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상영 점유율 ‘베테랑2’ 71%, ‘범죄도시4’ 81.9%…“극장이 관객에게 선택 강요한 인위적 흥행”
영화 ‘베테랑2’의 개봉 첫날(9월 13일) 스크린수는 2682개, 상영횟수는 1만 3450회로 집계됐다. 스크린 점유율 40.8%, 상영 점유율 71%, 좌석 점유율 75.2%의 엄청난 조건으로 개봉됐다. 그렇게 단 하루 동안 49만 7539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나마 연휴를 앞둔 평일인 금요일이라 관객수가 이 정도에 그쳤다.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베테랑2’는 꾸준히 2600개 이상의 스크린수와 1만 3000번 이상의 상영횟수를 유지했는데 심지어 16일에는 1만 4021번이나 상영됐다. 36% 이상의 스크린 점유율과 65% 이상의 상영 점유율, 70% 이상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한 ‘베테랑2’는 연휴 기간 5일 동안 각각 75만 5102명, 82만 4713명, 76만 4685명, 85만 4188명, 73만 8625명의 관객을 동원해 연휴가 끝난 9월 18일까지 누적 관객수가 무려 445만 3348명이나 됐다.
물론 ‘베테랑2’가 그만큼 재미있고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영화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선택의 폭은 매우 좁았다.
9월 14일 두 번째로 많은 관객이 관람한 영화는 ‘브레드이발소: 빵스타의 탄생’인데 좌석 점유율이 고작 3.7%였다. 3위는 ‘사랑의 하츄핑’, 4위는 ‘룩백’으로 2, 3, 4위가 모두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를 보고 싶은데 ‘베테랑2’를 선택하기 싫은 관객에게는 ‘에이리언: 로물루스’와 ‘안녕, 할부지’ 정도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좌석 점유율은 2.1%와 1.7%에 불과했다.
좌석 점유율이 72.6%나 되는 영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점유율 2.1%와 1.7%에 불과한 영화를 관람하려면 열심히 검색해서 이른 시간이나 매우 늦은 시간에, 그것도 멀리 있는 극장을 찾아가야 겨우 관람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9월 14일 무려 75만 5102명의 관객이 ‘베테랑2’를 보는 사이 ‘에이리언: 로물루스’와 ‘안녕, 할부지’를 선택해 힘겹게 관람한 관객은 1만 2173명과 7804명에 불과했다.
비슷한 경험은 4월에도 있었다. 4월 24일 개봉한 ‘범죄도시4’는 무려 2930개의 스크린을 확보해 1만 5647회나 상영됐다. 상영 점유율 81.9%, 좌석 점유율은 85.5%나 됐다. ‘베테랑2’를 넘어서는 수치다. 개봉 1주일 동안 누적 관객수는 500만 5372명으로 ‘베테랑2’의 468만 6635명을 상회한다. 프랜차이즈화 된 ‘범죄도시 시리즈’의 신작에 대중들의 기대와 관심이 높았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수치만 놓고 보면 상영 점유율과 좌석 점유율이 압도적이라 관객들의 선택을 제한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범죄도시4’가 7.52점이고 ‘베테랑2’는 6.62점이다. 입소문을 타고 177만 464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예상외로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핸섬가이즈’의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8.30이나 된다. 실관람객이 더 좋게 평가했지만 ‘핸섬가이즈’의 누적 관객수가 훨씬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6월 26일 개봉한 ‘핸섬가이즈’의 개봉 첫날 스크린수는 935개, 상영횟수는 3689회에 불과했다. 상영 점유율 19.2%, 좌석 점유율 16.9%였다. 개봉일 기준 ‘범죄도시4’와 ‘핸섬가이즈’의 좌석 점유율은 5배 이상 차이가 났는데 결국 최종 누적 관객수는 1150만 1621명과 177만 4645명으로 무려 6.5배나 벌어졌다.
입소문으로 호평을 얻어낸 ‘핸섬가이즈’도 만약 70~80%가량의 좌석 점유율로 개봉했다면 1000만 관객이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면 현재 대한민국 극장가의 흥행 공식은 ‘관객이 좋은 영화를 선택해 흥행 성적이 좋게 나오는 방식’이 아닌 ‘극장이 골라서 많이 거는 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게 나오는 방식’이다. 관람할 영화를 고를 선택권이 관객이 아닌 극장에게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를 강요당한 관객들의 관람 후 반응이다. 고를 영화가 딱히 없어 관람을 선택했지만 재미있게 보고 극장을 나섰다면 문제될 게 없다. 반대로 극장마다, 상영관마다 죄다 ‘베테랑2’만 틀어주는 상황에서 관람을 선택했다가 실망감을 안고 극장 문을 나섰다면 향후 극장 방문 자체를 꺼리게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급격히 오른 극장 티켓 값 탓에 말 그대로 ‘안방극장’에만 머물려 하는 요즘 분위기에서 이처럼 실망 내지는 분노하는 마음을 가진 관객이 많아진다면 극장을 찾게 되는 동력도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 한 편의 티켓 값보다 저렴하게 한 달 내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어 영화 소비의 중심이 극장에서 OTT로 완전히 옮겨 가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하필 같은 날 글로벌 OTT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영화 ‘무도실무관’을 공개했다. 김우빈, 김성균 주연의 ‘무도실무관’은 상당한 호평을 얻고 있다.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이 무려 9.05점이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베테랑2’는 상영 종료까지 어느 정도로 흥행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개봉 전만 해도 상영 점유율과 좌석 점유율이 모두 70%를 넘는 엄청난 조건으로 시작한 터라 ‘베테랑2’의 1000만 관객 돌파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개봉 12일째인 9월 21일 기준 누적 관객수는 578만 9860명이다.
문제는 흥행 추세가 확연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첫 주말인 9월 21일 38만 6765명을 기록했고 22일에는 30만 9706명로 집계됐다. 연휴 기간 매일 70만~8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에 비해 절반 이하 수치다. 좌석 점유율은 여전히 67%대나 되지만 관객수는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평일인 9월 23일에는 좌석 점유율이 69.7%로 더 올라갔지만 관객수는 9만 9927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24일에는 8만 8777명으로 더 내려갔다. 현재 분위기라면 극장의 엄청난 밀어주기에도 불구하고 1000만 관객 돌파가 어려워 보인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