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정치 탄압 대책위’ 친문·친명 결집…‘정치보복’으로 규정하자 여권 ‘방탄동맹’ 비판
#‘문재인’ 향해 칼날 겨눈 검찰
8월 30일 전주지검 형사3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딸인 다혜 씨 집과 제주도 별장 등을 압수수색했다. 영장에는 문 전 대통령을 2억 2300만 원 상당 뇌물 수수 피의자로 적시했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 옛 사위 서 아무개 씨가 2018년 7월부터 2020년 4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받은 급여(월 800만 원)와 주거 지원비(월 350만 원) 등을 문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로 판단했다.
이 의혹은 이상직 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임명을 대가로 항공사 경력이 없는 서 씨를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했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동안 이 전 의원은 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은 무관하다고 했지만, 1월 24일 재판부는 타이이스타젯을 이 전 의원이 이스타항공 자금으로 설립한 태국계 법인으로 판단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 관련 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하명수사 △통계 조작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수사 대상으로 오르진 않았다. 그동안 정가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에 발탁해 준 문 전 대통령을 건드리진 않을 것이란 기류가 읽혔다. 그러나 집권 3년 차에 결국 문 전 대통령을 향해 칼을 빼든 셈이다.
윤석열 정부와 가까운 한 법조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초만 해도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사뭇 달라졌다”며 “이는 최근 정치적인 흐름과 분위기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부녀 ‘경제공동체’ 입증 가능할까…검찰 ‘문 전 대통령 수사’ 쟁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한 당 차원의 대책기구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9월 4일 민주당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전 정권 정치 탄압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원조 친명계인 김영진 의원이 위원장으로 임명됐고, 친문계인 황희 김영배 윤건영 의원 등이 대책위에 참여했다.
대책위는 향후 문재인 전 대통령 관련된 수사나 압수수색 과정에서 위법적인 사항을 발견하면 고소·고발 등 법적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위법 수사를 진두지휘한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를 지휘한 검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한 바 있다.
그동안 친명계가 친문계 관련 수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과 대조된다. 지난 6월 검찰이 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인도 외유성 출장 의혹 수사에 착수하자, 당시 친문계 의원들은 기자회견 등을 열고 반발했다. 반면 친명계 당 지도부는 공식 대응을 자제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울산시장 선거 개입·하명수사 △통계 조작 의혹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정가에선 친문계와 이재명 대표는 2017년 대선을 거쳐 2018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사실상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평가했다. 양측의 해묵은 감정의 골은 상당히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명 갈등’은 지난 총선 때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컷오프’(공천 배제)를 계기로 절정에 달했다. 당시 친문계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임 전 실장 컷오프에 반발하며 최고위원 직에서 사퇴했다. 친문계 의원들은 ‘공천학살’이라며 이재명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관련기사 6년 전 루비콘강 건넜다…민주당 덮친 ‘친명 vs 친문’ 갈등의 기원).
그럼에도 이재명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며 계파를 불문하고 민주당을 하나로 결집하는 데 힘을 실었다. 9월 8일 이 대표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문 전 대통령과 만나 “(김정숙) 여사와 대통령 가족에 대한 현 정부의 작태는 정치적으로, 법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정치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나나 가족이 감당할 일이지만 당에 고맙게 생각한다”며 “당당하게, 강하게 임하겠다”고 답했다.
정가에선 이재명 대표가 계파 통합 행보로 차기 대권주자 입지를 공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사법리스크를 ‘정치 보복’으로 희석시켰다는 평이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 선고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오월동주’가 당분간 깨질 가능성도 적다는 분석이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가 독보적인 차기 대선주자로 입지를 굳혔다는 것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인정도 해주고 확인을 해준 것”이라며 “‘명문 동맹’이 깨질 가능성도 낮다. 서로의 상황을 고려하면 깨질 만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당은 문명 회동을 두고 사법리스크 ‘방탄 동맹’이라고 비판했다. 9월 8일 박준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야권의 정치세력화로 검찰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노골적 의도가 담긴 꼼수 회동”이라며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 도피를 멈추고 법의 심판대 위에 올라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를 계기로 민주당이 결집하는 것은 여당으로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사법 처리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명문 갈등이 자연스럽게 봉합되고, 자연스럽게 계파가 통합되는 것 같다”며 “좌우를 떠나서 그동안 모든 정권이 이전 정부에 대한 복수 내지, 적폐 청산 명분으로 수사를 관철시켜왔다. 오래된 정치 관행이다. 정책 등으로 국민 지지 얻기 어렵기 때문에 권력형 부정 비리를 수사해서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 악순환 고리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윤 대통령도 퇴임 이후에 수사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정치의 사법화’를 줄이는 방식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