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밤’ 이은 또 다른 신스틸러로 완벽 활약…“액션 연기, 부담보단 갈증 더 크죠”
“제가 작품에 매번 만족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할 만하게 했다, 할 수 있는 건 했다’ 하는 정도죠. 게이지로 따졌을 때 50% 이상이면 만족한다고 수치가 정해진 건 아니니까요. 이번 작품에서도 저는 할 수 있는 건 했고, 어디 허들에 막히지 않고 잘 흘러가는 것 같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입니다(웃음).”
박훈정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자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은 한국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던 프로젝트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사고로 사라진 뒤,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추격 액션 스릴러다. 강화인간을 소재로 한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인 작품으로 차승원은 여기서 ‘폭군 프로그램’의 방해 세력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게 된 전직 요원이자 킬러 임상으로 분했다.
“임상의 무자비함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원래는 약간 무기력해 보이지만,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정말 민첩하게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또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에 완전히 익어있다는 걸 표현해야 하다 보니 잔인함이 꼭 필요했죠. 임상이 상대를 고문하는 신도 그렇게 잔인하게 하는 게 제 개인적으론 굉장히 좋더라고요. ‘저 사람한테 걸리면 끝장이야’라는 입소문이 난 사람처럼 보이게끔 구성하고 싶었어요. 평소엔 학생들한테도 치일 만큼 유들유들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사람이라는 대비를 계속 주려고 한 거죠.”
‘폭군 프로그램’을 지키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 그리고 가로채려는 자들이 한데 모여 시퍼런 날을 세우고 있는 사이 임상은 차승원의 말대로 겉보기엔 다소 무기력하면서도 유들유들하게 그려진다. 이처럼 권태에 찌든 중년이란 가면과 냉정하고 잔인한 킬러라는 본성, 두 가지 얼굴을 오가는 차승원의 ‘연기 간극’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임상이라는 캐릭터에게 더 깊이 몰입하도록 했다. 차승원은 무엇보다 임상의 ‘일상’과 ‘임무’에서 미묘하지만 뚜렷한 차이가 느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연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상에서 보이는 임상의 피곤하고 피폐해 보이는 모습은 제가 설정한 거예요. 나머지 인물들이 다 독이 올라 있으니 임상은 좀 반대로 갔으면 했거든요. 혼자만 유머러스한 지점도 그렇고, 겉보기엔 무기력해서 툭 치면 관절이 나갈 것 같은 그런 설정을 가져갔어요(웃음). 그러다가도 임상이 감염자 가족에게 기자라면서 접근할 때를 잘 보시면 그때 쓰는 말투와 임무를 수행할 때 말투가 다르다는 걸 눈치 채실 수 있을 거예요. 연기할 때 그렇게 차이를 주려고 노력했거든요.”
‘폭군’에서 차승원은 폭군 프로그램을 지키려는 국정원 소속 최 국장 역의 김선호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차승원은 앞서 ‘낙원의 밤’으로, 김선호는 ‘귀공자’로 각각 박훈정 감독의 세계관에 뛰어들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역할로 첫 합을 이룬다는 것에 대중들의 관심이 모였었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로 김선호를 먼저 알고 있었다는 차승원은 그에 대해 “정말, 굉장히,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예전에도 한 번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언젠가 김선호 씨 광고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안에서 아마 애드리브이지 싶은데, 굉장히 유연하게 연기를 하는 게 눈에 띄더라고요. 광고에서 그렇게 유연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번 ‘폭군’에서도 마지막 신을 찍을 때 제가 단상 위에서 선호 씨 얼굴을 딱 보는데 최 국장의 어떤 쓸쓸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아마 제가 연기했다면 그런 느낌이 안 나왔을 거예요. 정말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기본기가 탄탄한 친구라는 걸 그때 느꼈죠.”
‘박훈정 누아르’에서 함께한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전작인 ‘낙원의 밤’의 주연, 엄태구를 끌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이 직전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 촬영 중 깜짝 등장해 자신을 놀라게 했던 엄태구의 성대모사까지 해 보이며 알차게(?) 그를 놀려댄 차였다. 엄태구 이름 석 자가 나오자마자 차승원은 “태구 걔 참 희한한 애야…”라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성대모사와 함께 진심어린 칭찬을 이어나갔다.
“‘낙원의 밤’ 때도 걔 흉내 내다가 촬영이 끝났었거든요. 저한테 대고 혼자 웅얼웅얼하기에 ‘뭐라고?’하고 물어봤더니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는 거예요. 저는 거기다 대고 ‘알았어…’ 그러고(웃음). 참 진짜 희한한, 그런데 또 되게 매력있는 친구예요. 어쩜 그렇게 수줍음이 많을까(웃음)? 사실 저는 ‘낙원의 밤’때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박훈정 감독님하고도 잘 맞았고요. 워낙 호불호가 뚜렷하신 분이라 안 맞는 배우랑은 진짜 안 맞고, 잘 맞는 배우랑은 진짜 잘 맞는데 저는 잘 맞는 배우 중 하나였죠(웃음).”
감독, 세계관, 그리고 함께한 배우들과도 모두 좋은 합을 이뤘던 만큼 향후 이어질 또 다른 ‘박훈정 누아르’에서도 차승원의 액션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미 박훈정 감독과 ‘낙원의 밤’ 마 이사의 프리퀄 제작 이야기도 나눈 적 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배우 본인도 여전히 액션 연기에 부담과 동시에 강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임상을 연기하면서 15kg가 넘는 총을 들고 액션 신을 찍다 보니 양쪽 팔꿈치에 다 무리가 와서 치료 중이거든요. 그래서 내년엔 좀 액션을 줄여볼까 했는데, 파리 올림픽 폐막식에 나온 분(톰 크루즈)을 보니 당치 않은 생각이었다 싶죠(웃음). 잘 관리하면 앞으로도 더 할 수 있을 거예요. 배우라는 직업이 내가 액션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걸 받아서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액션 오더가 오면 그걸 할 수 있는 컨디션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액션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으니까요, 기사에도 꼭 그렇게 강조해주세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