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훈 의결권 공방 속 양측 소액주주 공략 안간힘…일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4인연합’ 지지 주목
이번 한미약품 주주총회에서는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제안이 다뤄질 예정이다. 주주제안의 주요 내용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신동국 회장을 한미약품 이사에서 해임하고, 박준석 한미사이언스 부사장과 장영길 한미정밀화학 대표이사를 한미약품 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것이다. 박재현 대표와 신동국 회장은 4인연합 측 인사로 분류된다.
한미약품 이사회는 임종윤 이사 측 인사 4명, 4인연합 측 인사 6명으로 구성돼 있다. 4인연합이 현재 한미약품 경영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제안이 통과되면 한미약품 이사회 구성은 임 이사 측 6명, 4인연합 측 4명으로 변경된다. 이 경우 한미약품 경영권도 임 이사에게 넘어가게 된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지분 41.4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현재 임종윤 이사 측 인사 5명, 4인연합 측 인사 5명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임종윤 이사 측 손을 들어줄 전망이다. 임종훈 대표가 한미사이언스 대표 권한으로 한미약품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4인연합은 지난 12월 3일 수원지방법원에 임종훈 대표 1인 의사에 따른 의결권 행사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4인연합은 “회사의 적법한 의사결정 체계를 거치지 않고, 임종윤·임종훈 형제의 사적 이익 달성을 위한 권한 남용으로 판단된다”며 “이번 가처분 신청을 통해 임종훈 대표가 한미사이언스 대표 권한을 남용해 한미약품의 지배구조를 왜곡하고 정상적인 경영 행위를 후퇴시키는 일을 차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미사이언스는 “임종훈 대표가 한미약품 주주총회에서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어떤 법령이나 정관, 이사회 규정에서도 대표의 주주권 행사 관련해 정하고 있지 않은데 이미 이사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소집된 임시주주총회이므로 법적·절차적 흠결이 없다”고 반박했다.
임종훈 대표가 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변수는 남아있다. 이사 해임은 상법상 특별결의 요건에 해당한다. 특별결의는 3분의 1 이상의 주주가 주주총회에 출석하고, 출석한 주주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임종윤·임종훈 형제로서는 4인연합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한미약품 지분은 4인연합 측 지분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신동국 회장은 한미약품 지분 7.72%를 갖고 있고, 신 회장의 개인 회사 한양정밀이 한미약품 지분 1.42%를 보유 중이다.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 등은 한미약품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4인연합으로서는 소액주주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미약품의 소액주주(지분 1% 미만 보유자) 지분율은 지난 6월 말 기준 39.14%다. 한미약품은 소액주주 표심 잡기에 나서는 한편 내부적으로도 분위기 잡기에 나서고 있다. 한미약품은 임시주주총회 설명자료를 통해 “정당한 사유 없이 단지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의 측근을 이사로 선임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이사 해임 시 기업경영에 대한 시장 신뢰도 하락이 우려된다”며 “우수한 경영성과 도출로 경영역량이 입증된 박재현 대표 해임 시 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박재현 대표는 최근 한미약품 ‘전문경영인 그룹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협의체는 박명희 전무, 김나영 전무, 최인영 전무, 신해곤 상무, 김병후 상무, 김세권 상무, 임호택 상무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미약품은 “현재의 우수한 전문경영인 그룹 협의체를 통한 올바른 의사결정 시스템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한미약품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도 전문경영인 의견을 진중히 경청하며 한미라는 거함을 경영해 왔다”고 밝혔다.
임종윤·임종훈 형제도 소액주주 설득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임종훈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경영권 분쟁을 부추겨 기업 가치를 악화시키고 있는 두 이사를 해임하는 것은 단순히 이사진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한미약품이 다시 본업에 집중하고, 비만 신약 르네상스와 함께 항암 분야와 희귀질환 신약 개발에서도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이라고 호소했다.
국민연금공단도 한미약품 지분 10.52%를 갖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지난 11월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중립’ 의견을 냈다. 이번 한미약품 주주총회에서도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가 최근 4인연합을 지지하는 의견을 냈다. 소액주주는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외부 기관 분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ISS와 글래스루이스(GL)는 한미약품 주주들에게 한미사이언스 주주제안 반대를 권고했다. ISS는 “지난 2년간 한미약품이 매 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한 것을 고려할 때 박재현 대표 등의 부실 경영을 주장하는 주주제안 측 해임 요구는 불합리하다고 판단된다”며 “주주제안 측은 두 명의 현직 이사진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ISS 설명대로 최근 몇 년간 한미약품의 실적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3분기에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한미약품의 매출은 지난해 3분기 3646억 원에서 올해 3분기 3621억 원으로 0.70%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75억 원에서 510억 원으로 11.37% 감소했다.
앞서 지난 11월 29일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는 소액주주 표심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았다. 4인연합은 당시 신동국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기타비상무이사 선임과 한미사이언스 이사 수를 10명에서 11명으로 늘리는 안건을 제안했다. 신 회장의 선임안은 통과됐지만 이사 수 증가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