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빚’ 4년간 입 다물고 BTS 지민 등 동료 연예인까지 피해…‘아는 형님’은 하차 결정
14일 이진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입장문을 올려 불법도박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저는 2020년 우연한 기회로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됐고, 감당하기 힘든 빚을 떠안게 됐다"며 "지인들의 따끔한 충고와 제가 사랑하는 이 일을 다시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도박에서 손을 뗄 수 있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매월 꾸준히 돈을 갚아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이 빚은 꼭 제 힘으로 다 변제할 생각"이라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면 채무와 관련한 전화일까 심장이 뛰었고, 이 일이 언제 세상에 알려질까 하는 두려움에 하루하루가 매를 맞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차라리 모든 걸 고백하고 벌을 받고 나면 적어도 이런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제가 일을 해야 조금이나마 빚을 변제해 나갈 수 있었기에 그런 마음 역시 혼자만의 욕심이지 않을까, 선뜻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며 범죄 사실을 숨긴 것을 합리화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진호는 이어 "제게 남겨진 채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변제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그것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저에게 실망하셨을 많은 분께도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경찰 조사 역시 성실히 받고 제가 한 잘못의 대가를 치르겠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 같은 '범죄 자백'에는 예상보다 더 큰 질타와 비난이 따르고 있다. 언론 매체가 취재에 들어가자 보도에 앞서 '선수' 친 면피용 입장문이라는 지적이 일었던 탓이다.
같은 날 오전 연예매체 텐아시아는 이진호의 불법도박과 이로 인한 동료 연예인들의 금전 피해를 보도하며 "소속사인 SM C&C에 이진호의 불법도박으로 인한 연예인들의 피해 사건을 묻자마자 이진호는 법적 처벌을 피해가기 위한 내용의 입장문을 갑작스레 내놨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진호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연예인은 방탄소년단(BTS) 지민, 가수 영탁·하성운, 코미디언 이수근 등이다. 지민의 경우는 2022년 이진호에게 '일주일 후 변제한다'는 차용증을 쓰고 1억 원을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JTBC 예능 '아는 형님'에 고정 출연 중인 이수근에게도 수천 만 원 상당을 빌려 갚지 않았다. 이외에도 방송가 관계자와 동료 연예인들이 비슷한 피해를 주장하고 있어 이진호가 변제해야 할 피해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진호의 주장과 피해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진호는 2020년 불법도박에 처음 손을 대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불어나면서 최대 4년 간 주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일을 반복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진호가 고정 출연 중이거나 출연 예정인 방송 프로그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도 제작진들이 알지 못했던 데엔 피해자들이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방송가 관계자는 "이진호가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에 계속 출연해서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그의 방송 활동에 차질을 빚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진호로서도 그의 입장문에 쓰인 것처럼 "일을 해야 빚을 갚을 수 있기" 때문에 범죄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피해자들과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쏟아지는 모양새다. 그가 고정 출연 중인 '아는 형님'은 물론, 새롭게 론칭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 리벤지' 역시 공개 전부터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코미디 리벤지'는 지난해 전작인 '코미디 로얄' 우승팀인 이경규 팀(이창호, 엄지윤, 조훈)을 이끌었던 마스터이자 43년차 코미디 대부 이경규의 진두지휘 아래 K-코미디를 대표하는 22인의 코미디언들이 펼치는 코미디 배틀 프로그램이다. 우승 혜택이었던 이경규 팀의 넷플릭스 단독쇼 대신 젊은 코미디언 후배들이 다시 한 번 '코미디 왕좌'를 놓고 겨룰 수 있는 판을 열어준 것이다.
이진호는 여기서 문세윤, 김용명과 함께 '등촌동 레이커스' 소속으로 참가했으나 그의 불법도박 이슈로 프로그램과 출연진 모두에게 거하게 '재'를 뿌리게 됐다. 이날 제작발표회 참석 예정이었던 그는 관계자들에게 "다른 프로그램 녹화 일정이 잡혔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뒤 소셜미디어에 공식입장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 등 방송 관계자들도 이날 보도를 통해 이진호의 불법도박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코미디 리벤지' 권해봄 PD는 "저희가 파악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도 들어오기 직전에 그 소식을 들었다"며 "제작진은 전혀 몰랐던 상황이고 아직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이미 편집을 모두 마치고 공개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이진호의 '폭탄 자백'에 제작진이 손을 쓸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의 존재가 국내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뿐이다.
후배들을 위한 장을 마련했지만 졸지에 후배에게 '뒤통수'를 맞은 이경규는 담담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코미디 리벤지'는 한 명이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22명의 코미디언이 전부 다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한 명의 개인적인 사생활로 프로그램이 흔들리진 않는다. (이진호의) 소식은 좀전에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프로그램은 순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진호가 고정 출연 중인 '아는 형님'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2021년부터 '아는 형님'에 합류했던 만큼, 이진호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이 시기에도 불법도박을 하고 그로 인한 빚을 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함께 출연 중인 동료에게까지 빚을 지웠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이진호의 퇴출은 당연하게 정해진 수순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실제로 '아는 형님' 측은 14일 오전 내부 논의를 거쳐 이진호의 하차를 결정하고, 기존 촬영분은 편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