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부담감…집값 자극 우려 규제 카드 조기 도입 가능성
#서울 집값, 금리 인하 기대감 선반영?
미 연준이 지난 9월 18일 기준금리를 기존 연 5.25~5.5%에서 연 4.75~5.0%로 0.5%p 내렸다. 연준이 0.00~0.25% 수준이던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2022년 3월 이후 2년 반 만에 이뤄진 금리 인하 조치다. 미국이 긴축에서 완화로 통화정책을 전환하면서 오는 10월 11일에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금리 인하 결정을 내릴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연 3.5%로 13차례 연속 동결된 상태다.
금리 인하는 한은에게도 부담스러운 결정이다. 현재 시점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이후 겨우 진정 국면을 맞이한 부동산 시장을 다시금 부추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10월 금통위에서도 기준 금리 동결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가계대출 증가세에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규제 국면과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증가세가 완화되기는 했지만 지난 8월 5대 은행의 가계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각각 9조 6000억 원, 8조 9000억 원으로 동시에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서울시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시 아파트 거래량 역시 올해 7월 고점(8848건)을 찍은 이후 감소 추세지만 가격은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선반영된 상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대출 규제 등으로 매도자들이 매물을 거두고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거래량은 줄었으나 금리 인하를 전망해 호가는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모처럼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시장이 안정되려는 시점에서 금리에 손을 댄다는 건 리스크가 크다. 11월 금통위도 남아 있으니 당장은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며 “만약 이번에 금리를 인하할 경우 서울 아파트 가격이 굉장히 빠르게 오를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서울 근교 등 접근성이 좋은 지역들까지 점진적으로 가격 상승세가 확산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26일 발행한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25%p 하락하면 1년 이후 서울의 집값이 0.83%p 더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 전국 주택 가격 상승률은 0.43%p에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금리 인하 압박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9월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나온 신성환 한은 금통위원은 내수 부진으로 가계부채나 주택 가격 상승세가 확실하게 둔화될 때까지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다며 금리 인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신 위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도 “물가와 내수 관계만 보면 지금 기준금리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는데 집값 급등에 따른 금융 안정 문제가 등장하면서 급하게 브레이크가 걸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학환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장은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면 우리도 금리를 인하하는 쪽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이자 부담이 감소하면서 대출 규제의 영향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시행하면서 수요를 억누르고 있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완전히 누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얼마나 인하하게 될지도 관심사다. 연준과 달리 한은은 0.25%p 인하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0.25%p 정도 내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 부동산 시장에 금리 인하 기대감이 조기 반영되어 있는 상태기 때문에 0.25%p 정도면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금리를 내릴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규제 강화할까
빠르든 늦든 통화정책은 완화 국면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연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0.5%p 추가 인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말까지는 3% 중반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저금리 시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 역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내 전세 공급난이 심화되고 있는 점도 주택 가격을 밀어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8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율은 54%를 기록해 2022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세가율은 13개월 연속 상승 추세다.
여기에 더해 올해 말까지 6만 4309가구의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세 가격을 더욱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금리가 인하되면 전세가가 이보다 더 상승 흐름을 탈 가능성이 높다. 집값 상승으로 전세 수요도 늘어나면서 내년부터 부동산 시장이 전체적으로 과열될 확률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금리 인하와 부동산 시장 규제 강화를 병행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인만 소장은 “정부가 가파른 주택 가격 상승을 용인할 리가 없다. 시장이 들썩이면 내년 7월로 예정된 스트레스 DSR 3단계를 조기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권일 리서치팀장은 “금리를 인하하면서 규제지역 확대를 병행할 수도 있다. 서울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지역 등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학환 부동산정책연구원장은 “정부가 규제 카드를 꺼낼 확률이 높지만 자칫하다간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수도권 수급 불균형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치솟고 있는 건데 이를 긴 안목에서 보지 않고 규제로 억누르려고만 한다면 정부 정책이 신뢰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전체적으로 흐름을 타게 된 이상 정부가 규제책을 꺼내들어도 금리 인하를 기폭제로 해서 가격 상승 국면을 크게 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