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특별결의와 매수청구권 등 변수 산적…한미약품 “이사회 만장일치로 결정”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지난 1월 12일 OCI홀딩스를 상대로 643만 주를 새로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채무상환 및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속히 조달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OCI홀딩스와 경영상 협력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발행 목적이다. 같은 날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가현문화재단이 보유한 주식 744만 주를 OCI홀딩스에 매각하는 계약도 체결됐다. 송영숙 회장과 딸인 임주현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주식 677만여 주를 OCI홀딩스에 현물 출자하고 대신 229만 주를 받기로 했다.
OCI홀딩스 관계자는 “이번 통합에 따라 양 그룹은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통해 사업과 관리의 통합을 이뤄냄으로써 각 부문 전문성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신규 사업 추진에 대한 강력한 동력을 마련하게 됐으며 양 그룹 전체 주주와 임직원 이익 보호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의 공시 직후 한미사이언스 대주주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발표 내용과 관련) 회사나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고지나 정보, 자료도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동생 임종훈 사장과 함께 제3자 배정 증자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했다. 두 형제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19.3%, 각자 자녀까지 합하면 약 24%다.
현행 상법(418조2항)은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경우에만 주주가 아닌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특히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 영업 전부의 임대 또는 경영 위임, 타인과 영업의 손익 전부를 같이 하는 계약,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계약의 체결·변경 또는 해약, 회사의 영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다른 회사의 영업 전부 또는 일부의 양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때에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고 반대주주에게는 매수청구권까지 부여해야 한다.
이와 관련,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각 지주회사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최종 의사 결정된 사안”이라며 “대주주 가족 간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통합이라는 큰 명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매수청구권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가 카카오를 상대로 제3자 배정 증자를 시도했지만 법원은 이를 금지시켰다. 제3자에 대한 신주와 전환사채(CB) 발행이 법에서 정한 목적에 어긋나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훼손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한미사이언스 사외이사 가운데에는 검사와 판사 출신 법조인이 있다. 제3자 배정 증자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증자에 동의한 것은 지배구조 변경의 가장 큰 원인이 증자가 아닌 최대주주 주식매매이기 때문이다.
송영숙 회장 모녀와 가현문화재단이 OCI홀딩스에 넘긴 지분은 20.3%에 달한다. 증자를 하지 않더라도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단독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제3자 배정 증자 목적은 지배구조 변경이 아닌 법에서 정한 재무구조 개선에 해당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지난해 신주와 CB로 카카오가 확보하려던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은 234만 주로 당시 최대주주인 하이브(352만 주)에 미치지 못했다. 최대주주 변경이 아님에도 법원은 일반주주 이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제3자 배정 증자를 금지했다.
결국 가처분 소송의 최대 쟁점은 한미사이언스가 제3자 배정 증자를 해야 할 정도의 경영상태인지에 대한 판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증자가 무산되더라도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의 기업결합이 좌초되는 것은 아니다. 증자 대신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자사주(2.8%)와 송영숙 회장 모녀의 잔여 지분을 매입한다면 지분율은 최대 28.5%까지 높아진다. 오히려 진짜 승부는 3월 정기 주주총회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진은 송영숙 회장과 3명의 사외이사 등 모두 4명이다. 모두 임기 만료가 2025년 이후다. 주총 특별결의가 필요한 이사 해임은 쉽지 않다. 다만 정관상 이사의 수는 최대 10명이다. 임종윤 사장 측이 의결권 과반을 확보해 주주제안 형태로 새롭게 6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자사주에 대한 통제권도 확보할 수 있다.
정기 주총 의결권은 2023년 말 기준이다. 임종윤·임종훈 사장의 지분율은 24% 가량으로 송영숙 회장 모녀와 가현문화재단 등(25.7%)과 비슷하다. 과반 확보를 위해서는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12.15%)과 국민연금(7.4%)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 밖에 임성기재단(3%)과 3% 남짓한 특수관계인들의 표심도 중요하다. 20%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한 여론전도 예상된다.
한편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와 기업결합이 이뤄지면 이우현 회장과 송영숙 회장 모녀가 공동경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간지주회사 설립 방침도 소개했다. 이렇게 되면 기존 OCI부분은 이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부분은 송 회장 모녀가 경영을 맡는 형태가 유력하다. 전혀 다른 가문 간 동업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예측이 어렵다. 하지만 결합이 가능하다면 향후 재분할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지분 인수를 못하면 자문이라도?
OCI홀딩스는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이번 한미약품그룹과의 거래 총괄 자문을 맡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그의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지난해 보유 중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라데팡스파트너스에 매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라데팡스파트너스는 고금리 여파 등의 이유로 지분 매입을 못하고 있다.
OCI그룹과 한미약품과의 거래가 완료되면 송 회장과 임 사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 전량이 OCI홀딩스로 넘어간다. 송 회장과 임 사장으로서는 라데팡스파트너스에게 지분을 매각하고 싶어도 매각할 지분이 없다. 라데팡스파트너스로서는 한미사이언스 지분도 매입하지 못했는데 OCI그룹과의 통합만 도와준 셈이다.
일각에서는 라데팡스파트너스가 거액의 자문료를 받은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한미약품그룹은 라데팡스파트너스와의 계약은 해지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외에 내용에 대해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