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 때고 뜸 들이고 ‘밥 되려면 멀었다’
|
||
| ▲ 지난 25일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 ||
이 공판조서는 지난해 12월 7일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 허태학 박노빈 씨 공판에 대한 기록이다. 이후 1월 18일로 예정된 선고공판이 3월 이후로 연기됐기 때문에 이번 공판조서 조작 논란이 재판 연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공판조서 작성 과정에서 논리적 기록을 위해 녹취록 내용에서 약간의 내용을 덜어내거나 필요한 부분을 추가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기록을 위한 불가피한 수정이었는지, 아니면 재판 결과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즉 ‘조작’이란 수식어를 쓸 만한 가공이 있었는지에 궁금증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한 검찰과 재판부는 외관상 ‘큰 문제없다’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이번 공판조서 논란의 핵심은 ‘검찰 측의 공소장 일부 변경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이 녹취록엔 없지만 공판조서엔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논란 점화 이후 재판부는 검찰 측에 이의 없는가를 물었으며 재판부 직권으로 공소장 변경을 하는 것도 관행 중 하나이기 때문에 조작 논란으로 비화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측은 재판과정에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을지 몰라도 공판조서 조작 의혹으로 볼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실제로 재판부와 검찰 양측은 이번 일의 진위 파악을 위해 내부적으로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판부와 검찰이 속으로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속속들이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번 공판조서 조작 논란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에 대해선 제법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재판 장기화에 대한 전망이다.
|
||
이는 선고공판 연기를 바라는 것이 검찰인가, 아니면 재판부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검찰은 그동안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 선고공판 이후 이건희 회장 소환시기 조율’ 원칙을 고수해왔다. 선고공판이 늦어지면 이건희 회장 소환 논의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 회장 소환 이후 이 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검찰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돼 온 바 있다. 이는 재판 장기화가 검찰의 의도에 부합할 것이란 시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지난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속 직후 이건희 회장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져 곤욕을 치렀던 검찰이 이 회장 소환 문제를 마냥 뭉개려 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편 론스타 관련 인사들 영장 기각 사태를 겪으며 검찰과 견원지간이 된 재판부가 ‘검찰에 비해 삼성에 친화적’이란 평가를 내리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재판부는 ‘증거와 정황에 대한 추가 요구’를 통해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들의 유죄를 입증하려는 검찰을 애먹이기도 했다. 공판조서 내용 변경도 결국 재판부 안에서 이뤄진 일이란 점을 부각시키는 인사들도 있다.
그러나 법원이 지난해 두산 총수일가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재판 장기화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 중 하나가 재판부라면 비판적 여론을 감수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공판조서 논란이 확전되면 책임론이 불거져 담당 재판부가 바뀔 수도 있다. 재판부가 받아들이기에 좋은 모양새는 아닌 셈이다.
|
||
| ▲ 허태학 (왼쪽), 박노빈 | ||
선고공판 연기 결정 이후 법조계와 재계에선 ‘2심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차피 대법원(3심)까지 갈 것이기 때문에 최종 판결은 내년이 돼서야 나오게 될 것’이란 말이 나돌게 됐다. 그런데 이번 공판조서 조작 의혹이 확전돼 재판부 교체나 추가 심리 등을 불러올 경우 이는 2심 재판 장기화를 불러 올해 안에 2심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차피 검찰이 ‘2심 선고 이후 이건희 회장 소환 조율’ 원칙을 세워놓은 이상 재판이 장기화될수록 이 회장 소환 시기는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정치권 최대 이벤트인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이 회장 소환설이 관심권에서 벗어나게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약 내년 2월 새 대통령 집권 이전까지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들 선고공판이나 이 회장 소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새 정권 출범에 따른 대규모 사면 특수를 삼성 측이 기대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재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삼성에만 좋은 일 하는 셈이란 지적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과 법원 내부에선) 삼성과 인연을 맺고 있는 언론에서 이번 공판조서 조작 논란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룬다고 보고 있다”고 밝힌다. 삼성 내에 포진한 언론사 출신 인사들이 이번 공판조서 조작 의혹을 부추겼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삼성 측 인사들은 “에버랜드 재판 관련 논란이 커져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것이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