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경이라면 ‘정우진의 짝사랑’ 분명 알았겠죠…작품 마치고 생각해 보니 결혼을 위한 결혼 비추”
올 하반기, 드라마 판의 가장 큰 이슈작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SBS 금토드라마 ‘굿파트너’를 뒤로한 채 기자와 만난 배우 장나라(43)는 드라마 성공의 숨은 공헌자로 제일 먼저 남편을 언급했다. 인생의 굿 파트너를 꼽아보라는 질문에도 두말할 것도 없이 “남편”을 답하며 웃음을 터뜨린 그는 이런 남편의 애정을 첫 발디딤으로 쌓아 올려진 ‘굿파트너’에 대한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에 그저 감사할 뿐이라며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사랑을 받아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커요. 원래도 촬영이 끝나고 쉬게 되면 일이 다 끝났다는 생각에 진짜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좀 더 행복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웃음). 정말 감사합니다.”
9월 20일 종영한 ‘굿파트너’에서 장나라는 대형 법무법인 대정의 이혼팀 소속 스타 변호사 차은경을 연기했다. 이혼을 원하는 고객의 ‘니즈’에 철저히 맞춰 기계처럼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그야말로 ‘차가운 도시의 변호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캐릭터였다. 이혼팀에 신입으로 들어온 열혈 변호사 한유리(남지현 분)와 극과 극의 성향으로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재수 없는 상사’이기도 했던 그를 대본으로 처음 접했던 장나라는 캐릭터 구축의 시발점을 “무조건 남지현만 믿고 가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저도 이렇게 ‘차가운 도시의 변호사’ 같은 캐릭터가 처음이라 굉장히 기뻤는데, 한편으론 어떻게 이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대본 리딩 때 보니까 남지현 씨가 너무 건강하고 우직하게, 정말 한유리 같은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렇게 훌륭한 나무 기둥이 한가운데 버티고 있으니 저걸 기준으로 하면 되겠다 싶었죠. 남지현이 연기하는 한유리를 기준으로 저는 완전히 반대의 톤으로 가기로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한유리를 열 받게 할 수 있을까, 매일 퇴사를 꿈꾸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정반대의 열받는 직장 상사를 만들어갔죠(웃음). 제가 정말 헤매고 있을 때 나타나 준 지현 씨가 정말 복덩어리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막 ‘얼굴이 복주머니 같아’라면서 귀여워하고 그랬죠(웃음).”
한유리의 ‘열혈’을 신출내기 변호사의 치기로 치부하면서도 차은경은 조금씩 그 뜨거운 열정에 스며들게 된다. 초반부 ‘굿파트너’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책임졌던 차은경과 남편 김지상(지승현 분) 간의 ‘불륜 이혼 소송’이 이런 변화의 시작 지점이다. 자신의 부하 직원과 불륜을 저지르고도 당당한 남편과 그사이에서 고통받는 딸을 보며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몰리는 차은경의 등을 받쳐주면서 그에게 ‘이혼도 이해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 바로 한유리였다.
이런 두 여성의 ‘워맨스(Womance. 여성+로맨스의 합성어로 여자들 간의 우정과 유대를 의미)’가 빛나는 동안 ‘국민밉상남’에 등극한 김지상의 적반하장은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뒷목을 부여잡게 했다. 이 후문에 장나라 역시 “제 인생에서도 역대급 캐릭터라 이해한다”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드라마 ‘VIP’ 찍을 때 남편 캐릭터였던 박성준도 불륜남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 하면서 ‘VIP’ 감독님께 연락드려서 ‘박성준은 용서하고 같이 살았어야 했어!’라고 얘기했어요.(웃음) 그만큼 김지상이란 캐릭터가 정말 새로운 충격이었던 거죠. 제 인생에서 만나기 힘든, 진짜 괴로운 캐릭터였어요. 게다가 목소리가 스윗해서 더 열 받는 거예요. 그 좋은 목소리로 어떻게 그러지(웃음)! 나중에 들어보니까 지승현 씨는 처음부터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채로 시작했대요. 촬영 끝났을 때 보면 진짜 귀여운 분이신데(웃음).”
만일 ‘굿파트너’가 주말드라마의 ‘정석’대로 갔다면, 차은경은 불륜남 남편 김지상을 차버리고 자신을 오래도록 짝사랑해 온 변호사 후배 정우진(김준한 분)과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을 터다. 다만 드라마 중반부에 차은경의 이혼 소송이 빠르게 일단락되면서 이야기가 휴머니즘으로 빠져들며 결국 정우진의 오랜 짝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열린 결말로 남게 됐다. 이를 아쉬워하는 시청자들도 분명히 존재하는 가운데 이들 사이에 여전히 뜨겁게 불타고 있는 논쟁은 한 가지였다. ‘차은경은, 정우진의 짝사랑을 알고 있었을까?’
“저희끼리도 그 얘길 해봤는데 다들 눈을 가늘게 뜨고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차은경이? 몰랐다고?’ 하면서요(웃음). 제 생각에도 차은경은 알았을 거예요. 어지간하게 눈치 있으면 다 알았을 건데 이제 와서 아는 척하기가 애매했던 거죠. 한편으론 저는 꼭 결실이나 결말을 가져야만 그 관계가 잘 끝나는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좀 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관계의 종류가 다양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제가 어렸을 때 ‘엑스파일’이란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안의 멀더와 스컬리라는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이성을 한 단계 넘어서 믿음으로 똘똘 뭉쳐있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이들이야말로 ‘굿파트너’다, 이렇게 부부나 연인이 되지 않더라도 저희 제목처럼 엄청난 ‘굿파트너십’을 가진 관계로 쭉 가는 것도 아름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변호사, 그것도 ‘이혼 변호사’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면서 장나라 역시 이처럼 그간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하고 나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혼이든 비혼이든 결혼이든 다 사람이 선택한 것이고, 그 선택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또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는 거예요.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걸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할 수 있지만, 잘못됐다 생각될 때 과감히 다른 선택을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거죠. 결혼도 그래요.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이거나 새로운 삶을 같이 시도할 만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 결혼은 정말 추천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결혼을 위한’ 결혼은 비추천이에요. ‘다들 하니까 나도 무조건 해야 해!’라며 결혼하는 건, 제 생각엔 좀 아닌 것 같거든요.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고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면? 그럼 완전 추천이죠(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