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셀럽 착용샷 확산, 1990년대 록밴드·영화 프린트티 ‘불티’…데미지 가공 짝퉁 판매자도 등장
일반적으로 빈티지 티셔츠란 30년 정도 세월이 흐른 것을 말한다. 록밴드의 투어 티셔츠, 영화나 애니메이션 작품의 공식 굿즈로 나온 티셔츠 등 종류는 다양하다. 도쿄 하라주쿠에서 빈티지숍을 운영하는 나카무라 유이치 점장은 “예전부터 1980~1990년대 록밴드의 티셔츠를 중심으로 빈티지 의류에 대한 수요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인기가 높진 않았다”라고 전했다.
가격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것은 대략 6년 전부터다. 해외 셀럽들이 빈티지 티셔츠를 패션 아이템으로 착용한 영향이 컸다. 세계적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미국 래퍼 트래비스 스콧 등이 너바나의 티셔츠를 입은 사진이 소셜미디어상에 퍼지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른바 ‘레트로(복고) 패션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빈티지 티셔츠 인기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록밴드 티셔츠 중에서는 ‘너바나’의 인기가 단연 높다. 너바나는 1987년 결성돼 미국에서 활약한 얼터너티브 록밴드다. 1991년 발매된 앨범 ‘네버마인드’는 전 세계에서 3000만 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인기 절정이었던 1994년 보컬리스트 커트 코베인(당시 27세)이 사망한 후 해체됐으며, 영원히 늙지 않는 ‘90년대 청춘의 아이콘’으로 남았다.
나카무라 점장은 “7~8년 전만 해도 너바나 티셔츠는 4만 엔 정도에 팔렸지만, 지금은 수십 배로 뛰었다”면서 “빈티지 티셔츠 시장이 이렇게 뜨겁게 오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너바나와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록밴드 ‘소닉 유스’의 티셔츠도 고가에 거래되는 중이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부트레그라 불리는 해적판까지 비싸게 팔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부트레그는 쉽게 말해 공연장 근처 노점에서 무허가로 판매되던 공연 티셔츠다. 나카무라 점장에 의하면 “1990년대 부트레그는 디자인이 뛰어나고 멋진 것이 많다”고 한다. 희소성이 높아 최근에는 거래 가격이 100만 엔을 넘는 경우도 있다.
영화 티셔츠 가운데 수요가 많은 것은 1994년 영화 ‘펄프픽션’ 티셔츠다. 10년 전만 해도 판매 가격이 2000엔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0만~30만 엔에 거래될 정도로 껑충 뛰었다. 이외에도 영화 ‘레옹’과 ‘트레인스포팅’ ‘파이트클럽’ 등이 인기다.
당연히 모든 빈티지 티셔츠가 비싸게 팔리는 것은 아니다. 가격이 급등하는 아이템은 디자인성이 높은 것, 그리고 희소가치가 있는 티셔츠다.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재고도 없어야 한다. 메가 히트작 ‘타이타닉’의 경우 애초 티셔츠 생산 수량이 많아서 생각보다 비싸게 팔리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 티셔츠를 보면, 1991년 작품 ‘아키라’ 티셔츠가 50만 엔에 가까운 가격에 팔렸다. 역시 디자인성이 뛰어나서다. 1995년 공개된 단편 ‘런어웨이 브레인’의 사악한 미키마우스 티셔츠는 희소가치가 반영돼 33만 엔에 거래됐다.
주간겐다이에 의하면, 빈티지 티셔츠 열풍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한정된 희귀 아이템을 놓고 전 세계 바이어들의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투자 대상으로도 주목받아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홍콩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중국인 A 씨(38)는 “좋아하는 밴드의 티셔츠를 구매하기 위해 일부러 일본을 방문했다”고 한다. A 씨는 “구찌나 발렌시아가 같은 명품 브랜드를 즐겨 입었지만, 지금은 1990년대 밴드의 빈티지 티셔츠가 최고로 인기”라며 “이번에 150만 엔(약 1360만 원)에 티셔츠 2장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중국인들도 빈티지 티셔츠 시장에 뛰어듦에 따라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사카에서 빈티지 티셔츠 전문숍을 운영하는 이와타니 고스케 씨는 “장래에는 2000년대 티셔츠도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2024년에 만들어진 티셔츠가 비싸질 것 같지는 않다”는 예측이다. 옛날과 티셔츠 제작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해 색이 바래지도 않고 프린트가 벗겨지지 않는다.
반면, 빈티지 티셔츠는 수작업 염색 기법과 실크스크린 프린팅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멋이 있다. 그 시절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위조품 유통이다. 유니클로처럼 대량 생산되는 패스트패션과 달리, 빈티지 티셔츠는 같은 상품이라도 세월의 흔적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정가가 없고 주관적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시세를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원래라면 몇만 원짜리 새 제품이지만, 빈티지라고 속여 수십 배 비싼 가격에 파는 악덕 판매자도 나타났다. 빈티지 티셔츠 전문가 이케도 요시오 씨에 의하면 “빈티지 시장의 성장과 함께 태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에서는 진짜 1990년대 빈티지 티셔츠처럼 보이도록 데미지 가공까지 완벽하게 흉내 낸 위조품이 제조되고 있다”고 한다. 샤넬이나 구찌 같은 명품 제품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짝퉁이 나도는 것처럼 빈티지 티셔츠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케도 씨는 “빈티지 티셔츠 열풍은 지속되겠지만 언제 거품이 꺼질지도 장담 못 한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악덕 판매자가 늘고 배신감을 느끼는 고객이 늘어나면 점차 가격이 떨어지고 열풍이 시들해질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구매 시 전문가의 감정을 받거나 신뢰할 수 있는 매장을 이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