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 유신을 1970년으로 오표기…‘제주폭동’ ‘여수‧순천반란’ ‘4‧19 학생의거’ 등도 똑같이 써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직접 지시로 지난 11월 비서실에서 작성해 방첩사령관에 보고한 ‘윤석열 내란 사전모의 문건’을 입수했다고 발표했다.
추 의원실이 재구성해 공개한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는 크게 △계엄 선포 △ 계엄법·계엄사령부 직제령 △ 합동수사기구 △ 기타 고려사항으로 구성돼 있다. 각 항목은 다시 법령 체계, 주요 쟁점 사항으로 나뉜다.
문건 공개 이후 논란이 일었다. 문건 내용 중 계엄선포 사례가 나열된 부분에 제주 4‧3 사건이 ‘폭동’으로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12‧3 비상계엄 문건이 2017년 기무사 주도로 작성된 계엄령 검토 문건 ‘대비 계획 세부자료’ 일부를 똑같이 따라 쓴 정황이 발견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두 문건 모두 제주 4‧3 사건을 제주 ‘폭동’으로, 여수‧순천 사건을 여수‧순천 ‘반란’으로 기재했다. 또,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부산소요사태’로 폄하해 표기하기도 했다.
폭동이나 반란, 소요 사태로 표기한 데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었다. 제14연대의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다수가 희생당한 여순사건은 2021년 ‘여수순천 10·19 사건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여순사건 혹은 여수‧순천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제주 4‧3 역시 마찬가지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 소장은 이와 관련해 “2003년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와 제주4·3특별법 등에서 제주4·3이 폭동이 아닌 점이 이미 증명됐다”며 “왜곡된 시선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4‧19 혁명을 ‘4‧19 학생의거’로 표기한 점 역시 두 문서가 동일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4‧19 의거기념일은 1994년 12월 4‧19 혁명 기념일로 그 명칭이 변경됐다. 세계기록유산에도 4‧19 혁명으로 등재돼 있다.
잘못 표기된 날짜까지 그대로였다. 기무사 문건에는 10월 유신이 1970년 10월 7일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10월 유신 비상계엄 선포일은 1972년 10월 17일이다. 오표기인 셈인데 이번 비상계엄 문건에도 10월 유신이 70년 10월로 표기돼 있다. 최소한의 사실 확인 없이 기무사의 문건만 그대로 따라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앞둔 2017년 2월,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 지시로 작성됐다. 문건에는 정치인 가택연금, 국회 해산 등의 위법한 내용은 물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될 경우를 대비한 촛불집회 진압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친위쿠데타 모의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야당 측은 기무사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 전 사령관이 이번 계엄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계엄 전문가들이 근무했다”며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실 경호처장으로 근무할 당시부터 절친인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 등과 함께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2017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한 조 전 사령관은 자신이 기무사 계엄 문건 사건 핵심 인물로 지목되자 귀국하지 않고 잠적했다. 이후 5년 동안이나 지명수배 중이던 조 전 사령관은 정권이 바뀐 2023년 3월 돌연 자진 귀국했다. 검찰은 2024년 2월 조 전 사령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기소하고 재판에 넘겼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