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오종선·우수만 유족 등 손 들어줘…일본제철은 정 아무개 씨 유족 상대 ‘상고’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9월 2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6단독(이재은 부장판사)은 강제동원 피해자 오종선 씨의 유족들이 JX금속 주식회사(이하 JX금속)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JX금속에 “유족들에게 손해배상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오 씨는 1943년 5월 일본 경찰과 면사무소 직원에 연행돼 일본 아키타현 하나와광산으로 끌려간 뒤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광복 후 귀환했다.
같은 날 이재은 부장판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우수만 씨의 유족들이 미쓰비시마테리아루 주식회사(이하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유족들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우 씨는 1942년 일본 후쿠오카현 나마즈타 탄광에서 일본의 강제노동에 시달렸지만 미수금을 받지 못한 채 광복 전인 1945년 6월 1일 귀국했다.
2심 재판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측 손을 들어준 사례도 나왔다. 지난 8월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2부(재판장 지상목)는 강제동원 피해자 정 아무개 씨의 유족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일본제철에 “유족들에게 8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전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씨는 1940년 12월 일본국 이와테현 가마이시제철소로 강제동원됐으며 노역 중 고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 씨 유족 측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새솔의 전범진 변호사는 “우리 재판부가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면서도 “유족분들이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일본 전범기업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패소하면 항소·상고한다”고 질타했다.
취재 결과 일본제철 측 소송대리인인 주한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지난달 11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오 씨와 우 씨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서도 일본 전범기업들이 항소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일요신문i’가 앞서 3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일본 전범기업들은 대한민국 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이뤄지는 것부터 부적법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된다.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피해가 일본에서 발생했고, 증거 대부분도 일본에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전범기업들은 대한민국 법원이 국제재판관할권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는 “1991년 일본 외무성 국장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며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 모두 패소해 한국에서 소송을 다시 진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전범기업들이 국제재판관할권을 부정하는 건 외무성 국장의 발언과 대비되는 것이고, 강제동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간 일본 정부나 전범기업들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를 외면해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7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전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겠다고 밝혔지만, 등재 후 사도광산 인근 안내판에는 강제동원이 합법적이었다고 적었다. 2019년에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수출을 규제하기도 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이 조선인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건 일제강점기도 불법이었다는 걸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기에 끝까지 부정하고 싶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독립유공자 단체 관계자는 “재판부가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판결을 냄으로써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역사 정의 실현이 미래세대에 올바른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