로 일했다. 2006년부터는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교수 임용을 전후해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캠프 선거대책본부에서 사법개혁 공약 실무를 총괄했다. 이때 경찰 처우 개선 공약을 설명하는 참고자료를 냈다. 참고자료에는 여성 경찰을 비하하는 ‘오또케’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는 여성 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어떡해’라는 말만 하며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비하할 때 쓰는 용어다. 정 부위원장은 언론에 “여성 비하 표현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정 부위원장은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으로 있었던 김 아무개 씨 사망 사건에도 이름이 거론된다. 김 씨와 정 부위원장은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처리를 두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위원장은 8월 13일 사의를 표명하며 김 국장 순직 절차가 마무리된 다음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보통 순직 인정까지는 2개월 이상 소요된다. 이를 놓고도 야권은 정 부위원장이 즉각 사퇴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정 부위원장을 공수처에 고발하기로 했다. 민주당 등 야권은 정 부위원장 등 권익위 수뇌부가 김 씨에게 김 여사 사건을 종결하도록 압박했다고 의심한다.
일요신문은 8월 21일 권익위에 문자와 전화로 관련 내용을 질문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