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얼굴이라 캐스팅했다기에 의아하면서도 호기심 생겨”…고민시 사이코패스 연기에 ‘엄지 척!’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하실 때 ‘착한 얼굴이라서’ 그러시더라고요. 저도 참 의아한 부분인데(웃음), 한편으론 한 번쯤은 그런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 주시는 디렉션을 받아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봤더니 진짜 제가 너무 착하게 나오더라고요. 아유, 볼 때마다 슬퍼 죽겠어요(웃음). 작품 통해서 제 이미지 변신도 참 잘 된 것 같아요. 보시는 분들마다 ‘너무 불쌍하다, 아이구 슬프다’라고 반응하시니까 ‘됐다!’ 생각했죠(웃음).”
8월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아없숲)에서 윤계상은 모아 둔 돈을 탈탈 털어 개업한 모텔에 연쇄살인마가 손님으로 들어오면서 회복할 수 없는 손해와 상처를 입게 된 모텔 사장 구상준 역을 맡았다. 소중한 아내, 사랑스러운 아들과 함께 열심히 일한다면 노력에 보답 받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살았지만, 한순간에 ‘살인마의 범행 현장’의 주인이 된 이들은 끝을 점칠 수 없을 만큼 추락하게 된다. 직접적인 범행 피해자가 아니기에 동정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면서 끈끈했던 가족관계마저 무너져 내린다.
“극 중에서 상준이의 가족처럼 갑작스럽게 ‘나쁜 일’을 당한 사람들을 ‘개구리’로 표현해요. 나쁜 일을 당했지만 ‘큰일’은 아니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죠. 실제로는 ‘큰일’을 당했는데도 모두가 외면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잔잔하게 상처를 받으면서 무너져 내려가는 역할이 바로 상준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은 자연재해처럼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데, 치유가 완벽하게 되지 않으면 이렇게 작은 사건에도 모든 게 다 무너질 수 있는 거죠. 이런 지점에서는 일반 대중 분들도 보시기에 충분히 공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시점에서 자신과 똑같이 ‘돌에 맞은 개구리’가 된 펜션 주인 영하(김윤식 분)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전달하는 상준은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얼굴과 달리 머릿속은 온통 그날의 가족들에게 머물러 있다. 윤계상은 이처럼 과거의 기억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딱한 노인을 연기하기 위해 가장 깊은 고민에 빠져 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6부에서 나오는 상준은 자기만의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나이만 먹은 거예요. 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살을 조금 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빼봤는데, 감독님이 보시더니 ‘젊어 보인다’면서 걱정하시더라고요(웃음). 노인으로서 목소리도 고민이 참 많았어요. 좀 더 나이 들게 해볼까 하다가도 그러면 연기에서 티가 날 것 같아서 결국 제 원래 목소리로 했죠. 상준은 자신의 어둠과 고통, 상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굉장히 진심을 담아서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서사 구조상 이처럼 과거의 인물인 상준은 현재의 인물인 펜션 사장 영하, 파출소 소장 보민(이정은 분), 그리고 영하의 펜션에서 살인 사건을 일으켜 그를 상준과 같은 ‘개구리’로 만든 사이코패스 화가 성아(고민시 분)와 제대로 마주하는 장면이 없다. 이렇다 보니 이 배우들의 연기를 윤계상 역시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공개된 작품을 통해서 처음 볼 수 있었다. 특히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던 고민시의 연기는 보는 내내 “고민시!”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들게 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어휴, 고민시 씨 연기는 진짜 최고죠. 사이코패스 연기는 막상 해보면 정말 쉽지 않거든요. 솔직히 나쁜 놈이 나쁘게 된 동기가 어디 있겠어요? 전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사이코패스라 사이코패스인 거거든요. 민시 씨는 그런 역할을 딱 그 역할대로 해낸 것 같아요. 저는 극 중 성아를 보면서 몰입이 깨진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단 한 번도 없더라고요. 오히려 너무 섬뜩하고, ‘얘가 대체 뭘 저지를까’만 생각하게 돼요. 정말로 연기를 너무 잘해요. 대본 리딩 때부터 저랑 (박)지환이랑 ‘쟤는 누군데 이렇게 잘해?’ 그랬다니까요(웃음). 그런데 본인한텐 이런 말 못 했어요, 쑥스러워서(웃음).”
이처럼 ‘빌런 고민시’를 향해 엄지가 뒤로 꺾일 때까지 치켜올린 윤계상이지만, 그 역시 ‘빌런 윤계상’으로서 대중들에게 이만저만 깊이 각인된 처지(?)가 아니었다. 시리즈를 거듭해도 최고의 빌런을 꼽을 때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범죄도시’의 장첸은 윤계상의 연기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 캐릭터다. 이번 작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더없이 착하고 가엾은 얼굴을 보여줬으니, 이제 한 번쯤은 다시 무도한 악당 역할을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걸 하면 저걸 하고 싶고, 저걸 하면 이걸 하고 싶고 그래요(웃음). 이번에 고민시 씨가 정말 최선을 다해 (악인) 연기를 하는 걸 보면서 제가 장첸을 연기했을 때를 떠올리기도 했죠. 저도 그때 정말 온 힘을 다했거든요. 기회만 된다면 앞으로도 빌런 역을 또 하고 싶어요. ‘범죄도시’ 시리즈가 계속 나오면서 저도 1대 빌런으로서 그 작품의 덕을 계속 보고 있으니까요(웃음). 제게 장첸이 인생 캐릭터로 자리 잡은 게 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말씀들도 하시는데, 부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좋죠 뭐, 땡큐죠 저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