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업황 악화 속 첫 회사채 발행 추진 계획 ‘내 코도 석자’…롯데케미칼 “유동성에는 문제없어”
이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롯데건설의 보유 현금은 2조 3000억 원 수준이며 1년 내 도래하는 차입금은 2조 1000억 원이다”라며 “여기에 오는 1분기 만기 도래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를 고려했을 때 현재 유동성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롯데건설의 미착공 PF 중 서울 이외 지역이 2조 5000억 원 규모이며 서울 밖에서는 청약 흥행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근거로 보수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보고서가 삭제됐고, 롯데건설도 “유동성 위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롯데건설에 대한 불안함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롯데건설 모회사 롯데케미칼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도 롯데건설에 5000억 원을 대여해준 바 있다. 동시에 롯데건설 유상증자에도 876억 원 규모로 참여했다. 롯데건설이 추가 지원을 필요로 한다면 롯데케미칼이 우선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롯데케미칼 회사채 발행에 쏠리는 이목
롯데건설은 하나증권 보고서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올해 1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미착공 PF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에 롯데건설은 1월 내 시중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 펀드 조성 등을 통해 본PF 전환 시점까지 장기 조달구조로 연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방 사업장이라도 부산 해운대 센텀 등 도심지에 위치해 분양에 문제가 없는 사업장이 많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롯데건설이 당장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롯데건설을 포함한 다수의 건설사가 1월 회사채 발행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크게 바뀌지 않는 이상 롯데케미칼이 어떤 형태로든 움직여야 롯데건설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 지분 44.02%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문제는 롯데케미칼의 사정도 좋지는 않다는 점이다. 화학 업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지난해 3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를 2조 7000억 원이라는 거금에 인수했다. 그러나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지난해 1~3분기 435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수익성이 좋지 않다. NICE신용평가는 지난해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강등시켰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AA로 떨어진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김서연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롯데케미칼 신용등급 강등 이유에 대해 “영업현금 창출규모가 축소되는 가운데 대규모 투자자금 소요가 발생하며 차입금 부담이 가중됐다”며 “수익성은 점진적으로 회복하겠지만 차입금 부담 완화 및 채무 상환 능력 개선을 이끌 수 있는 수준으로 크게 상승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은 2021년까지 순현금이 부채를 초과해 사실상의 무차입 경영 형태였다. 그런데 롯데케미칼이 최근 롯데그룹에 대한 지원을 하면서 빚도 천정부지로 늘었다.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부채를 살펴보면 단기차입금이 3조 7344억 원, 장기차입금이 3조 576억 원, 1년 내 만기를 맞는 사채가 3348억 원, 비유동사채가 2조 2909억 원 등이다. 올해도 대출과 단기차입, 회사채, 기업어음 등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롯데케미칼이 회사채 발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롯데케미칼은 1월 말 첫 회사채 발행에 도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롯데케미칼 안팎에서는 발행 시기가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발행 결과에 따라 시장의 민심을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고, 최근 금리 등의 상황을 지켜보고 회사채 발행 시기를 결정하기로 했다"며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건설사는 물론이고, 건설사와 지분 관계로 얽힌 회사도 기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면서도 “기초체력이 있고 AA등급인 롯데케미칼이 활로를 뚫어줄 수 있다. 최근 PF 우려는 다소 과도한 감이 있는데 롯데케미칼을 계기로 다소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은 악화 국면
증권가에서는 당초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4분기 2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바꾸고 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 실적 전망 변경은) 최근 국제 유가 및 나프타 하락에 따른 부정적 재고 효과에 기인한다”며 “원재료 가격 변화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화학업계는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로 신음하고 있다. 중국이 에너지 효율화를 내세우며 소규모 NCC는 폐쇄를 추진 중이지만 대형 화학사는 여전히 대규모 증설에 나서고 있다. NCC는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의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신규 투자에 대한 부담도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1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도네시아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건설사업(라인 프로젝트)을 포함해 3조 원 수준의 자본적지출(CAPEX)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투자가 지연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롯데케미칼은 원래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의 실적이 악화됨에 따라 올해는 차입금 부담이 예상된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내년(2024년)까지 이익 체력 개선은 미미하나 순차입금 전망치는 상향 조정됐다”며 “당초 기대했던 유가 하락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고, 80% 수준인 아시아 NCC 가동률은 2024년의 신증설 감소 효과를 상쇄하는 요인으로나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연구원은 이어 “값싼 원료를 활용한 중국의 저가 물량이 소화되지 않는 한 스프레드(판매가에서 원가를 뺀 값) 회복은 제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