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몸값 생각 않고 높은 장벽 탓 ‘헐~’
▲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업황부진 등을 이유로 잇따라 한국을 떠나고 있다. 이미지는 합성. |
골드만삭스도 18억 3000만 원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인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기준 주요 20개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의 경영실적을 봐도 4개사가 적자를 기록했고, 6개사가 자본금보다 자본총계가 적은 자본잠식 상황이다. 이미 증자 형태로 160억 원을 더 출자한 골드만삭스도 추가 출자가 없다면 연내에 결국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골드만삭스의 최근 5년간(2007~2011년) 누적적자는 387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과연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경영부진이 업황 때문만일까?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골드만삭스의 철수는 외국계 운용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자리 잡기 힘든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해외의 경우 엄격한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지만 한국 시장은 일임과 신탁, 머니마켓펀드(MMF) 등 상품에 대한 이해 없는 규제들이 운용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의 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업황이 부진하다지만 2010년 4조 1091억 원인 수탁고(신탁 1조 3020억 원, 일임 2조 8889억 원)는 올 3월 말 현재 5조 5139억 원(신탁 1조 3754억 원, 일임 4조 1384억 원)으로 불어났다. 물론 개인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관고객이 대부분이지만, 운용 성적도 나쁘지 않으니 결국 마케팅의 실패로 볼 수도 있다. 골드만삭스운용 주식형 펀드의 최근 5년 누적 수익률(11월 1일 기준)은 31.91%로 33개 운용사 가운데 1위다. 시장(벤치마크) 초과수익률만 35.85%에 달한다.
문제는 오히려 내부에서 발견된다. 골드만삭스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적자 원인 가운데 영업비용 부담이 유독 크다. 업계에서 가장 많은 임직원 연봉을 지급하다 보니 43명의 직원에 들어가는 인건비가 연간 100억 원을 넘는다.
지난해 자산운용사 임직원 평균연봉은 1억 1142만 원인데, 골드만삭스는 2억 5681만 원으로 그 2배가 넘었다. 인프라펀드를 운용하는 맥쿼리(3억 3908만 원)를 빼면 외국계 1위다. 골드만삭스와 비슷한 직원 규모를 가진 도이치자산운용의 경우 2010회계연도 80억 원이 넘던 인건비를 2011회계연도에는 60억 원대로 줄였다. 임금이야 회사 고유의 경영판단 영역이지만, 한국시장의 높은 장벽으로 인한 경영부진만을 철수 이유로 꼽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미 10년 넘게 한국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프랭클린템플턴이나, 알리안츠운용의 예를 들면 한국 시장의 문제라고 하기는 더 어렵다. 프랭클린템플턴은 적자가 날 때도 있지만 꿋꿋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고, 알리안츠는 업계 상위권에 자리매김할 정도로 위상이 탄탄하다.
철수를 준비 중인 ING자산운용의 경우에도 2008회계연도를 제외하고는 2007년 이후 줄곧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모기업인 ING생명이 떠나면서 동의 철수가 이유니까, 어찌됐건 돈을 벌고 떠나는 셈이다. SEI에셋자산운용의 경우에도 같은 미국계인 베어링자산운용이 인수했으니 ‘한국시장이 어려워서 떠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익명의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2005~2007년 펀드 산업이 최대 호황일 때는 자산운용업 라이선스를 받거나 기존 회사를 인수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수혜였다”며 “그런데 시장이 좀 어려워졌다고 짐 싸 떠나면서 한국 시장 탓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골드만삭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인 이지형 씨(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가 대표로 있던 맥쿼리IMM자산운용을 1600억 원에 인수해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 맥쿼리IMM 시절만 해도 업계 최상위권의 경영실적을 자랑했지만, 골드만삭스로 이름을 바꾼 후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국내에서 동양증권과 제휴를 맺었지만, 이 역시도 전략적 실패란 지적이 많다. 동양증권은 최근 모그룹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영업 분야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가 국내 자산운용업에서는 손실을 보기는 했지만, 이밖에 투자은행(IB) 부문에서는 그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막대한 돈을 벌었다. 지난 7월 골드만삭스증권은 이익잉여금 2700억 원의 본점 송금을 결정했다. 2011회계연도 당기순이익 399억 원의 6.7배가 넘는 금액이다. 골드만삭스증권 관계자는 “2006년 이후 본점 송금을 못하다 6년 만에 처음으로 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재무건전성을 은행의 국제결제기준(BIS) 비율로 치면 40%가 넘어 자본금을 과도하게 가져가는 것보다 본점으로 보내 재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골드만삭스증권이 지난 2007년 실시된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본점 송금을 미루다 한꺼번에 이익을 챙겨갔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국세청은 골드만삭스가 외환위기 이후 진로 부실채권 투자 등으로 수조 원의 이익을 내고도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은 데 대해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해 지난해 688억 원의 법인세를 추징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시장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돈벌이에만 집중한다는 비판도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슈로더브릭스펀드’로만 한때 10조 원이 넘는 수탁고를 자랑했던 슈로더자산운용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750억 원을 배당금으로 챙겨갔지만, 현재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운용하는 펀드는 단 2개에 설정액은 채 300억 원이 안 된다. 이쯤 되면 운용사가 아니라 거의 ‘판매중개사’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골드만삭스 철수를 계기로 국내 펀드산업 발전보다는 펀드 중개를 통한 손쉬운 돈벌이에만 열중하는 외국계 운용사의 사업 관행에 대한 비판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