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니버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으로 우뚝…“‘한국 대표 액션 여배우’ 이름표 욕심도”
“저도 ‘한국 대표 액션 여배우’라는 말 욕심나는데요(웃음). 사실 ‘지옥’도 그렇고 ‘정이’도 그렇고 제가 액션만을 잘 해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요, 그 액션으로서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액션 연기하면서 힘들다는 것보단 ‘내가 이걸 대역 없이 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건 TMI인데, 최근 개인 취미로 킥복싱도 시작했어요(웃음). 촬영 동안 액션스쿨에 나가다가 안 나가니까 몸이 막 근질근질하던 차였거든요. 제가 액션을 이렇게 좋아해서 작품에서도 연기 습득이 빨랐나 봐요(웃음).”
그를 ‘연니버스’의 안으로 들여보냈던 기념비적인 첫 작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두 번째 시즌에서도 김현주는 자신의 굳건한 신념을 지키는 민혜진 변호사를 연기했다. 민혜진은 ‘천사’로 불리는 기이한 존재들로부터 지옥행을 고지받는 사람들로 인해 충격에 빠진 사회 속,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화살촉’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시즌1에서 화살촉의 손에 어머니를 잔인하게 잃고 자신 역시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얻었지만, 뜻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비밀단체 ‘소도’를 세우고 그 수장을 맡아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지옥’ 전으로 되돌리려 한다.
“민혜진은 시즌1에서 이미 한 번 큰 사건을 겪었고, 그로 인한 변화를 겪은 캐릭터예요. 그러니 시즌2에서는 8년이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그 모습이나 신념이 급격하게 변하진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시즌1의 민혜진을 쭉 가져오는 게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다만 그 긴 시간 동안 소도 안에서도 내분이 생겼기 때문에 민혜진은 시즌1보다 좀 더 고독하거나 쓸쓸한, 혼자만의 싸움을 하게 돼요. 그런 지점들이 민혜진이 홀로 가만히 있을 때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시즌2에서 민혜진이 이끄는 비밀단체 소도는 새진리회의 전 의장 정진수(김성철 분)와 지옥 사자들의 고지를 받고 ‘시연’ 당한 박정자(김신록 분)의 부활 후, 이들을 찾아 세상의 더 큰 혼란을 막고자 한다. 그러나 민혜진의 안에는 이런 거대한 목적과 함께 지난 시즌1에서 고지를 받고도 부모님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아이 재현(오은서 분)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도 자리 잡고 있다. 지옥의 고지와 시연, 그리고 부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어린아이를 ‘선동의 도구’로 보는 다른 이들과 달리 민혜진은 ‘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소 담백하게 끝난 원작과는 차이가 있지만, 김현주는 이 모성적인 지점이 오히려 더 마음에 와닿았다고 말했다.
“소도 안에서 재현이가 혜진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혜진이가 먼저 애정을 줬기 때문이에요. 혜진이가 진심을 보여주고 있단 걸 아이가 느낀 거죠. 시즌1을 다시 봤는데 마지막에 제가 아기 재현이를 안는 신이 있더라고요. 그 장면이 제겐 마치 인류를 구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이 아이를 지키겠단 마음도 그때 먹었던 것 같아요. 시즌2 엔딩도, 그냥 재현이를 데려가도 되는데 굳이 ‘엄마’가 돼주겠다고 하잖아요. 부모의 사랑은 인류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이고, 그 강력한 힘을 아이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혜진과 재현의 관계를 모성애적으로 접근했고요.”
시즌1에서 태어나자마자 지옥 사자들의 고지를 받고, 시연까지 당했음에도 부모님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재현은 존재 자체가 이 작품의 ‘떡밥’ 그 자체였다. 도대체 이 아이의 정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시즌2의 가장 큰 기대 포인트였을 정도다.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는 해석’을 좋아하는 연상호 감독의 특성상 시즌2에서 이런 모든 복선과 떡밥들이 회수된 것이 아니라 의문 부호만을 잔뜩 남기긴 했지만, 그 다양한 해석은 출연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꽤나 소소한 화제가 됐다고 했다.
“재현이의 정체를 알게 되면 머리가 더 복잡해져요. ‘그럼 얘는 지옥에 다녀온 거야? 얘의 지옥은 어딘데?’ 하면서(웃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 자체가 또 재미있는 거죠. 저도 나이가 많이 들다 보니 살면서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일이 잘 없는데, ‘지옥’은 정말 잠자고 있던 제 사고를 깨우는, 뇌를 깨어나게 해주는 작품인 게 분명해요(웃음). 사실 저희들도 시청자들과 똑같이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의문투성이가 돼 버리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속 시원하게 답을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감독님은 아마 이 작품을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똑같은 상황에서, 다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연기 인생에서 첫 ‘시즌제 시리즈물’이기도 한 ‘지옥’은 김현주에게 있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마력을 가진 작품 중 하나였다고 했다. 그런 마력에 이끌려 연상호 감독과 닿은 인연이 ‘정이’와 ‘선산’, 그리고 ‘지옥 시즌2’로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연 감독은 다른 배우들 몰래(?) 언론 인터뷰로만 시즌3의 가능성을 슬쩍 내비친 바 있다. “민혜진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다”는 연 감독의 이야기를 전하자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걸 여기서 처음 듣는다”며 크게 웃음을 터뜨린 김현주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다시 ‘지옥’의 세계에 돌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사실 시즌1 찍을 때 배우들끼리 농담으로 그런 적이 있어요. ‘넌 죽었으니까 시즌2 해도 못 나와!’ 그걸 들으면서 저 혼자 속으로 ‘난 살았으니까 나오겠다!’ 이러고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그때 감독님께 여쭤봤을 땐 시즌2 계획이 없다고 하셨었어요. 그 말만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또 하신다고(웃음). 아마 ‘지옥’ 이후의 이야기는 다 감독님 머릿속에만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정리가 안 돼서 말씀하시기 어려우니까 얘기 안 해주신 게 아닐까요? 시즌3도 처음 듣는 얘기지만, 진짜 민혜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면 저는 바로 액션스쿨 가야겠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