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과 대립, 원외 한계·세력 부족도 발목…“정치는 가슴으로 해야” 당내 소통 강화 목소리 높아
여기에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어서 겪어야 하는 원외 대표의 비애도 크다. 또 지역 기반이 없어 세력도 키우지 못하는 중이다. 이런 ‘3중고’ 앞에서 한 대표는 용산을 향해 날을 세웠다가 다시 물러서는 갈팡질팡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미래권력' 집중 견제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 역대 대통령들은 2인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 하에서 미래 권력의 부상은 레임덕 시작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가 미래권력으로 떠오르자 집중 견제에 나섰고 결국 대선 가도에서 여권 분열을 가져올 이인제라는 대항마가 나왔는데도 이를 제지하지 않아 여당의 대선후보 이회창은 패배하고 말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대선 경선에서 경쟁했던 2인자 박근혜 의원을 미래 권력에서 끌어내리려 임기 내내 ‘박근혜 힘 빼기’에 집중했다. 공천 국면에서 친박들은 대거 몰락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운찬 김태호 등을 총리로 기용해 ‘대선주자’로 키우려 했다.
이런 권력 관계를 가장 잘 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자신의 정치 경험을 잘 활용했다. 김무성 의원이 임기 초반 당대표 자리에 오르자 협력 속에서도 강한 견제를 지속적으로 폈다. 김무성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작업에 적극 협조하는 등 전반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추는 태도를 보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2인자로서의 부상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3년차이던 2015년경부터 ‘김무성 대안론’을 띄웠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2015년 9월 박 전 대통령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찾았고, 이 자리에서 반기문 사무총장과 만찬을 했다. 이 만남은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졌다. 당시 대통령 정무특보였던 윤상현 의원이 ‘친박 대권 후보론’을 들고 나온 상황인 터라 반기문 대망론은 급부상했다.
친박 주류가 조직적으로 김무성 흔들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줄을 이었다. 그 무렵 반 총장은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반 총장은 이후 한때는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꿈을 접기는 했지만 2017년 대선 출마 가도에 뛰어들기도 했다. 끊임없이 청와대의 견제를 받아왔던 김무성 대표는 결국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2인자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한동훈 대표도 이런 2인자 함정에 빠져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여러 사안에서 용산과의 차별화를 내세우면서 벌어지는 감정 대립도 있지만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것은 2인자 함정이라는 게 한결같은 해석이다.
최근 벌어진 이른바 ‘김대남 녹취 사건’에 대한 한 대표의 강경 대응 역시 이런 2인자 함정을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지난 7월 전당대회 때 한 유튜브 방송에 한동훈 대표 공격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과 관련, 한 대표는 진상 조사를 지시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당 내에서는 “개인의 일탈”이라며 묻어두고 여당이 더 화합해나가자고 했다면 오히려 점수를 더 딸 수 있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김대남 전 행정관이 전대 때 내 특보였지만 의논·보고한 바 없다”며 강하게 선을 그어온 나경원 의원도 10월 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대표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허위 공격 사주를 묵인 못한다”며 연일 강경 자세를 고수해온 한 대표에 대해 “야당의 이간계에 단단히 걸려들었다”고 질타한 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정을 반추하고 자중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박근혜 정부 때 의정활동을 했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2인자는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2인자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데 한 대표는 너무 급해 보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2인자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함정 안에서 체력을 비축하며 지형 변화가 올 때를 기다렸기에 가능했지,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려 쓸데없는 체력 소모를 했다면 때가 와도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원외 비애 극복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2일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등을 용산 대통령실로 불러 만찬을 했다. 9월 24일 윤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와 만찬을 한 지 불과 8일 만에 또 만찬을 했다.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해온 한 대표는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대통령이 여당 원내지도부를 격려하는 성격이어서 한 대표가 불참했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이 나왔다.
한 대표는 일단 이 만찬 불참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10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천절 경축식을 마친 다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날 윤 대통령과 여당 원내지도부와의 만찬에 대해 “예정된 만찬을 진행하는 것이라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면서 “우리는 모두 국록을 받으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한 대표의 거듭된 독대 요청에 답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친윤계인 추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원내 지도부만 따로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한 사안에 대해 여러 말이 나왔다. 무엇보다 한 대표가 겪고 있는 원외 딜레마를 지적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많다. 가뜩이나 한 대표 세력이 당내에 부족한데 원외여서 당내 주류로 확실히 올라서지 못하는 강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야당이 특검법 등 입법 강공을 하는 등 원내 대책 회의가 많아지고 있는데 당대표가 원외인지라 이 지점에서도 자리가 좁아지는 형국이다. 오히려 친윤인 추경호 원내대표의 세력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고 친윤 주류가 더욱 힘을 강화하고 있다는 얘기도 뒤를 잇는다.
당내에서는 이런 악조건이 있다면 한 대표가 좀 더 많이 현역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가져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고 있다”고 말을 전하는 의원들은 극소수다. 과거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한 대표가 여전히 광폭 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의원들과 어깨동무를 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친윤계 한 재선 의원은 “처음 한 대표 취임 후엔 지켜보자는 얘기도 제법 많았다.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이 바뀌었다. 윤 대통령과 계속 싸우는 것도 이유겠지만 한 대표가 소통을 잘 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치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할 때”라고 했다.
#기초 체력 부재도 발목
정치인의 기초 체력은 태풍이 불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고정 지지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콘크리트라고 불렸던 열혈 지지 세력이 있었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은 보수 핵심 지지층인 TK(대구·경북)를 정치적 기반으로 갖고 있었다.
한 대표는 정치 입문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데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 지역색이 없다. TK에서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던 서울 출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부모님 고향이 모두 TK여서 상당한 덕을 봤는데 한 대표는 그렇지 못하다.
고정 지지층이 옅다보니 공격도 자주 받는 모습이다. 한 대표에게 자주 날을 세우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10월 2일 페이스북 글을 올려 한 대표의 정통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날 한 대표를 향해 “우리 당(국민의힘)은 늘 ‘용병정치’를 선호한다. 그 바람에 위기 때마다 분열하고 결속력이 없다”고 말했다. 한 대표를 용병에 빗댄 것이다.
홍 시장은 “(더불어)민주당은 용병정치를 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위기 때마다 내부 결속력이 강하고 잘 뭉쳐서 위기 대응을 한다”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용병은 당에 충성하기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정치한다”고 쏘아붙인 뒤 “이회창 시절이 그랬고, 윤석열 시절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지금 한동훈 때가 그 정점에 와 있다”고 지적했다. 홍 시장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용병은 갈등이 증폭되기 전에 애초부터 잘라 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한 대표가 일관된 지지 흐름을 받지 못하고 급격한 하락세를 타는 것도 고정 지지 세력의 부재로 정치권에서는 본다. 지역 기반은 없지만 한 대표를 둘러싼 팬덤이 강하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고 보니 팬덤층조차 빠르게 흩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진단이다.
“한 대표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가 굉장히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정치적 움직임을 좀 무겁게 가져갈 필요가 있고 그래야 기회가 열린다. 김대남 녹취 사건을 두고 용산을 향해 대립적 자세를 취했다가 10월 3일에는 ‘김여사 특검법 부결이 맞다’면서 유화적 태도로 돌아섰는데 결국 그가 갖고 있는 여러 불안감이 왔다갔다 행보를 만들고 그의 정치적 지위를 더욱 불안하게 흔들어대는 악순환으로 흐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