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와 같은 산책 유도, 출시 3년 만에 게임차트 역주행…“캐릭터 무해한 매력에 이용자 소확행 느껴”
#뉴진스도 푹 빠진 ‘묘한’ 식물 캐릭터
피크민 블룸은 증강현실(AR) 기술을 사용하는 게임으로, 실제 걷기를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으며 레벨이 오를수록 더 많은 걸음 수가 필요하다. 게임에서 얻는 모종을 키우면 다양한 색상의 피크민 캐릭터를 탄생시킬 수 있는데, 피크민은 사용자를 따라 걸으며 종종 선물을 주워온다. 산책 등을 통해 얻은 정수(피크민 먹이)를 먹이면 피크민 머리 위에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게임사 닌텐도와 AR 회사 나이언틱이 공동 개발한 피크민 블룸은 출시 3년 만인 지난 10월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11월 24일 앱 통계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피크민 블룸의 월간활성이용자(MAU) 수는 10월 한 달 동안 970% 증가했다. 10월 둘째 주까지 10만 명을 밑돌던 주간활성이용자(WAU) 수도 11월 들어 40만 명을 돌파했다. 피크민 블룸은 10월 셋째 주 구글 플레이스토어 인기 게임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11월 27일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발표한 ‘2024 모바일앱 총결산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성장한 모바일 앱 ‘톱10’에도 피크민 블룸이 포함됐다. 게임 앱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피크민 블룸은 10월 사용자 수가 219만 명으로 지난 1월 대비 213만 명 증가했다.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 게임으로 급부상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피크민 블룸의 흥행은 소셜 기능을 확대한 시점부터다. 대학생 윤정민 씨(22)는 “친구 2명과 ‘1주에 10만 걸음 걷기’, ‘꽃 3만 송이 심기’ 미션(주간 도전)을 수행 중”이라면서 “쉽지 않은 목표지만 같이 하기 때문에 즐겁고, 인증샷 등을 공유하면서 재밌게 플레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크민 블룸은 최근 친구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QR코드를 통해 친구를 추가할 수 있게 했으며, 이를 SNS에 간편하게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임의 인기와 더불어 피크민 캐릭터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귀엽고 독특한 외형을 가진 피크민은 새싹이나 꽃이 길게 자라는 머리와 식물 뿌리를 닮은 몸통을 가졌다. 인스타그램에 ‘피크민’을 태그한 게시물은 1만 3000개가 넘는다. 아이돌그룹 뉴진스 역시 피크민 캐릭터를 따라하면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뉴진스 멤버들은 팬들을 위한 소통 앱 ‘포닝’에서 소위 ‘피크민샷’이라고 불리는, 머리에 꽃이 자라난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피크민 캐릭터는 변화를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피크민의 초창기 캐릭터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식물이 걸어다니는 느낌’을 내기 위해 재탄생됐다. 모리이 준지 닌텐도 비주얼 디자이너는 팀 버튼 영화감독의 어두운 세계관을 반영해 귀여우면서도 음산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시도했다. 이 중 현재의 캐릭터가 만장일치로 뽑혀 피크민 블룸 이용자들에게 묘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관련 굿즈도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용산 아이파크몰 닌텐도 매장에서 판매 중인 피크민 캐릭터 굿즈 상당수가 재고가 없는 상태로 알려져 있다. 매장 측은 “고객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몇몇 인기 상품들이 조기 품절됐다”면서 “재입고 소식이 나오는 대로 매장 카카오 채널과 인스타그램에 공지드릴 예정”이라는 안내문을 게재했다.
#지친 MZ세대의 '도파민 디톡스'로 작용
2017년 출시된 게임 ‘포켓몬고’와 마찬가지로 피크민 블룸은 가벼운 산책을 유도하는 효과를 가진다. 게임 제작사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키워드 역시 ‘걷기를 즐겁게 하다’이다. 직장인 이정하 씨(28)는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피크민 블룸을 실행하고 산책을 즐긴다”면서 “과거 포켓몬고는 포켓몬을 잡기 위해 수시로 휴대전화를 켜야 했다면, 피크민 블룸은 조용히 사색하면서도 새로운 피크민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피크민 블룸이 경쟁에 지친 젊은 세대의 ‘도파민 디톡스’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SNS에서 한 누리꾼은 “인기 게임은 보통 누군가와 대결해서 이기는 것을 추구해왔다. ‘승리’가 게임적인 재미의 근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피크민 블룸이 이러한 고정관념을 깬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피크민 블룸에는 경쟁이 없다. 포켓몬고만 하더라도 체육관 배틀이라는 경쟁 요소가 있었지만, 이 게임은 경쟁보단 게임 친구와의 협력이 중요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도 항상 이길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소소한 과정을 거쳐 성취감을 얻고 이를 통해 ‘힐링’을 해야 한다”면서 “피크민 블룸의 경우 식물 뿌리를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식물의 특성은 소비자 마음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증강현실을 활용하는 게임 방식도 이러한 동반의 느낌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교수는 “학생이나 젊은 세대에게 피크민 블룸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캐릭터가 주는 무해한 매력과 파릇함, 내적 성장에 대한 기대 등이 작용했다고 본다”면서 “게임 이용자에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 긍정적인 감정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이번 열풍이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에서 노력해야 되는 부분을 소홀히 할까봐 걱정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주거, 결혼, 직장 등 여러 복잡한 문제가 청년층을 짓누르고 있다”면서 “심리학에서는 ‘반동형성’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청년들은 반대급부로 마음이 이완될 수 있는, 느슨해도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도피처를 찾게 된다. 그래서 피크민 블룸과 같이 단순하고 평화로운 게임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또 다른 AR 게임인 포켓몬고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제기됐던 안전 문제가 또 다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8월 일본에서는 한 30대 남성이 운전을 하면서 포켓몬고를 즐기다가 도로를 건너던 여성 2명을 치어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포켓몬고 때문에 유사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피크민 블룸 역시 증강현실을 이용하는 만큼 안전사고에 대한 이용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