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진료 막히며 중증 환자 비율 높아져…“소아응급실화 대책 필요”
지난 7일 ‘일요신문i’가 아동병원에서 만난 정 양의 어머니는 “최근 지인의 아이가 복숭아 알레르기로 호흡곤란이 왔는데 받아주는 응급실을 찾느라 1시간 반을 돌아다녔단 얘길 들은 적이 있다”며 “그래서 대학병원(종합병원) 대신 이곳 아동병원으로 바로 왔고, 중증 폐렴을 진단받은 후 다행히 병실이 있어서 입원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환자 수용이 어려워지자 그 여파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2차병원이나 1차 병·의원에 환자가 몰려드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영·유아, 어린이들의 상급종합병원 진료도 막히면서 지역의 ‘아동병원’·‘어린이병원’을 찾는 중증환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전공의 집단 사직서 제출 및 결근이 시작된 이후로 2차병원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현상에 대한 소식이 연일 전해지자 환자들은 3차 종합병원 대신 2차 병원이나 야간 진료를 하는 1차 병·의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에 1·2차 병·의원이 연쇄적으로 과부하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도 응급상황 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는 대신 인근 1·2차 병·의원을 찾고 있다. 온라인 지역·육아 커뮤니티에는 상급종합병원은 진료 및 입원이 어렵다는 얘길 들었다며 입원 가능한 소아과를 찾고 있다는 문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들 1·2차 아동 전문병원들에도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자녀가 당장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입원 병상이 부족해 타 시·도 아동 전문병원에 전화를 걸어 입원 가능 여부를 문의해야 하는 현실이다.
최근 자녀가 폐렴과 독감에 동시에 걸려 고열과 기침에 시달린 적이 있다는 최 아무개 씨(41)는 “폐렴·독감 진단을 해준 집 근처 아동병원에서 입원 병상이 다 차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며 “살고 있는 지역 외에 인근 타 지역까지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 온 가족이 총 동원돼 전화를 돌려 이틀 뒤 겨우 입원했다”고 전했다.
한 아동병원 관계자는 지난 7일 ‘일요신문i’에 “현재 우리 병원에서 수용 가능한 병상도 꽉 차 있다”며 “최근에는 중증도의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오고 있는데 여기서도 (치료가) 어려운, 고도의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은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하는데, 전원이 어려운 게 확실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9월 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9월 1일 기준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영유아 장폐색 시술이 안 되는 곳은 24개, 영유아 내시경이 안 되는 곳은 46개”라며 앞으로 응급진료가 안 되는 질환은 더욱 증가하고 응급실을 닫는 대학병원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아동병원협회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지난 6월 협회가 회원병원을 대상으로 아동병원의 응급 진료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개 아동병원 중 9개 아동병원이 사실상 소아응급실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심각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현재는 더욱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지정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인 우리아이들병원을 운영하는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은 지난 9월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현재 우리아이들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크게 늘지는 않았으나 경증과 중증 사이 환자 비율이 30~40% 올라갔다”며 “심장질환 등 대학병원에서 큰 병으로 진단받았던 아이들이 주로 오고 있다”고 전했다.
1·2차 병원에 중증도의 환자가 밀려들면서 이들의 재정적 어려움과 의료진의 피로도 등이 점점 누적돼 치료 역량이 감소하는 현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경기 의정부시 튼튼어린이병원장)은 지난 7일 ‘일요신문i’와 만나 “아동병원 의사들은 3차병원의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소아과 전문의가 이원화돼 나눠 보던 환자를 혼자서 다 보고 있는 현실”이라며 “아동병원의 소아응급실화에 대한 법적·제도적·정책적 대책이 마련돼야 소아응급환자들이 최상의 환경에서 최상의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병원 규모에 맞게 경증과 중증, 응급·희귀환자들이 갈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은 “상급종합병원은 중증과 응급·희귀질환 환자들이 가는 게 맞고, 경증과 중등증 환자는 2차 병원이 트리아지(응급환자 분류)를 해 환자가 1차 의료기관을 갈 것인지 아니면 응급실로 갈 것인지 판단하는 병원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