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끼고 커뮤니티와 짜고…병원들 ‘성형 장사’ 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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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싸게 고쳐요~ 최근 다수의 성형외과에서 박리다매 장사가 이뤄지는 탓에 부작용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
“암수술을 공동구매로 하는 것 봤습니까?”
지난 2000년도 초 국내에 성형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강남 일대에 성형외과를 개업하는 전문의 수가 크게 급증해왔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일각에선 ‘의사 중에 가장 부자는 성형외과 의사’, ‘의느님(의사는 하느님)’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모든 현상엔 흥망성쇠가 있듯이 약 3~4년 전부터 국내 성형시장에서 홈쇼핑 채널에서나 볼법한 방식의 ‘끼워 넣기’ 판매가 버젓이 이뤄지거나, 심지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불법 공동구매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성형시장이 포화상태가 됨에 따라 박리다매 장사를 선택한 성형외과 의사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재 코 성형 수술은 시가 280만~300만 원 선으로 형성돼 있다. 그러나 코 성형 수술을 희망하는 손님이 60여 명이 넘을 경우 공동구매 형식으로 수술비용을 많게는 150만 원까지 맞춰주는 병원이 많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바로 이런 공동구매 흥정이 병원 측에서가 아니라 병원이 고용한 홍보대행사와 이 대행사가 은밀히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유명 커뮤니티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대행사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은 환자들을 병원에 공급하는 조건으로 30% 상당의 수수료를 챙겨 나눠 갖는다고 한다.
압구정 소재 성형외과 전문의 김 아무개 씨(47)는 “1000만 원을 주면 300만 원은 환자를 소개시켜준 업체에게 넘겨야 한다. 비용도 약 30~50% 대폭 할인해주기 때문에 가급적 하루에 많은 환자들을 몰아서 수술해야 이윤이 남는다. 수익을 맞추기 위해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솔직히 그 완성도를 장담할 순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 전문의는 “하루 수술 횟수가 많으면 의사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어서 그에 따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겨도 의사 측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면 상황을 면피하기 쉬워 당장 돈 벌 생각으로 무작정 대행사를 끼고 환자 유치에 나선 성형외과 병원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일부 지각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들 사이에선 “암 수술을 공동구매로 하는 것 봤느냐. 수술을 공동구매로 팔아넘기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려를 내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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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박리다매 장사가 이뤄지는 탓에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찮다. 성형외과에서 드러내놓고 공동구매를 강제하는 형식이 아니라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성형수술 공동구매가 이뤄지고 있어 누가 ‘몸통’인지는 잡아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단속이 어려운 가운데 저렴한 가격에 혹해 양악 등 위험한 수술을 받는 사람이 빠르게 늘면서 최근 자살한 여대생과 같은 부작용 사례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사들의 ‘공동구매 마케팅’이 있게끔 한 주범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유명 성형외과 및 소규모 개인병원 관계자 다수는 “홍보대행사 및 인터넷 유명 커뮤니티와 협력하지 않고 개업한 개인 성형외과는 6개월 내에 망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라고 귀띔했다. 대행사를 통하지 않으면 사실상 병원 풀(full)가동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부 홍보대행사 및 인터넷 커뮤니티 실체를 확인해보니 기존의 양심적인 운영으로 알려진 유명 여성 커뮤니티들 중 상당수가 성형외과의 홍보수단으로 쓰이고 있었다. 일례로 성형정보 커뮤니티 ‘M’, ‘Y’ 등은 현재 A 대행사 및 압구정 소재 성형외과 측이 각각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커뮤니티 회원들은 이런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성형 희망자들 대부분이 수술받기 전 ‘M’ 등 성형 관련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기 때문에 만일 이러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또한 취재과정에서 성형외과 전문 홍보대행사에서 관리하는 현직 기자 20~30여 명이 게재된 비밀 리스트가 언급돼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현직 기자들과도 유착된 것으로 보이는 이 대행사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형외과 전문 A 대행사 관계자를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대행사 직원 김 아무개 씨(34)는 “강남에 위치한 성형외과 대행사만 해도 500여 곳이 넘는다. 그만큼 성형외과 대부분이 대행사를 통해 환자몰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언론 마케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우리 업체의 경우 현직 기자 30명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기자들과 계약하게 된 정황을 밝힐 순 없지만 홍보 기사 1건당 매체 인지도에 따라 20만~50만 원 정도를 추가 지불하면 된다”고 말했다.
확인 결과 이 대행사 말고도 또 다른 업체 3~4곳 역시 자신들이 일부 매체와도 협업 중이라고 주장했다. B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유명 경제지 소속 기자들의 경우 기사 1건당 20만~50만 원을 지급해주면 성형외과 홍보기사를 써준다”고 주장했다.
이 업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행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성형외과가 모양새 있게 굴러갈 수 있다’는 업계 통설이 들어맞는 셈이다. 이와 관련 성형외과 원장 이 아무개 씨(45)는 “대행사를 통해 손님을 확보하지 않고선 장사를 할 수 없다”며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무실에 책상 1개, 전화기 2대만 놓고 시작하는 영세 대행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대행사 직원 김 씨에 따르면 대행업체가 환자들을 끌어 모으는 방법은 네이버 키워드 노출, 유명 커뮤니티 조종, 현직 기자 동원, 이렇게 세 종류로 나눠진다고 한다.
김 씨는 “‘강남에서 성형 제일 잘하는 곳’이라고 검색할 때 우리 업체에 돈을 지불한 고객 병원이 네이버 상위에 랭크될 수 있도록 조작을 한다. 노하우는 비밀”이라면서 “사실 가장 효과 좋은 마케팅은 인터넷 커뮤니티 마케팅이다. M 커뮤니티의 경우 철저히 성형외과들과 매출계약을 맺고 환자들을 보내준다.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라고 설명했다.
성형 전문 M 커뮤니티의 경우 그동안 일반인이 운영하는 성형 관련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커뮤니티 운영자가 대행사와 손잡고 회원들을 병원에 공급해가며 고액의 수수료를 챙겨왔다고 한다.
M 커뮤니티 운영자 송 아무개 씨(여)는 “커뮤니티에 ‘수술 잘하는 병원이 있다’고 소개하며 공동구매 이벤트 공지를 올린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병원명을 공개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대신 회원들로부터 신청서를 받고 해당 회원 정보를 대행사와 계약한 성형외과에게 넘긴다”며 “병원과는 약 4000만~1억 원 선에서 계약을 한다. 총매출이 1억 원이 될 때까지 커뮤니티 회원을 유인해 병원에 공급해주고 약 30%의 마진을 챙긴다”라고 말했다.
이어 송 씨는 “우리도 나름의 기준으로 신뢰가 가는 병원을 선정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회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M’, ‘Y’ 성형정보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포털집계 회원수 상위에 랭크된 ‘J’ 등 일부 유명 여성커뮤니티에서도 이른바 ‘후기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대행사와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각 커뮤니티마다 아이디(ID) 3~4개를 만든 후 회원인 척하며 거짓 성형후기를 올리는 방식으로 병원 홍보를 한다.
송 씨는 “커뮤니티 회원임을 사칭해 후기글 30여 건 올려주는 조건으로 병원 측으로부터 한 달 127만~150만 원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성의 경우 입소문에 민감하기 때문에 ‘바이럴 마케팅’의 주 타깃 층으로 분류돼왔다. 실제로 대행사 3곳을 비롯해 일부 성형외과들은 가장 환자몰이에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커뮤니티 마케팅’을 꼽았을 정도다. 이런 탓에 압구정 소재 C 성형외과는 국내 최대 회원수를 보유한 성형정보 커뮤니티 ‘Y’를 인수해 직접 운영해왔다고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Y’ 커뮤니티 인수 당시 C 성형외과가 지불한 돈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성형 관련 커뮤니티 입소문만 잡아도 환자몰이는 떼어논 당상이기 때문에 C 성형외과처럼 대형 커뮤니티를 직접 인수하는 사례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갓 개업한 성형외과들의 경우 현금 확보에 고전을 하기 때문에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대행사에 지불해 ‘포스팅 마케팅’을 한다고 한다. ‘강북에서 성형 잘하는 곳’이라고 검색하면 해당 병원명이 맨 위에 뜨는 식이다. 네이버에서도 단속하기 어려운 이런 포스팅 조작은 대행사 측이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에 의해 이뤄진다고 한다.
이같이 성형업계에 고착된 악성 3각 고리 때문에 일부 양심 있는 성형전문의들은 “이런 병폐를 뿌리 뽑지 않으면 결국 최대의 피해는 환자들이 보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