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조사만으로 계약자 과실 비율↑…“손해사정사 부족 탓, 계약자 민원 소송 승인”
지난 5월 24일 A 씨는 서울 양천구의 골목길에서 주차된 두 대의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다가 가벼운 접촉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차량 두 대가 대각선 방향으로 주차돼 있었는데 길을 통과하기 위해선 차량을 좌우로 한 번씩 이동시켜 빠져나가야 했다.
A 씨는 차량이 통행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자신이 빠져나가려다 발생한 사고임은 인정했다. 다만 해당 골목이 법적으로 ‘주차금지구역’이라는 점과 주차된 ‘두 차량 사이의 폭’이 너무 좁았기에 상대방 차량에도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A 씨의 보험사인 현대해상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차된 차량에 10% 과실을 주장했다. 그러자 상대방 차량의 보험사는 현대해상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동차 사고 과실 비율 분쟁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청구했다.
상대방 보험사는 분심위에서 해당 골목이 ‘주차 가능 장소’이고 ‘주차 허용 구간’이며 도로교통법 위반 장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해상 측은 통행에 불편함을 초래한 상대방 차량에 현저한 과실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해당 골목이 ‘도로교통법 제32조, 제33조에 위법하지 않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양측 보험사 모두 해당 골목이 주차가 가능한 곳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골목은 양측 주장과 달리 주차가 불가능한 구역이었다. 관할 지자체인 양천구청 주차관리과는 “해당 골목은 황색 점선 구간이기 때문에 주차 허용 구간이 아니다. 주차 금지구역”이라고 확인해 줬다. 양쪽 보험사 모두 분심위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 셈이다. 상대방 보험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험사인 현대해상까지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에 A 씨는 기가 막혔다.
A 씨는 현대해상에 손해사정사 교체와 분심위 재심의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해당 골목은 주차금지구역이었다는 점과 당시 주차된 두 차량 사이가 좁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현장 실측도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해상 손해사정사는 현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현장 조사가 없다 보니 주차된 두 차량 사이의 폭이 실측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손해사정사는 차량 두 대가 골목을 대각선으로 막고 있었다는 내용이 아닌 한 대가 주차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주장을 폈다. 현대해상은 골목의 폭과 상대방 차량의 제원을 인터넷에서 찾아 올렸는데 첨부자료를 보면 폭 5.5m의 도로를 전폭 1.7m의 상대방 차량이 막고 있어 통행에 불편을 줬다는 내용이 제출돼 있다.
A 씨가 왜 대각선으로 주차된 두 대의 차량 폭이 아닌 골목과 차 한 대의 폭을 기재했느냐고 묻자, 손해사정사는 “두 차량 사이가 아니라 골목과 상대방 차량의 폭으로 이해했다”고 답했다.
손해사정사 때문에 제대로 된 심의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A 씨는 현대해상에 이번 일에 대해 알렸다. A 씨는 민원 접수 부서에 두 손해사정사가 소속된 서부차량보상부가 아닌 책임 있는 부서의 답변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대해상은 서부차량보상부로 민원을 넘겼다.
현대해상 서부차량보상부 측은 손해사정사 1명이 350~400여 건의 사건을 처리하다 보니 모든 사건의 현장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분심위에서 해당 골목을 주차 가능 지역으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서는 “(손해사정사에게) 결과만 받은 상태라 어떤 식으로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부차량보상부는 “본사에서 민원을 검토한 결과 소송 승인을 받았다”면서 “상대방 측에 구상금 지급 후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5일 전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