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최저 지지율, ‘무파벌’ 12명 ‘아베파’ 0명 갈등 불씨…방위력 강화 방점, ‘아시아판 NATO’는 유보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정권이 위기에 빠지면, 총리를 교체하는 식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당내 다른 파벌의 수장으로 총리를 바꿈으로써 불리한 분위기를 잠재우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들은 ‘유사정권교체’라 부른다.
사실 이시바 시게루는 자민당 내에서는 “정치생명이 거의 끝났다”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절대 권력’을 자랑했던 아소 다로,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반기를 들어 당내 야당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자민당이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곤경에 처하면서 이시바는 되살아났다. 파벌 정치와 거리를 두고 아베 비판의 선봉에 서 있던 그가 자민당에 대한 정치 불신을 없앨 ‘최적의 인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0월 1일 총리에 취임한 이시바는 내각을 새롭게 꾸렸다. 새 내각은 이시바 총리를 포함해 총 20명이다. 이 중 12명이 ‘무파벌’ 인사이며, 안보 전문가들을 주요 보직에 앉힌 점이 눈길을 끈다. 비자금 스캔들에 가장 많이 연루된 강경보수 성향의 ‘아베파’ 출신 의원들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내각 경험이 전혀 없는 초선 각료가 13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일각에서는 “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를 지지한 인사를 대우한 논공행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총무상,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담당상 등 6명은 이번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후보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린 이들이다. 특히 무라카미 총무상은 과거 아베 전 총리를 ‘나라를 망친 역적’이라고 비판해 당으로부터 1년 당직 정직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전임 기시다 내각의 2인자였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시바 내각에서도 다시 관방장관으로 기용됐다. 이와 관련, 현지 언론들은 “총재 선거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측에 표를 던진 기시다 진영을 배려하고 정책 연속성을 고려해 유임된 것”으로 분석했다.
당직 인사로는 오랜 세월 관계가 나빴던 아소 다로 부총재를 최고고문으로 추대하고, 결선 투표에서 자신을 지지한 것으로 보이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부총재로, 총재 선거 당시 경쟁자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에게는 당 선거대책위원장직을 맡겼다. 대체로 “당내 융화에 고심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아베파 측에서는 ‘따돌림당하는 것 아니냐’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은 “아베파 상당수가 결선 투표에서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이 이시바 총리로부터 자민당 총무회장을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으나 고사했다”며 “아베파 가운데 입각한 인사가 한 명도 없어 ‘갈등의 불씨’를 안은 채 이시바 정권이 출발하게 됐다”고 짚었다.
이시바는 총재 선거 당시만 해도 “주권자인 국민을 두고 자민당 마음대로 의회를 조기 해산을 해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한 바 있다. 하지만, 총리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조기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10월 27일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신임 총리가 취임한 후 빠른 시일 안에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에 총선을 치러야 한다’라는 의견이 제시됐었다”고 한다.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상황, 이른바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높을 때 신속하게 총선을 치러야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비주류였던 만큼 이시바 총리는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 조기 총선에 대해 입장을 급선회한 것을 두고 아사히신문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는 모습은 이시바의 권력 장악이 불안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헌민주당 등 야당은 “총리가 되기 전에는 중의원 해산권에 신중해야 한다더니 정권을 잡자마자 말이 바뀌었다”며 이시바 총리를 향해 “변절자” “거짓말쟁이” 등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다가올 총선을 어떻게 치러내느냐에 따라 이시바 정권의 순항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1~2일 여론조사 결과,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51%로 나타났다. 지난 9월 기시다 내각 지지율 25%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치이지만, 역대 새 정부 출범 직후 지지율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이에 요미우리신문은 “역대 정권 초기와 비교해 지지율이 낮아 중의원 선거에서 강한 순풍이 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경제 정책도 과제다. 9월 30일 일본 증시는 총재 선거 후 첫 시장 거래일이었으나 급락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시바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시바는 그간 금융소득 과세 강화, 법인세 인상, 소득세 개편 등을 주장했는데, 실행에 옮기면 투자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금리 인상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시장이 요동쳤다. 이시바는 곧바로 “추가 금리 인상을 할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금리 인상 우려를 불식했다. 주가는 다시 반등했지만, 향후 시장의 불안을 얼마나 잠재울지가 과제로 떠올랐다.
이시바 총리는 ‘비교적 온건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아시아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미일 지위협정 개정,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꿔야 한다는 등 방위력 강화에 대한 입장은 강경하다.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도 이시바 총리는 미일 지위협정 개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대등한 동맹관계로 만들겠다는 뜻이나, 미국은 난색을 표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주의 깊게 발언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단번에 붕괴될지도 모른다”며 이시바 총리에게 ‘안전운전’을 주문했다.
‘아시아판 NATO’ 창설은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아시아판 NATO 구상과 관련해 “미래의 아이디어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을 들여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야 외무상은 “즉시 상호 간 방위 의무를 지우는 기구를 아시아에 설립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견해도 나타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