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절도로 수배 중 뇌출혈로 길에서 쓰러져
-병원서 뇌수술 입원 후 치매 겹쳐 강제수사 중단
-요양병원서 무료진료-복지사를 후견인으로 지정
-본인부담금상환제 환급금으로 벌금 정산 ‘자유인’
[일요신문] 편의점에서 식품을 훔친 죄로 경찰로부터 수배 중 거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수술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노숙인이 진료비 본인부담금상환제라는 의료복지제도의 혜택으로 형사처벌에서 벗어난 뒤 요양병원에서 요양 중이라는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15일 온종합병원에 따르면 노숙을 전전하던 H 씨는 2023년 10월 하순 한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한 달여 도망 다니던 그는 11월 하순 길거리에서 쓰러졌다. 무연고자인 그는 부산의료원에 후송돼 경막하 출혈로 진단받고 인근 온종합병원 뇌혈관센터에서 응급수술로 목숨을 건졌다.
온종합병원에서 20여 일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뇌출혈 후유장애가 남은 H 씨는 마땅히 돌아갈 집이 없어 그해 12월 중순 온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온요양병원 측은 H 씨가 무연고자여서 가족간병이 불가능한데다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않아 월 40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그러던 중 올해 6월 중순 H 씨의 사건을 담당하던 검찰이 ‘H 씨가 현재 별도의 수용시설에서 생활이 가능한지’를 물어왔다. ‘뇌출혈 후유장애로 거동을 전혀 할 수 없고, 혈관성 치매 등으로 의사표현조차 힘겨운 중증상황’이라는 병원 측의 설명으로 그는 수감 위기에서 벗어났다.
H 씨의 입원생활이 장기화되면서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 많이 생겼다. 입원 초기부터 H 씨를 상담해온 이 병원 사회복지사 이채영 씨가 그의 후견인으로 자청했다.
온요양병원 입원 이후 H 씨를 담당해오던 부산진구 당감2동 주민자치센터에 후견인으로 등록한 이채영 복지사는 최근 12월초 관할 주민자치센터로부터 후견인으로써 H 씨의 ‘진료비 본인부담금환급금’을 신청하라고 안내받았다.
본인부담상한액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일정 기간 동안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금액으로, 이 상환액이 초과되면 이후의 의료비는 전액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게 된다. 본인부담상한액은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로 특히 만성질환자나 고액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H 씨는 온요양병원 측과 이채영 복지사의 도움으로 지난 4일 본인부담금 상환금 신청서를 제출했고, 12월 11일 건보공단으로부터 4년 치 환급금을 받았다. 이채영 복지사는 미납 간병비를 공제하고, 수배사건과 관련된 벌금까지 지급함으로써 ‘21세기 노숙인 장발장’ H씨를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게 도와줬다.
온요양병원 이채영 복지사는 “H씨처럼 무연고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는 흔하다”면서도, “일반 가정에서도 상당히 경제적 부담이 되는 간병비 등을 고려하면 이들의 입원을 선뜻 받아들일 요양병원이 흔치 않은데, 늘 사회공헌을 앞세우는 설립자 정근 원장의 뜻을 받들어 적극 수용해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H 씨의 일처리도 무연고 환자들과 상담하는 과정에 최대한 현행 복지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병원 지침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권진영 행정실장은 “H 씨는 입원 당시 오래 노숙생활을 한 탓에 연고자는 물론 주민등록증조차 없었다”며 “병원이 H 씨의 가족이 돼줘야겠다는 생각에 담당 사회복지사를 통해 주민증도 새로 발급받아 의료급여 혜택을 볼 수 있게 했고, 뜻하지 않는 본인부담금상환제도 덕분에 밀린 간병비는 물론 벌금형까지 갚음으로써 ‘자유의 몸’이 됐다”고 말했다.
이혜림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
온요양병원 입원 무연고자, 의료복지 덕에 수감 모면 병원요양
온라인 기사 ( 2024.12.15 10:57 )