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멸 위기” 획일적 소관부처 지정과 각종 산업규제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승강기 산업 현주소
승강기 정책 소관부처는 행정안전부다. 2009년 소관부처가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승강기 산업 진흥 관련 정책을 담당한 바 있다. ‘승강기 안전’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는 승강기 안전 및 산업 진흥 정책 소관부처를 행정안전부에게 넘겼다.
한 승강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승강기 산업을 바라보는 초점 중심이 ‘산업 진흥’에서 ‘안전’으로 넘어왔다”면서 “정부 정책이 안전 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승강기 산업 자체가 궤멸 위기에 놓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승강기 산업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승강기 업체들은 점점 사업을 접는 추세”라면서 “승강기를 안전 관리 규제 안에 들어가 있는 구조물로 보기보다, 우리나라 산업 진흥 일환으로 바라봐야할 필요성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승강기 종류는 두 가지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다. 엘리베이터 산업은 몇몇 업체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에스컬레이터 산업은 IMF 사태를 기점으로 사실상 정리 수순을 밟았다. 국산 에스컬레이터 시장이 궤멸되자, 값싼 중국산 에스컬레이터가 국내 시장을 장악했다.
최근 들어 국내 에스컬레이터 업체가 국산 에스컬레이터 상용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의 산업 규제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엘리베이터 산업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엘리베이터 업계 관계자는 “지금 엘리베이터 산업과 관련한 정부 규제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상 ‘숨만 쉬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식”이라면서 “산업이 발전해야 기술도 발전하는 것인데, 산업 성장세가 정체기에 들어서면서 기술 발전에 투자할 여력도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승강기 안전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승강기 산업이 행안부 담당으로 돼 있는데, 그러면 자동차 안전, 항공기 안전, 철도 안전에 대해서는 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면서 “엘리베이터 산업에 대해서만 안전에 대한 잣대를 과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승강기 안전관리법’ 규정에 따르면 사람이 탑승한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중대 사고’로 인정된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한 이유와 무관하게 중대 사고로 인정된다. 승강기 안전장치가 작동해 멈춘 건도 ‘중대 사고’ 영역에 있다. 업계에선 과도한 규제에 대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엘리베이터와 관련한 ‘표준 유지 관리비’를 손볼 필요성도 제기된다. 승강기안전공단은 해마다 표준 유지 관리비를 공표한다. 이 표준 유지 관리비를 기준으로 엘리베이터 관리 업체들 사이 저가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취재에 따르면, 특정 아파트에선 엘리베이터 관리비가 대당 3만 6천 원 수준까지 내려간 사례도 있었다.
2019년 도입된 승강기 점검 및 수리 근로자의 안전 강화 규정에 따르면, 승강기 수리 작업엔 2인 1조로 작업자가 투입돼야 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관리 유지비는 ‘저가 덤핑 경쟁’으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업계에선 “인건비도 안 나온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는 업계 전체가 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승강기 업계 관계자는 “각종 규제가 국내 승강기 업체 발전을 막는 가운데, 승강기는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다”면서 “새롭게 유입되는 기술 인력들도 승강기 업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인력 육성 및 수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규제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서 “승강기 산업 진흥을 고민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고, 승강기 산업 궤멸을 막아야 할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승강기 업계 내부에선 승강기 안전과 관련한 소관부처는 행안부로 유지하되 승강기 산업 진흥과 관련한 소관부처를 산업통상자원부로 별도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승강기 산업 성장 정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 차원에서 행안부와 산업부에 ‘승강기 산업 진흥 파트까지 행안부에서 담당하는 것이 맞느냐’고 지적했고, 행안부와 산업부가 승강기 산업 소관과 관련해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