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강한 쌀 DNA 발견, 잡종 교배 무한 반복…신품종 개발 최소 10년 ‘쌀의 왕’ 진화 여부 주목
#재해급 무더위에 ‘쌀 품귀’ 현상
2023년 기록적인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일본 고시히카리의 산지가 타격을 입었다. 특히 최대 곡창지대인 니가타현은 그야말로 뼈아픈 일격을 맞았다. 2023년 수확한 니가타현산 고시히카리 가운데, 최고 1등급을 받은 쌀은 5%에도 못 미쳤다. 지난 10년 동안 1등급 비율이 80%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품질 하락이다.
폭염은 일본 외에도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곡창지대의 쌀 생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BMI의 찰스 하트 애널리스트는 “쌀 생산에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기온이 점차 오르고 폭염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고온 내성을 갖춘 쌀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햅쌀이 나오기 직전인, 올여름 일본 각지에서는 쌀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가장 큰 요인은 지난해 극심한 무더위와 일조량 부족으로 수확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제일 잘 팔리는 품종 고시히카리의 흉작도 한몫했다. 연일 늘어나는 방일 관광객도 쌀 품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관광객 대다수가 스시(초밥)와 오니기리(주먹밥), 돈부리(덮밥) 같은 쌀 요리를 선호한다. 게다가 8월 초 일본 정부가 일주일 동안 ‘거대지진 주의보’를 발령하자 많은 사람이 쌀을 비롯해 식료품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현상이 통상적으로 쌀이 가장 적게 공급되는 시기에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쌀 품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슈퍼마켓 쌀 진열대가 텅텅 비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일본 정부는 관세를 부과해 쌀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데, 농정 당국에 정부 비축미 방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품종 재배를 망설이는 이유
뉴욕타임스는 “기후변화로 세계 농업산업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작물의 품질이 떨어지고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은 고시히카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례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포도 재배 농가, 아프리카에서 카카오를 수확하는 농가 역시 몇 대에 걸쳐 이어온 농법과 재배 방법을 개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니가타농업종합연구소의 고바야시 가즈야 기술사는 지난해 여름을 ‘재해급’ 무더위라고 표현하며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폭염에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고시히카리 쌀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연구소는 21세기 말까지 기온이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인지 예측해 고온을 이겨내는 쌀 품종을 개발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온난화 속도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니가타현은 미네랄이 풍부한 해빙수가 주변 산지에서 흘러들어 항상 논이 촉촉하다. 또한, 빈번한 산들바람과 소나기가 기온을 선선하게 유지해 최고 품질의 고시히카리를 생산하기에 알맞은 고장이다. 하지만, 2023년 여름에는 쌀농사에 이상적인 기온보다 무려 10℃나 높은 고온 현상이 연일 계속됐다. 지역 농부들은 “장차 고시히카리의 재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며 우려한다.
니가타현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구와바라 신고 씨(38)는 “니가타농업종합연구소가 개발한 신품종 ‘신노스케’를 소량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노스케는 극심한 기온에도 견딜 수 있는 쌀 품종으로, 2023년 폭염 속에서도 잘 자라 농사를 망치지 않았다. 구와바라 씨는 “이대로 기온 상승이 계속되면 아들 세대가 논을 계승할 무렵엔 생산미의 절반가량이 신노스케로 대체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신노스케는 밥알이 비교적 크고 곰팡이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밥맛을 중시하는 일본 소비자들은 여전히 찰지고 윤기가 살아있는 고시히카리 쪽을 선호한다. 니가타현 농가에서도 품종 전환을 주저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고시히카리는 오랫동안 니가타현의 자랑이었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농가에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구와바라 씨는 “신노스케를 늘릴지 말지는 일종의 도박이다. 현재로서는 열에 강한 고시히카리 품종이 개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강한 쌀 DNA 발견
일본 농업 연구자들은 “열에 잘 견디는 새로운 형태의 고시히카리 품종을 만드는 열쇠가 신노스케를 포함한 다른 품종의 DNA에 있다”고 본다. 열에 강한 쌀들의 DNA를 집중해서 살펴봤더니, 고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특정 DNA 염기서열이 발견됐다는 것. 요컨대 그 특별한 DNA 염기서열을 고시히카리 쌀에 교배해 폭염에서도 살아남고, 고시히카리의 맛도 낼 수 있는 진화된 품종을 만들려고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니가타농업종합연구소의 과학자에 의하면 “새로운 쌀 품종 개발은 착수부터 완료까지 10~15년은 걸린다”고 한다. 연구팀은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함을 고려해 10년 안에 성공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연구소 뒤에 펼쳐진 광활한 논에서는 고시히카리와 다른 품종과의 잡종 교배종을 키우고 있다. 이들 교배종은 고시히카리와 다시 교배된다. 일련의 작업을 계속 반복하면 결국 어느 순간 고시히카리 맛이 나면서도 내열성을 가진 쌀이 나오게 되는데, 그때까지 끊임없이 되풀이해야만 한다.
고바야시 기술사는 “어떤 새로운 품종도 기존 고시히카리 쌀의 맛을 유지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만 해도 연구소는 수만 개의 잡종 벼 샘플을 검사했다. 이 가운데 전도유망한 교배종 후보들이 연구소의 품질시험실로 들어가 점도와 찰기, 수분도, 입자의 둥글기, 윤기 등을 측정하게 된다.
이후 50대의 밥솥에서 밥을 지어 전문가 패널들이 각각 쌀의 향과 맛을 음미한다. 최종적으로 고온 내성을 가지면서 맛과 향이 뛰어난 고시히카리 한 종류가 채택될 것이다. 그 씨앗은 국가 주도로 니가타현 농부들에게 배포된다. 과연, 최고급 고시히카리 쌀의 개량은 10년 안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라야 다케시 주임연구원은 “우리의 작업은 99%가 노력이다. 마지막 1%는 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